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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3:44:58

원효로(서울)

신창동(용산구)에서 넘어옴
1.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도로
1.1. 역사1.2. 상세1.3. 연계 도로
1.3.1. 주요 교차로1.3.2. 우회도로
1.4. 연계 교통1.5. 연선 주요 시설
1.5.1. 공공기관1.5.2. 기업
2.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지역
2.1. 역사2.2. 행정구역
2.2.1. 원효로1동
2.2.1.1. 원효로1가2.2.1.2. 원효로2가2.2.1.3. 문배동2.2.1.4. 신계동
2.2.2. 원효로2동
2.2.2.1. 신창동2.2.2.2. 산천동2.2.2.3. 청암동2.2.2.4. 원효로3가2.2.2.5. 원효로4가

1.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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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로
元曉路 | Wonhy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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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 번호
401번 서울특별시도 (관리용)
도로명 번호
31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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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체자 元晓路
가타카나 ウォンヒョロ }}}}}}}}}
기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암동 110
종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가 남영역교차로
연장
2.6km
관리
서울특별시 서부도로사업소
왕복 차로 수
4차로 청암동 - 현대자동차 원효로사옥
6-7차로 현대자동차 원효로사옥 - 남영역
주요 경유지
청암동 ↔ 현대원효로센터앞 ↔ 원효로2가 ↔ 원효로1가 ↔ 남영역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암동 110번지에 있는 강변북로 나들목에서 용산구 원효로1가 남영역교차로를 잇는 총연장 2.6km의 도로. 관리용 번호인 401번 서울특별시도로 지정되어 있으며, 도로명 번호는 3102007로 배정되어 있다.

기점인 청암동에서는 강변북로와 연결되어 가양대교 방면에서 진출입을 할 수 있고, 종점인 남영교차로에서는 한강대로77길과 연결되며, 한강대로77길은 경부선 하부를 통과하여 남영삼거리에서 한강대로와 교차한다. 따라서 원효로의 실질적인 종점은 남영사거리라 할 수 있다. 또, 원효로의 실질적인 기점은 원효대교 북단으로, 남영역 방면에서 오는 대부분의 차량이 원효로3가에서부터 원효대교로 진입하는 고가도로를 타고 여의도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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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사

이 길은 조선시대에 숭례문으로부터 지금의 원효대교 북단에 있었던 용산진(龍山津)에 이르는 서울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용산진은 지금의 이촌동 동작대교 북단에 있었던 동작진(銅雀津)과 함께 숭례문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터로서 많이 이용되었고, 용산진에서 배를 타면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닿도록 되어 있었다. 용산진보다 노량진에 가까운 곳은 지금의 한강대교 북단 쪽이었으나, 중간에 노들섬이 있어서 배를 타면 돌아서 가야 하고,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오히려 나루터로서 적합치 않았다. 따라서 한강대교 북단 일대는 당시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에 가까웠고, 주 교통로는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대교 남단을 잇는 수로였다.

용산진은 삼남지방에서 오는 물류가 한강을 따라서 내려오는 수운의 종착지가 되어 대단히 번성했었다. 또, 만조 때에는 바닷물이 용산진까지 역류하여 들어왔으므로, 이를 이용해서 해로를 이용하던 선박들도 용산진으로 모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로 갈수록 용산진 앞에 모래가 퇴적되어 나루터로 이용하기가 적합하지 않아지자, 조운선들은 용산진 대신 지금의 마포대교 북단에 있던 마포나루에 정박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주요 교통로 역시 원효로가 아니라, 숭례문에서 만리재를 넘어 마포나루 방면으로 곧장 나아가는 만리재로 쪽이 되었다.

