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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옥

<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신기옥
申基玉 | Shin Ki Ock
파일:1=틀=판교작업실에서 신기옥 작가. 2024. 5.9. 사진=권동철.jpg
출생 1941년 2월 17일 ([age(1941-02-17)]세)
전라북도 부안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화가
학력 홍익대학교 회화과
웹사이트 신기옥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신기옥 인스타그램

1. 개요2. 생애3. 미술운동4. 연대별 작품 영상5. 작품세계 발자취6. 개인전 및 단체전7. 신기옥 화론(畵論)8.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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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기옥(申基玉, Shin Ki Ock, 1941년 2월 17일 ~ )은 (線)의 반복에 의한 단순화를 변화와 확장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대한민국 화가이다.

2. 생애

파일:2=생애신기옥.jpg
(왼쪽) 1963년 10월 27일 결혼식. (오른쪽) 1961년 2학년 때 실기실. 누드작품으로는 세 번째로 면 처리를 과감하게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신기옥.
아버지 신찬경(申贊京, 1899~1970), 어머니 이옥녀(李玉女, 1911~1972) 사이에 3남 4녀 중 장남으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 269번지에서 출생했다. 평산 신씨 제정공파 32대손이다. 취학 전 아버지의 권유로 서당(書堂)에서 천자문(千字文), 계몽편(啓蒙篇), 사자소학(四字小學) 등 한학을 익혔다.

옹정국민학교에 입학하여 3학년 때 6.25 전쟁을 맞았고 9.28 서울 수복 후 전주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36회, 1959)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동기생인 송계일(宋桂一, 전북대학교 교수 역임)과 함께 하숙하면서 미술교사 벽천(碧川) 나상목(羅相沐, 1924~1999) 선생에게 동양화를 사사 받았다.

그러나 이후 부모님의 미대 진학에 대한 반대에 부딪혀 1년 간 쉬었고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당시 미대 학장은 김환기(金煥基, 1913~1974) 교수였고 2학년이 되고서 실기 담임이 한묵(韓默, 1914~2016) 교수였는데 한 학기 뒤 프랑스로 그림을 하러 가셨다. 실기를 지도해준 이봉상(李鳳商, 1916~1970) 교수에게도 많은 자도 편달을 받았다.

3학년 때 박서보(朴栖甫, 1931~2023) 선생이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했다. 실기실에서 3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작가다운 작가’가 되기 위한 따끔한 충고와 격려의 강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신기옥은 1963년 10월 27일 평생의 반려자 신순자(申順子, 1941~)와 결혼했고 슬하에 1남 2여를 두었다.

3. 미술운동

파일:4=미술운동신기옥.jpg
(왼쪽) 실기실 앞에서, 왼쪽부터 최명영, 신기옥, 이상락, 1963. (오른쪽) 왼쪽부터 신기옥, 권영우, 최창홍, 이규상 교수, 김수익, 서승원, 최명영, 이상락, 맨 앞 앉은 이승조. 1964년 2월 졸업식으로 오리진의 멤버들이다. 사진제공 = 신기옥.
신기옥은 1963년 대학교 3학년 여름에 최명영, 김수익, 김택화, 최창홍, 이상락, 권영우, 서승원 등 총 8명의 회화과 동기생들이 창립한 오리진 회화 협회(Origin Painting Association)멤버이다. 그 해 가을 국립중앙미술관 1~3층에서 오리진 창립전을 가졌고 세계적으로 풍미했던 미술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 경향을 출품했다.

“당시 국전(國展)이라는 아카데믹한 한쪽이 있었고 비구상을 하는 그룹이 있었는데 3학년 때 충격적인 전시회가 하나 있었다. 2년 선배들인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출신들이 덕수궁 돌담 외벽에 대형 그림을 걸어 놓았던 ‘벽전(壁展)’이라는 전시가 그것이다. 나의 경우 미술에 대한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혀 준 계기가 되었는데 한국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1]

신기옥은 1963년 추상으로서는 유일한 공모전이었던 신상회 주최 신상전(新象展)에서 장려상, 조선일보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現代作家招待美術展)에서 차석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7년 12월 중앙공보관화랑에서 개최된 ‘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했다.

