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神 弓활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생긴 칭호. 말 그대로 활을 매우 잘 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칭. 가끔 인간이 다루기 힘들지만 성능은 좋은 활을 일컫기도 한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명궁이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이 나이 16세 때 아버지가 남긴 활과 화살을 받아 쏘기만 하면 백발백중이라 세상 사람들이 그를 신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 대한민국 양궁
대한민국의 양궁 역사를 통틀어 지대한 업적을 남긴 궁사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신궁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e스포츠의 본좌라인과 비슷하지만, 신궁 계보는 본좌 라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사용한 표현이다.대한양궁협회나 국가에서 부여하는 공식적인 칭호는 당연히 아니지만, 인터넷과 언론을 통하여 널리 사용된다. 김진호 선수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1979년 세계선수권에서 무려 5관왕에 오르면서 신궁 칭호를 처음으로 부여받았다고 한다. 뉴스 아카이브 상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기록은 1984년 1월 1일 조선일보인데, 여기서 '神弓(신궁) 金珍浩(김진호)' 란 표현이 등장한다.
서향순 선수가 등장하여 84 올림픽에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1]을 따내며 신궁 계보를 이어갔고, 88 올림픽에서 김수녕 선수가 등장한 후부터는 최소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포함한 2관왕" 정도는 해야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다.
후술할 선수는 "해당 올림픽 개최 연도에 언론과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신궁으로 꼽혔거나 개인전 우승을 포함한 올림픽 2관왕"이라서 언론에서 신궁 계보에 자주 꼽힌다.
- 김진호 -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하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라는 많은 메달을 획득하였다. 그외, 다양한 세계 대회 금메달이 간단히 두 자리가 넘는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지만, 결국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다. 그래도, 1980년에 신궁으로 가장 많이 꼽혔기에 등재되었다. 신궁 계보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큰 언니.
- 서향순 -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김진호에게서 신궁 칭호를 이어받았다.[A]
- 김수녕 - 1988 서울 올림픽 2관왕 포함 올림픽 메달 6개 (금 4, 은 1, 동 1), 수많은 국제대회 우승, 수많은 세계신기록을 만들어 낸 전설 중의 전설이다. 한국 양궁 선수들 중에서도[3]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냈기에, 신궁을 언급할 때 김수녕만 지칭하기도 한다.
- 조윤정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2관왕
- 김경욱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관왕. 카메라 브레이커.
- 윤미진 - 2000 시드니 올림픽 2관왕 및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박성현 - 2004 아테네 올림픽 2관왕 및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첫 2관왕 2연패를 노렸으나 중국 관중들의 무개념 소음응원에 집중력이 흔들려 중국의 장쥐안쥐안에게 금메달을 내주었다. 후술할 박경모의 아내이다.
- 기보배 - 2012 런던 올림픽 2관왕 및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
- 장혜진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B]
- 구본찬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B]
- 오진혁 -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로 대한민국 남자 양궁 개인전 사상 첫 금메달, 단체전 동메달 및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유망주 시절 별명이 소년 신궁이었지만, 긴 슬럼프에 시달리면서 신궁 별명을 잃어버렸었다. 결국 은퇴를 앞두고 신궁 칭호를 탈환한 셈.
- 안산 - 2020 도쿄 올림픽 3관왕. 올림픽 양궁 역대 최초 (혼성, 여성 단체, 여성 개인) 3관왕 및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최초 단일 하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였다.[6] 2021년 기준 20살의 나이에 벌써 올림픽 금메달을 3개나 수상했기 때문에, 김수녕의 업적을 뛰어넘을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 임시현 - 2024 파리 올림픽 3관왕.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개인/단체/혼성에서 37년 만에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고 3관왕에 오른 것도 모자라 2024 파리 올림픽 랭킹 라운드에서 올림픽 신기록과 세계 신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1위를 기록했다. # 그리고 단일 하계올림픽 3관왕을 안산에 이어 또다시 획득하며 양궁 종목 세계 최초 2개의 메이저 대회 3관왕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신궁에 명단을 올렸다.[7]
- 김우진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종목 3관왕. 총 금메달 5개, 올림픽 출전 3연속 금메달 달성으로 대한민국 양궁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8]
보다시피 지금까지의 남자 신궁은 구본찬, 오진혁, 김우진뿐이다. 여자 선수와 다르게 한 명의 남자 선수가 더블, 트레블을 달성한 사례가 희소해서 그런 듯. 여자부에서는 대한민국이 1984년 이래로 꾸준히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것에 비해, 남자부에서는 워낙 세계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심해서 그렇다. 2012년이 되어서야 첫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할 정도로 고전했다.
