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5-13 16:09:59

신충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537B, #006494 20%, #006494 80%, #01537B);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진덕왕조 중시 죽지
무열왕조 중시 문충 | 김문왕
문무왕조 중시 문훈 | 진복 | 지경 | 예원 | 천광 | 춘장 | 천존
신문왕조 중시 순지 | 대장 | 원사 | 선원
효소왕조 중시 원선 | 당원 | 순원
성덕왕조 중시 원훈 | 원문 | 신정 | 문량 | 위문 | 효정 | 사공 | 문림 | 선종 | 윤충
효성왕조 중시 의충 | 신충
경덕왕조 중시 유정 | 대정
시중 대정* | 조량 | 김기 | 염상 | 김옹 | 양상
혜공왕조 시중 김은거 | 정문 | 김순 | 주원
원성왕조 시중 제공 | 종기 | 준옹 | 숭빈 | 언승 | 지원 | 김삼조
소성왕조 시중 충분
애장왕조 시중 수승 | 김헌창
현덕왕조 시중 양종 | 원흥 | 장여 | 김충공 | 영공
흥덕왕조 시중 김우징 | 윤분 | 김명
희강왕조 시중 이홍
민애왕조 시중 헌숭
문성왕조 시중 의종 | 양순 | 김여 | 위흔 | 김계명
경문왕조 시중 위진 | 인흥
헌강왕조 시중 예겸 | 민공
정강왕조 시중 준흥
효공왕조 시중 계강 | 효종
경명왕조 시중 유렴 | 언옹
* 경덕왕 6년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부름.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537B, #006494 20%, #006494 80%, #01537B);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철부 김구해 김거칠부 김세종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수을부 을제 수품 비담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알천 금강 김유신 김군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진복 김문영 김개원 인품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배부 김사공 김정종 김사인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신충 만종 신유 김양상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김경신 충렴 세강 김언승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김숭빈 김수종 김충공 김균정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김명 김귀 장보고 김예징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김의정 김안 김정 위진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김위홍 준흥 김성 계강
제45대 제46대
박위응 김성
문헌상 기록이 확인된 인물
김춘추, 김순정, 김옹, 김주원
}}}}}}}}}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김사인 신충 만종
1. 개요2. 생애

1. 개요

信忠 / 金忠臣(?) / 金忠信(?)

통일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관등은 이찬.

2. 생애

726년 4월 김충신(金忠臣)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이 김충신이 신충과 동일인물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734년에 당나라에서 숙위하며 머무르고 있다가 당나라 황제에게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한 김충신(金忠信)과도 신충이 동일인물이란 설도 있다.[1]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위에 오르기 전의 효성왕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바둑을 즐겨 두었다고 한다. 여기서 효성왕과 한 약속이 향가 중 하나인 원가의 배경이고 신충이 원가의 작사가이다.

경덕왕 시대 757년 전임 상대등 김사인이 병에 걸려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신충이 상대등을 역임했고 763년 8월 시중 김옹과 함께 사직했다.

그가 나이들어 은거한 후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 사찰 단속사를 창건했다. 이 절은 조선시대까진 있었지만 조선 때 훼손됐고 지금도 단속사지 삼층석탑 대한민국의 보물로 남아있다.


[1] 김수태, 《신라중대 전제왕권과 진골귀족》, 서강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