“대학시절 하루 그림 작업에 매달리다 해질 무렵 실기실 불을 끄고 어슴푸레 한 조명에서 과감하게 지우는 작업을 하고 집에 갔다. 관람자가 보았을 때 화면의 수많은 조형언어가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오도록 한 과정이었다. 그것을 다음날 다시 수정하고 또 해질녘 작품을 바라보며 수정하기를 반복하여 대작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것은 나의 치열한 미술공부 방법 중 하나였다. 그땐 을지로에서 안료를 사서 기름을 개어 직접 물감을 만들어 썼다. 나의 미술대학 4년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열정의 시기라고 여긴다.[2]

4. 연대별 작품 영상

5. 작품세계 발자취

파일:3-1=2007~2021신기옥.jpg
(위 왼쪽부터)생성과 소멸, 130×99㎝ Acrylic on canvas, 2010. 사진=김흥규. 162.2×97㎝, 2009. 상황, 170×100㎝, 2017. 생성과 소멸, 145.5×145.5㎝, 2012. 사진=이동훈. Line Rhythm, 194×174㎝, 2021. 130×130㎝, 2021~2022. (아래 왼쪽부터)Line Rhythm, Acrylic on canvas 97×97㎝, 2021~2022. 112×162㎝. 112×162㎝. 112×162㎝. 112×162㎝. 112×162㎝. 80×80㎝, 2021~2022. 사진=김흥규.
◇단순화의 시대코드 실존적 회화접근(2007~2021)
작가는 대학시절의 앵포르멜 작업을 하나 떠올려 그려 보게 된다. 그 화면 위 하얀 가로 (線)을 나이프로 그었는데 선이 있음으로써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발견한다. 이후 선과 미디움(medium)을 이용한 요철(凹凸)이 부가되며 진화하게 된다. ‘생성과 소멸’, ‘순환’ 등 명제는 물리적 구분이 아니라 작업의 일관성에 이어지는 과정에서 부여 된 것일 뿐으로 단색의 밑 작업에 추상적 형상이 얹어지는 일관된 화법을 보인다.

“내 안의 무의식속엔 오늘의 시대미감인 ‘단순화’가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단색바탕은 그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여긴다. 나의 회화를 구현해 나가는 화법은 그렇게 진화해 갔다.[3]

“서양화가 신기옥 그림의 바탕 배경에 나타난, 수직으로 겹겹이 포개진 직선들은 무한히 반복되는 디지털 코드와 도시적 공간을 가득 메운 건물을 은유하거나 때로는 상징한다. 이는 물화(物化)된 도시적 시공간 속에서 우리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회화적 접근으로 안내한다. 이는 우리가 그의 작품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이며, 여기에 그가 이 시대의 조형적 특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파일:3-2=신기옥=2022-현재=.jpg
(위 왼쪽부터)Line Rhythm, 65×65㎝ Acrylic on canvas, 2023. 46×46㎝, 2023. 46×46㎝, 2024. 46×46㎝, 2023. 46×46㎝, 2023. (아래 왼쪽부터)Line Rhythm, 91×117㎝ Acrylic on canvas, 2023. 193×150㎝, 2023. 46×46㎝, 2023. 46×46㎝, 2024. 46×46㎝, 2023. 50×50㎝, 2023. 사진=이승한.
◇선의 무한반복 한국 단색화의 유전인자(2022~현재)
신기옥 단색화는 선의 무한반복에서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에너지가 나온다. 이러한 조형언어를 ‘군집미학’이라 명명했다. “신기옥 작품은 초창기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나이프로 이루어진다. 화면은 계단처럼 층층이 나뉘어져 있는데 그 간격이나 넓이가 균등하다.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층을 낸 부조물이 충분히 마른 뒤에는 그 안을 가벼운 나이프터치로 처리해간다.[5]

“마침내 신기옥 작가가 천착한 세계는 ‘선율’연작. 씨줄 날줄의 직조, 동어반복의 선, 전면 균질(all-over)의 구성, 모노톤의 색채…. ‘선율’의 조형요소는 한국 단색화의 유전인자와 겹친다.[6]” “‘영혼의 선율’은 작가의 삶과 경험이 세계 와 함께 찾은 최적의 심적 거리를 상징한다. 세계의 천맥(阡陌)을 상징하는 가로선과 세로선이 중첩되어 역사를 직조하며, 그 가로선과 세로선 사이로 작가의 떨리는 내면의 선율을 메아리친다.[7]