그 후로도 용산진은 노량진으로 이어지는 수운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1900년 한강철교가 완공되자 경부선이 강북까지 들어오게 되어 철도로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용산진에서 동쪽으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용산역이 개통되면서 이 일대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1906년경에는 지금의 한강대로가 개통되었고, 1917년에는 한강대로 끝자락에서 노량진으로 곧장 넘어갈 수 있는 한강인도교가 개통하면서 용산진을 완전히 대체하였다. 용산역 앞으로 새 시가지가 생김에 따라, 원래 용산의 중심지였던 원효로 일대는 구용산(舊龍山)으로, 한강로 일대는 신용산(新龍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의 원효로가 언제 근대 도로로 개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10년 10월에 발행한 조선교통전도에는 원효로가 표시되어 있어 이 이전에 이미 근대 도로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원효로2가 쪽에서 지금의 노선이 아니라 원효로41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조금 휘어 있는 형태였다. 원효로가 지금의 선형으로 개량된 것은 대략 1950년대 즈음의 일로 추측된다.

1914년 4월 1일부터는 이 도로를 원정통(元町通, 모토마치도리)이라 명명하였다. 원정통이라 이름이 붙은 까닭은, 당시 이 길이 지나는 지금의 원효로1·2·3·4가 지역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원정(元町, 모토마치)이라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0월 1일에 일본식 가로명을 바꾸면서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의 법명에서 따와 원효로(元曉路)라 고쳐 명명하였다. 1981년 10월 27일에는 원효대교가 개통하면서 여의도, 대방동 방면으로 곧장 이어지게 되었다.

1984년 11월 7일에는 청암동에서 원효로1가 옛 용산구청 앞까지의 구간으로 지정되었고, 그 후 남영역교차로까지 200m 연장하여 고시하면서 현재의 구간이 되었고, 2006년 12월 28일에는 강변북로 구리 방향에서 원효로로 진입할 수 있는 연결 교량이 개통하였다.

1.2. 상세

원효로는 용산구에서 여의도 영등포구 방면을 가장 빠르게 이어주는 도로이다. 한강대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노량진 쪽으로 크게 돌아서 가지만, 원효로는 남영동에서 동여의도까지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다. 서울역에서 여의도로 갈 일이 있다면, 남영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원효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1.3. 연계 도로

1.3.1. 주요 교차로

일산신도시[1]
강변북로
<colbgcolor=#004a8b><colcolor=#fff> 효창원로 효창공원앞역
강변북로
( 마포대교 방면)
청파로
(현대원효로센터앞)
전자상가
이촌2동
파일:유턴표지.png
여의도
원효대교
청파로
(원효대교북단)
용산역
전자상가
새창로
(원효로2가)
효창운동장
효창공원앞역
이태원역
삼각지역
백범로 공덕오거리
효창공원앞역
원효대교
전자상가
청파로
( 남영역)
서소문로
서울역(서부)
한강대로77길
↓ 남영삼거리

1.3.2. 우회도로

남영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는 청파로를 통해 우회할 수 있고, 효창공원앞역에서 원효로4가까지는 효창원로를 통해 우회할 수 있다.

1.4. 연계 교통

인근에 용산역, 남영역, 효창공원앞역이 있지만, 정작 원효로를 통과하는 철도 노선이 없는 관계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은 다소 불편하다. 대신에 262번, 7016번이 원효로 전 구간을 운행하고, 162번, 503번이 남영역에서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한다. 이외에도 0411번이 효창공원앞역에서 원효대교 북단을 지나 이촌동으로 향하며, 400번이 효창공원앞역에서 원효로2가를 지난다.

1.5. 연선 주요 시설

1.5.1. 공공기관

1.5.2.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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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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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004ea2> 후암동 후암동
용산2가동 용산동2가 용산동4가
남영동 갈월동 남영동 동자동 용산동1가
청파동 서계동 청파동1가 청파동2가 청파동3가
효창동 효창동
용문동 도원동 용문동
이촌1, 2동 이촌동
이태원1, 2동
구청
이태원동
한남동 한남동
서빙고동 동빙고동 서빙고동 용산동6가 주성동
보광동 보광동
원효로1동 문배동 신계동 원효로1가 원효로2가
원효로2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
한강로동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colbgcolor=#004ea2><colcolor=#fff> 원효로
元孝路 | Wonhyoro
파일:원효로 법정동 지도.png
법정동 경계
파일:원효로 행정동 지도.png
행정동 경계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지역으로, 청암동에서 남영역을 잇는 총 연장 2.7km의 도로인 원효로를 중심으로 행정동 원효로1동( 법정동 원효로1가, 원효로2가, 문배동, 신계동)과 원효로2동(법정동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원효로3가, 원효로4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동쪽은 경부선을 경계로 남영동 한강로1가에, 서쪽은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남쪽은 옛 만초천의 유로를 경계로 한강로2가, 한강로3가, 이촌동에, 북쪽은 용문동, 도원동, 마포구 도화동, 마포동에 접한다.

