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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7:21:02

민주당 구파와 신파

신파(민주당)에서 넘어옴
파일:55년 민주당 지도부.jpg
1955년 민주당을 대표하던 정치인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신익희(구파), 장면(신파), 조병옥(구파), 박순천(신파).
파일:윤보선-장면.jpg
왼쪽부터 제2공화국 당시 구파를 대표하는 윤보선 대통령과 신파를 대표하는 장면 국무총리.

1. 개요2. 상세
2.1. 구파2.2. 신파
3. 계파 간 차이와 갈등

1. 개요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의 대표적인 두 계파이다.

2. 상세

2.1. 구파

구파 신익희, 조병옥, 김도연, 김준연, 윤보선, 유진산, 윤제술, 백남훈, 허정, 김영삼

민주당 구파는 구(舊) 한국민주당 - 민주국민당 출신 인사들이다. 호남 기호 지방 중심의 토착 지주 유산 계급 출신 정치인 위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당대의 정치적 엘리트로서 민족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해온 그룹이다. 1955년 사망해 민주당 창당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에서 활동한 김성수는 대표적인 소위 '민주당 구파 스타일' 정치인이었다.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다. 이후, 분당파협상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분당파는 신민당을 창당하였고, 협상파는 신파로 넘어가 합작파가 되었다.

2.2. 신파

신파 장면, 곽상훈, 현석호, 오위영, 박순천, 이철승, 정일형, 한근조, 김영선, 김대중

민주당 신파는 구파보다 연령대가 젊은 비주류 신진 소장파 세력이다. 장면을 위시로 하는 평안도 출신 흥사단 계열의 인사들과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합류한 자유당 탈당파[1], 미군정 이승만 정부에서 중용된 관료, 법조인 등 자수성가 테크노크라트들의 그룹이다.

신파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다. 그중에서도 노장파, 소장파, 합작파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소장파 의원 32명이 신풍회를 조직하였고, 합작파는 정안회를 조직하였다. 노장파에서도 비주류로 구성된 중도파는 신풍회와 협력하려 했다.

3. 계파 간 차이와 갈등

구파와 신파는 교육 수준, 반(反) 이승만 정서, 의원내각제론 주장, 사유재산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관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많지 않았으며, 출신 학교부터 종교, 독립운동 여부, 사회적 계급, 직업, 재산, 출신지,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였다.

결국, 여러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이 제2공화국 당시 장면 내각이 수립된 이후, 당내 패권을 두고 크게 번졌다.

[1] 김영삼은 자유당 탈당파 출신임에도 유진산, 조병옥과 친분이 있어서였는지 신파가 아닌 구파로 분류되었다. 김영삼의 아버지 김홍조는 1930년대 말 정치망 멸치 어장과 어선 10여 척을 보유했던 거제도 제일의 갑부로, 김영삼 역시 계급적으로 구파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김대중 장면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서 정일형과 가까웠던 신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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