“화면엔 온정의 심도를 배가키기는 한반도 풍토성(風土性)이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다. 하여 일상에 안주하는 관성(慣性)을 일깨워 조선 후기 전인적문인화의 우아미가 배어있는 정신성으로 발현되는 이것이 신기옥 단색화의 사의론(寫意論)이다. 동시에 ‘나’와 우주공간의 영원성에 대한 인연법의 함축미로 표출되는 운치의 인간학이 되는 것이다.[8]

6. 개인전 및 단체전

개인전
• 2024 갤러리 비선재, 서울
• 2020~2014 한가람미술관(미술과 비평 아트페스티벌), 서울
• 2013 인사아트센터, 서울
• 2012~2008 예맥화랑(한국국제아트페어), 서울
• 2011 갤러리 베세토, 서울
• 2009 갤러리 라메르, 서울
• 2008 인사아트센터, 서울. 서울아트페어 벡스코(부산)
• 2007 인사아트센터, 서울. 한가람미술관(화랑미술제),서울
주요단체전
• 2013 대한민국아트페스티벌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 2008~2011 세계열린미술대축제, 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분원, 목포문화예술회관
• 2009 대한민국현대미술르네상스전-단원전시관, 안산
• 2008 예맥화랑 개관 15주년 기념전, 서울
• 1968 오리진전-신문회관, 서울
• 1967 청년작가연립전, 서울
• 1963 오리진회화협회 창립전-중앙공보관, 서울
• 1962 국전(國展)-경복궁현대미술관, 서울

7. 신기옥 화론(畵論)

파일:5=화론=작업실에서 신기옥 화백. 사진=권동철. 5.16.2024. .jpg
작업실에서 신기옥 화백. 사진 = 권동철.

나는 지금 단색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은 시대성과 관련이 깊다.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현대화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오늘이 어제같이 똑같은 일상이다.

이렇게 지루한 환경 속에서 현대인은 지쳐있다. 자연을 벗 삼고 음풍명월(吟風詠月)을 즐기던 옛 시절이 그립다. 오늘의 대중에겐 휴식과 힐링이 필요하다. 그림이 그 갈증을 풀어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그냥 보면 와 닿는 그림, 즉물적 반응의 감성을 교감할 수 있는 회화에 고민했다. 작가는 대중과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과 동떨어진 작업은 의미가 없다. 여기에 나의 단색화 ‘선율’ 시리즈가 나오게 된 필연의 이유가 있다.

나는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께서 배틀 위에서 명주(明紬)를 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면서 짜진다. 지금 내가 캔버스 위에서 하는 작업도 요철(凹凸)이 있는 가로선 위에 나이프로 세로선을 겹치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께서 내 캔버스 위에 환생하신 것처럼!

이렇게 선(線)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서 에너지가 집적(集積)된다. 앙상했던 가지에 봄 햇살이 닿으면 새싹이 돋아나듯 침잠의 생명이 일제히 발아(發芽)하는 것처럼, 한 호흡으로 캔버스 위에 내 마음을 담고 내 안 영혼의 울림을 쏟아내는 것이다. [신기옥 화백 작업실에서. 대담정리 =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5]

8. 외부링크

(전시장 IN)단색화가 신기옥‥통찰의 힘 필연의 귀환


[1] 신기옥, 회상-나의 미술대학시절, 2024. [2] 신기옥, 회상-나의 미술대학시절, 2024. [3] 신기옥, 단순화-나의 조형언어, 2007. [4] 김광영 숭실대 명예교수, 선과 색의 미적의미, 미술과 비평, 2017. [5] 서성록 미술평론가, 신기옥 : 단순과 간결의 조형, 2013. [6] 김복기 미술평론가, 영혼의 선율, 아트인컬처(Art in Culture), 2024. [7] 이진명 미술비평가, 화가 신기옥-영혼의 선율, 2024. [8]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진리의 기품 곧은 이치의 인간학,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