지금은 잘 안 쓰이는 지명이지만, 이 일대를 가리켜 구용산(舊龍山)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본래 용산이라 불리던 지역이었고, 1906년 이후로 용산역 앞을 중심으로 새로 시가지가 생기면서 한강로동 일대를 신용산(新龍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에 대비해서 본래 용산이라 불리던 원효로 일대는 구용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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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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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tablewidth=100%> 475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553 신라 신주(新州)
557 북한산주(北漢山州)
568 남천주(南川州)
604 한산정(漢山停)
660 한산주(漢山州)
757 한주 한양군(漢州 漢陽郡)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고려시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940 과주(果州) 용산처(龍山處)
995 관내도(關內道) 과주 용산처
1018 양광도(楊廣道) 광주목(廣州牧) 과주 용산처
1285 양광도 광주목 과주 부원현(富原縣)
1390 경기좌도(京畿左道) 과주 부원현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조선시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1394 경기좌도(京畿左道) 한양부(漢陽府) 고봉현(高峯縣)
1395 경기좌도 고봉현
1413 경기도(京畿道) 고양현
1424 한성부(漢城府)
1461 한성부 서부(西部)
1721 한성부 서부 용산방(龍山坊)
청파5계
(靑坡五契)
청파4계
(靑坡四契)
동문외계
(東門外契)
신창계
(新倉契)
진휼청계
(賑恤廳契)
형제정계
(兄弟井契)
탄항계
(灘項契)
도화동계
(桃花洞契)
1867 청파4계 도화동외계
(桃花洞外契)
도화동내계
(桃花洞內契)
1895.
5. 26.
한성부 서서(西署) 용산방
청파4계 동문외계
(東門外契)
신창내계
(新倉內契)
진휼창계
(賑恤倉契)
형제정계 탄항계 도화동계
사거리계
(四巨里契)
청파상4계
(靑坡上4契)
동문외 신창내 진휼창 형제정 탄항 외동(外洞) 내동(內洞)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일제강점기 ~ 미군정기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1910.
10. 1.
경기도(京畿道) 경성부(京城府) 서서(西署) 용산방(龍山坊)
청파4계
(靑坡四契)
동문외계
(東門外契)
신창내계
(新倉內契)
동문외계
(東門外契)
진휼창계
(賑恤倉契)
형제정계
(兄弟井契)
탄항계
(灘項契)
형제정계
(兄弟井契)
도화동계
(桃花洞契)
사거리계
(四巨里契)
청파상4계
(靑坡上4契)
동문외 신창내 동문외 진휼창 형제정 탄항 형제정 외동
(外洞)
내동
(內洞)
1911.
4. 1.
경기도 경성부 용산면(龍山面)
청파4계
(靑坡4契)
하마비계
(下馬碑契)
동문외 신창내 동문외 진휼창 형제정 탄항 형제정 외동 내동
1914.
4. 1.
경기도 경성부
경정
(京町)
원정1정목
(元町一丁目)
원정2정목
(元町二丁目)
영정
(榮町)
원정3정목
(元町三丁目)
청수정
(淸水町)
원정4정목
(元町四丁目)
산수정
(山手町)
암근정
(岩根町)
1943.
6. 10.
경기도 경성부 용산구(龍山區)
1946.
8. 11.
경기도 서울시(서울市) 용산구
1946.
9. 28.
서울특별자유시(서울特別自由市) 용산구
1946.
10. 1.
문배동
(文培洞)
원효로1가
(元曉路一街)
원효로2가
(元曉路二街)
신계동
(新契洞)
원효로3가
(元曉路三街)
신창동
(新創洞)
원효로4가
(元曉路四街)
산천동
(山泉洞)
청암동
