<colbgcolor=#DBCBC3><colcolor=#fff> 아돌포 카민스키 Adolfo Kamin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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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10월 1일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
사망 | 2023년 1월 9일 (향년 97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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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문서 위조 전문가, 사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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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돌포 카민스키는 프랑스의 문서 위조 전문가 겸 사진가이다.2. 생애
프랑스 정부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온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1925년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신문 기자였다.4살 때 가족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그도 프랑스로 이주해 노르망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을 편집하였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곧바로 염색 공장과 세탁 공장에 취직하였다. 초등학교 신문을 편집하는 과정에선 글자를 새기는 기술을, 공장에서 일하면서는 잉크 얼룩을 지우는 기술을 터득했는데, 이것들은 그가 훗날 전업으로 사용하게 될 기술들이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유대인이었던 카민스키의 가족은 체포되어 드랑시 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아르헨티나 여권을 소지한 덕에 3개월 만에 석방될 수 있었다. 1943년부터는 나치에 저항하며 본격적으로 문서 위조 전문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배운 얼룩 지우기 기술과 글자 새기기 기술을 통해 유대인의 신분증에서 이름을 위조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솜씨가 매우 뛰어나 무려 1시간에 30장의 문서를 위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민스키로 인해 1만 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프랑스에서 스위스, 스페인 등지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탈출한 유대인들 중 절대 다수가 미성년자였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카민스키는 그의 뛰어난 문서 위조 기술을 이용해 많은 이의 생명을 구했다. 1946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이 발효될 당시 공격받던 유대인들을 구하였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건졌다. 1970년대부터는 사진가로 활동하였으며, 2020년 프랑스에서는 그의 사진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2023년에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며 장수하였다.
3. 여담
그의 딸 사라 카민스키가 <아돌프 카민스키, 위조꾼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전기를 펴냈다.그의 아들은 1977년생으로, 래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