(淸岩洞)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현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1946.
9. 28.
서울특별자유시(서울特別自由市) 용산구(龍山區)
1946.
10. 1.
문배동
(文培洞)
신계동
(新契洞)
원효로1가
(元曉路一街)
원효로2가
(元曉路二街)
원효로3가
(元曉路三街)
신창동
(新創洞)
원효로4가
(元曉路四街)
청암동
(淸岩洞)
산천동
(山泉洞)
1947.
6.
문배동 신계동 원효로1가동
(元曉路一街洞)
원효로2가동
(元曉路二街洞)
원효로3가동
(元曉路三街洞)
신창동 원효로4가동
(元曉路四街洞)
청암동 산천동
1949.
6.
원효로4가청암동
(元孝路四街靑岩洞)
1949.
8. 15.
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 용산구
1955.
4. 18.
문계동
(文契洞)
원효로1가동 원효로2가동 원신동
(元新洞)
심원동
(心遠洞)
1970.
5. 5.
한강로1동
(漢江路一洞)
원효로1동
(元曉路一洞)
원효로2동
(元曉路二洞)
2008.
6. 30.
원효로1동 }}}}}}}}}
본래는 백제의 영토였고,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남진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함에 따라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북한산군(北漢山郡)이 신설되어 이에 속하였다. 553년에는 신라 진흥왕이 북진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함에 따라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현 수도권 일대에 신주(新州)가 설치되어 이에 속하였다. 신주는 이후 북한산주(北漢山州), 남천주(南川州), 한산정(漢山停), 한산주(漢山州)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이르러 한주(漢州)가 되었고, 한강 이북에는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였는데, 이 일대는 한양군에 속하였다.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는 지금의 과천시를 중심으로 과주(果州)가 설치되었고, 이 일대는 과주 산하의 용산처(龍山處) 지역에 속했다. 용산이라는 지명은 원효로 서쪽 마포구와 경계를 이루는 부분에 있는 산이 마치 한강을 향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용의 형상과 닮았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이 용산이라는 산은 현대에 와서는 모두 택지로 개발되어 산의 자취는 찾아 볼 수 없고, 청암동에서 마포역 방면으로 높은 고개를 지나는 데에서 이곳에 산이 있었으리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과주 용산처는 995년( 고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관내도에 속하였고,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는 10도를 폐하고 5도 양계로 재편하면서 양광도 광주목(楊廣道 廣州牧)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267년 동안 행정구역의 변동이 없다가, 1285년( 충렬왕 11년)에 과주 부원현(富原縣)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325년에는 충숙왕 조국장공주가 이곳을 지나다 아들을 출산하였는데, 용산에서 태어났다 하여 용산원자(龍山元子)라 불렸다. 용산원자가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으므로, 원래대로라면 용산원자가 충숙왕의 뒤를 이어 고려의 왕이 되었을 것이고, 이곳은 왕의 출생지로 후히 대접 받았을 터이나, 용산원자는 안타깝게도 향년 17세로 요절하였고, 용산원자의 이복형( 공원왕후의 장남)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충혜왕이다.

1390년( 고려 공양왕 2년)에는 경기(京畿)를 확장하면서 경기를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로 나누었고, 과주 부원현은 경기좌도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인 1394년( 태조 3년)에는 부원현을 과주에서 떼 내어 한양부 고봉현에 예속시켰다. 이듬해인 1395년( 태조 4년)에는 개성부에서 한양부로 천도를 단행하며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였고, 고봉현을 한양부에서 독립시켜 경기좌도 산하에 두었다.

1424년( 조선 세종 6년)에는 한양도성 바깥의 지역을 성저십리(城底十里)로 편입하면서 한성부에 속하게 되었고, 1461년( 조선 세조 7년)에는 고봉현 소속이었던 지역을 한성부 서부(西部)에 편제하여 이에 속하게 되었다. 1721년( 영조 21년)에 한성부 서부 산하에 용산방(龍山坊)을 신설할 때 용산방에 속하게 되었고, 이 지역에는 청파4계(靑坡四契), 청파5계(靑坡五契), 동문외계(東門外契), 신창계(新倉契), 진휼청계(賑恤廳契), 형제정계(兄弟井契), 탄항계(灘項契), 도화동계(桃花洞契)가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지금의 원효대교 북단 일대에 용산진(龍山津)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고려 말까지도 용산강 일대는 10리의 긴 호수로 되어 연화가 만발하여 개경에서는 왕실, 문사들이 연꽃을 구경하러 이곳까지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이후 한양천도를 단행할 즈음에 지금의 염리동 부근의 모래언덕이 무너지면서 용산강의 호수가 없어지고 조수가 이곳까지 들어오게 되자, 지방의 세곡 수송선이 모두 용산강으로 밀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그 후 용산진은 지금의 동작대교 북단에 있던 동작진(東雀津)과 더불어 숭례문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터 중 하나로서 삼남지방과 서해 방면에서 들어오는 조운선의 종착점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많은 물자들이 오고 가는 나루터로서 대단히 번성하였다. 신창계나 진휼청계 등의 지명을 보면 알겠지만, 용산진이 가까웠던 관계로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에 각 관청 부속 창고들을 두었는데, 선혜청(宣惠廳)[2] 부속 별창고인 신창(新倉, 옛 만리창)과 군자감(軍資監)[3] 부속 강감(江監, 혹은 강창), 진휼청(賑恤廳) 등이 있었다. 이 중 강감의 동쪽 대문 부근에 있던 마을이 동문외계, 신창 부근에 있던 마을이 신창계, 진휼청 부근에 있던 마을이 진휼청계가 된 것이다.

1867년( 고종 4년)에는 청파4계와 청파5계가 합쳐져 청파4계가 되었고, 도화동계는 도화동외계와 도화동내계로 나뉘었다. 1895년 5월 26일에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면서 청파4계 산하에 청파상4계(靑坡上四契), 청파하4계(靑坡下四契), 사거리계(四巨里契)가 신설되었고, 이 중 청파상4계는 원효로1가, 청파상4계의 일부와 사거리계는 문배동에 해당한다. 신창계와 진휼청계는 각각 신창내계(新倉內契)와 진휼창계(賑恤倉契)로 개칭되었으며, 도화동외계와 도화동내계는 다시 도화동계로 합쳐졌고, 산하에 외동(外洞)과 내동(內洞)이 있었다. 동문외계 산하에는 동문외, 신창내계 산하에는 신창내, 진휼창계 산하에는 진휼창, 형제정계 산하에는 형제정, 탄항계 산하에는 탄항 등의 동이 신설되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1일에는 한성부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됨과 동시에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그 이듬해인 1911년 4월 1일에는 방과 계가 폐지되고, 용산방은 경기도 경성부 산하의 용산면(龍山面)이 되었다. 따라서 각 계 산하에 있던 동은 모두 용산면의 바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사거리계와 청파상4계의 일부가 청파4계로 개편되었고, 청파상4계의 나머지 지역은 하마비계(下馬碑契)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는 경성부의 관할구역을 축소하여 성외 지역은 모두 고양군에 이관하였는데, 용산면 지역은 성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경성부에 잔류했다. 대신 용산면을 폐지하고 모두 일본식 행정구역인 정(町)과 정목(丁目)으로 바뀌어 경성부 직속에 두었는데, 청파4계의 일부 지역을 경정(京町, 쿄초)으로 개편하였고, 청파4계의 대부분과 하마비계를 합쳐 원정1정목(元町一丁目, 모토마치잇초메)을 신설하였다. 동문외는 원정2정목(元町二丁目, 모토마치니초메)과 영정(榮町, 사카에초)으로 나뉘었으며, 동문외의 일부 지역과 신창내의 일부 지역을 합하여 원정3정목(元町三丁目, 모토마치산초메)을 신설하였고, 동문외, 신창내, 형제정의 일부 지역과 진휼창을 합쳐 청수정(淸水町, 시미즈초)을 신설하였다. 형제정의 일부 지역과 탄항의 일부 지역을 합쳐 원정4정목(元町四丁目, 모토마치욘초메)을 신설하였고, 형제정, 도화외동의 일부와 탄항을 합쳐 산수정(山手町, 야마테초)을 신설하였으며, 도화외동과 도화내동의 일부를 합쳐 암근정(岩根町, 이와네초)을 신설하였다.

1943년 6월 10일에는 구제(區制)를 시행하면서 용산구가 신설되어 이에 속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는 경성부가 경기도에서 독립하여 서울특별시로 개편되었고, 그해 10월 1일에는 일본식 지명을 갈아엎으면서 원정1정목은 원효로1가(元曉路一街)로, 원정2정목은 원효로2가(元曉路二街)로, 원정3정목은 원효로3가(元曉路三街)로, 원정4정목은 원효로4가(元曉路四街)로, 경정은 문배동(文培洞)으로, 영정은 신계동(新契洞)으로, 청수정은 신창동(新倉洞)으로, 산수정은 산천동(山泉洞)으로, 암근정은 청암동(淸岩洞)으로 개칭되었다. 원효로1~4가는 충무로 충정로처럼 한국사의 위인 중 한 명인 원효대사의 법명을 따 와서 지은 것이고, 문배동은 지금은 당고개순교성지가 있는 문배산에서 따 왔으며, 신창동과 신계동은 원래 있던 지명을 되살린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원효로나 산천동, 청암동은 일본식 지명을 조금 수정한 것에 가깝고, 원효로의 경우는 원정과 비슷한 지명을 찾다 보니 원효대사의 이름을 빌린 것에 가깝다.

1947년 6월에는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제도(洞會制度)를 시행하면서 각 법정동을 관할하는 동회를 설치하였고, 1949년 6월 이전에 원효로4가동회와 청암동회가 합쳐져 원효로4가청암동회가 되었다. 1955년 4월 18일에는 동회제도가 폐지되고 행정동 제도를 시행하면서 법정동 문배동과 신계동은 행정동 문계동(文契洞)에서, 법정동 원효로3가와 신창동은 행정동 원신동(元新洞)에서, 법정동 원효로4가, 청암동, 산천동은 행정동 심원동(心遠洞)에서 통합 관할하게 되었다. 원효로1가동과 원효로2가동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70년 5월 5일에는 원효로1가동과 원효로2가동이 통폐합되어 원효로1동이 되었고, 원신동과 심원동이 통폐합되어 원효로2동이 되었으며, 문계동은 한강로1가동과 통폐합되어 한강로1동의 관할구역이 되었다. 2008년 6월 30일에 문계동이 원효로1동으로 이관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2.2. 행정구역

2.2.1. 원효로1동

용산구 행정동
원효로제1동
元曉路第一洞 | Wonhyoro 1(il)-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3020044
관할 법정동 원효로1~2가, 문배동, 신계동
하위 행정구역 21통 134반
면적 0.59㎢
인구 17,021명[A]
인구밀도 28,849.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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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백범로 350 (문배동 19-2)
원효로1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용산구 행정동으로, 원효로1가, 원효로2가, 문배동, 신계동의 4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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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 원효로1가
용산구 법정동
원효로1가
元曉路一街 | Wonhyoro 1(il)-ga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200
관할 행정동 원효로1동
면적 0.21㎢

서울특별시 용산구 법정동으로, 행정동 원효로1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원효로1동의 관할구역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법정동으로, 백범로 이북 지역에 해당한다. 동쪽은 경부선을 경계로 남영동에, 서쪽은 백범로79길을 경계로 효창동에, 북쪽은 청파동3가에, 남쪽은 원효로2가와 문배동에 접한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청파동에 속하던 지역이었다. 청파4계에 속하였고, 구한말에는 청파4계 산하의 청파상4계 지역이었다. 1911년에 이 지역은 청파4계 일부와 하마비계(下馬碑契) 지역이었는데, 여기서 하마비(下馬碑)란, 대개 왕족이나 장군, 고관,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을 지날 때, 예를 표하는 의미로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가라'고 알려 주는 표지석이다. 아마도 근처에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기 때문에 이 즈음에 하마비를 세워 둔 것으로 보인다. 이 하마비 주변으로 마을이 있었다 하여 하마비계라 하였다. 청파4계 일부와 하마비계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정1정목(元町一丁目)으로 개편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그대로 원효로1가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 주택가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관내에 서울용산경찰서, 용산구보건분소, 용산꿈나무종합타운이 있다. 과거에는 용산구청도 이곳에 있었으나, 2010년 이태원동으로 이전하였고, 옛 용산구청사는 용산꿈나무종합타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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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 원효로2가
용산구 법정동
원효로2가
元曉路二街 | Wonhyoro 2(i)-ga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300
관할 행정동 원효로1동
면적 0.13㎢

서울특별시 용산구 법정동으로, 행정동 원효로1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원효로1동의 관할구역 중 서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동쪽과 남쪽은 신계동에, 서쪽은 원효로3가와 용문동에, 북쪽은 백범로를 경계로 원효로1가에 접한다.

조선 시대에는 동문외(東門外)로 불렸으며, 동문외는 군자감(軍資監)의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 동쪽 문 밖으로 발달한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군자감이란, 조선시대에 군사상 필요한 물자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로, 지금의 원효로3가에 군자감의 창고 중 하나인 강감(江監)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동문외의 일부 지역이 원정2정목(元町二丁目)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그대로 원효로1가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근처에 용산전자상가가 있는 관계로 신계동과 더불어 컴퓨터 가게가 많이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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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3. 문배동
서울특별시 용산구 법정동으로, 행정동 원효로1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원효로1동의 관할구역 중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동쪽은 청파로를 경계로 남영동, 한강로1가, 한강로2가에, 서쪽은 용산선을 경계로 신계동에, 북쪽은 원효로1가에 접한다. 원효로1가와의 경계선은 과거 서울역에서 용산선으로 나가는 삼각선을 따라서 획정된 것으로, 삼각선이 사라진 후에 택지로 개발되어 그 흔적은 사라졌으되 법정동 경계선으로나마 남은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청파동의 일부였으며, 본래는 청파5계에 속하였다가, 원효로1가와 함께 청파4계로 통폐합되었고, 갑오개혁 이후에는 청파4계 산하의 사거리계(四巨里契)와 청파상4계의 일부 지역이 되었다. 1911년 이후 청파4계에 속했다가, 1914년에는 청파4계의 일부 지역이 경정(京町)으로 개편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지금은 당고개순교성지로 알려진 문배산에서 동명을 따 와 문배동으로 개칭하였고, 1947년 6월에는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제도(洞會制度)를 실시하며 법정동 문배동을 관할하는 문배동회가 설치되었으나, 1955년 4월 18일에 동회제도를 폐하고 행정동 제도를 실시할 때에 문배동회와 신계동회가 통합되어 행정동 문계동(文契洞)의 관할구역이 되었다. 문계동은 1970년 5월 5일에 한강로1가동과 통합하여 한강로1동이 되었으나, 2008년 6월 30일에 원효로1동으로 이관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원효로1동이 문배동 일원을 관할하고 있다.

동역의 대부분이이 주상복합 아파트 오피스텔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는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2000년대 무렵에 재개발을 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아직도 오리온의 본사와 공장은 이곳에 남아 있다.[5] 이외에도 관내에 원효로1동 주민센터와 용산구 유일의 등기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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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4. 신계동
용산구 법정동
신계동
新契洞 | Singye-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2300
관할 행정동 원효로1동
면적 0.14㎢

서울특별시 용산구 법정동으로, 행정동 원효로1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원효로1동의 관할구역 중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동쪽은 용산선을 경계로 문배동에, 서쪽은 원효로3가에, 남쪽은 옛 만초천의 유로를 경계로 한강로2가 한강로3가에, 북쪽은 원효로2가에 접한다.

신계동이라는 동명은 구한말부터 이곳에 일본인들이 정착하여 새로운 마을을 꾸렸다는 데에서 신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행정구역상 동문외(東門外)의 일부에 해당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영정(榮町)이 신설되었다. 해방 이후에 신계동으로 개칭되었다.

용산전자상가의 일부분이 신계동에 걸쳐 있고, 신계동의 상당 부분이 컴퓨터 가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는 당고개순교성지가 있고, 867세대 규모의 용산e편한세상 아파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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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원효로2동

용산구 행정동
원효로제2동
元曉路第二洞 | Wonhyoro 2(i)-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3020044
관할 법정동
[ 펼치기 · 접기 ]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원효로3가, 원효로4가
하위 행정구역 22통 148반
면적 0.71㎢
인구 13,582명[A]
인구밀도 19,129.5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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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효창원로8길 3 (산천동 81-1)
원효로2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용산구 행정동으로, 신창동, 산천동, 청암동, 원효로3가, 원효로4가의 5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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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1. 신창동
용산구 법정동
신창동
新倉洞 | Sinchang-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400
관할 행정동 원효로2동
면적 0.06㎢

서울특별시 용산구 법정동으로, 행정동 원효로2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용문동에, 서쪽은 산천동에, 남쪽은 원효로3가와 원효로4가에, 북쪽은 도원동에 접하고 있다.

효창동 213번지 일대에 조선 시대 선혜청[7]의 별창고인 만리창이 있었는데, 만리창을 이곳에 옮겨 새로 지었다 하여 신창(新倉)이라 불렀고, 신창 앞에 형성된 마을을 또한 신창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구휼미를 풀던 관청인 진휼청(賑恤廳)이 이곳에 있었는데, 진휼청 앞에 있는 마을 또한 진휼청이라 불렀다고 한다.

1721년( 영조 21년) 이래로 이 지역은 진휼청계(賑恤廳契) 일원과 신창계(新倉契), 동문외계(東門外契), 형제정계(兄弟井契) 각 일부에 속하였고, 갑오개혁 이후에는 신창계가 신창내계(新倉內契)로, 진휼청계가 진휼창계(賑恤倉契)로 개칭되었으며, 각 계의 산하에는 신창내, 동문외, 진휼창, 형제정 등의 동이 신설되었다. 1911년에는 방(坊)과 계(契)가 폐지되면서 각 동이 용산면(龍山面) 산하에 놓이게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용산면이 폐지되고, 진휼창 일원과 신창내, 동문외, 형제정 일부를 합쳐 청수정(淸水町)을 신설하였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0월 1일에는 옛 지명을 살려 청수정을 신창동으로 개칭하였으며, 1947년 6월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제도(洞會制度)가 시행되며 법정동 신창동 일원을 신설된 신창동회가 관할하게 되었다. 신창동회는 1955년 4월 18일에 동회제도를 폐하고 행정동 제도를 시행하며 법정동 원효로3가 일원을 관할하던 원효로3가동회와 통폐합되어 원신동(元新洞)으로 개편되었고, 1970년 5월 5일에 법정동 원효로4가, 청암동, 산천동 일원을 관할하던 심원동(心遠洞)과 함께 원효로2동으로 통폐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동 전역이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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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산천동
용산구 법정동
산천동
山泉洞 | Sancheon-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500
관할 행정동 원효로2동
면적 0.10㎢
[clearfix]
2.2.2.3. 청암동
용산구 법정동
청암동
靑岩洞 | Cheongam-dong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600
관할 행정동 원효로2동
면적 0.07㎢
[clearfix]
2.2.2.4. 원효로3가
용산구 법정동
원효로3가
元曉路三街 | Wonhyoro 3(sam)-ga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700
관할 행정동 원효로2동
면적 0.16㎢
[clearfix]
2.2.2.5. 원효로4가
용산구 법정동
원효로4가
元曉路四街 | Wonhyoro 4(sa)-ga
<colbgcolor=#004ea2><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용산구
행정표준코드 1117011800
관할 행정동 원효로2동
면적 0.31㎢
[clearfix]

[1] 구리 방면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2] 오늘날의 국세청에 해당하는 관청 [3] 오늘날의 병무청에 해당하는 관청 [A] 2024년 5월 주민등록인구 [5] 참고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청년 시절 문배동의 오리온 공장에서 일한 바 있다. [A] [7] 오늘날의 국세청에 해당하는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