2.1. 가끔 신궁으로 꼽히는 선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포함한 메달을 2개 이상 수상했지만, 아쉽게도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수상에 실패"했기 때문에 언론에서 신궁 계보에 가끔 꼽히는 선수들이다. 실제로도 신궁 틀에 등재된 선수들은 "선수명 + 신궁" 구글 전체 기간 검색 결과가 만 단위를 넘어가지만, 해당 문단에 등재된 선수들은 천 단위 정도이다. 김제덕은 비교적 최근의 양궁 선수라서 만 단위를 가뿐히 넘어갔지만.물론 어디까지나 신궁으로 꼽히는 빈도 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며, 해당 선수들도 대한민국 양궁계의 전설들이다.
- 박성수 - 1988 서울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이한섭, 전인수와 함께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최초 남자 양궁 금메달 수상자이다. 그래서 드물게 남자 신궁 계보의 시초로 꼽히기도 한다. 더욱 드물게도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8위 성적을 거뒀던 구자청 선수를 꼽기도 하는데, 사실 여자부의 원조 신궁 김진호가 더욱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구자청 선수는 당대에는 '명궁'으로 불렸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남자대표팀감독을 맡았다.
- 왕희경 - 1988 서울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상술한 김수녕과 함께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최초 여자 단체전 양궁 금메달 수상자이다.
- 윤영숙 - 1988 서울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 상술한 김수녕과 함께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최초 여자 단체전 양궁 금메달 수상자이다. 이로써 1988 서울 올림픽 양궁 종목 여자 개인전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메달을 모두 싹쓸이했다.
- 오교문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 및 2000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장용호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및 2000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현재까지는 후술할 박경모와 함께 올림픽 메달 갯수만 따지면 남자 양궁 선수 중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금2 은1)
- 김남순 - 2000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 이성진 -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및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박경모 -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 상술한 박성현의 남편이다. 현재까지의 남자 양궁 선수 중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올림픽 금2 은1, 세계선수권 금4 은1 동1, 아시안게임 금3) 아쉽게도 개인전 금메달을 수상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 결승전에서 너무 아쉽게 패배하여 당시 여자친구이자 현재 아내와 함께 사이좋게 개인전 은메달을 수상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단독으로 꼽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아내와 함께 신궁 부부로 꼽힌다.
- 임동현 -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및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 윤옥희 -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 2021년 은퇴하기 전까지 여자 현역 최연장자였다. 2020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최종 8인에 들어가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예천은 김진호 선수의 고향이기도 하며 매년 양궁에 투자를 쏟아붓는 지자체인데, 그런 점에서 예천 양궁의 대들보이자, 후배들의 모범이다. 보통 예천에서 나고자라 양궁을 꾸준히 하는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 여자는 예천여고 남자는 경북일고에 진학하는데, 예천여고 출신으로 예천 양궁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래 김제덕 선수도 그렇고 학교가 대표 선발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 김제덕 -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 2관왕,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20년 당시 아직 17살인데도 벌써 금메달을 2개나 수상했기 때문에 앞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인기도 높아지고 있어서 앞으로 언론에게 신궁으로 자주 꼽힐 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경모의 업적을 뛰어넘을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 이우석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2관왕 및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9] 한 끗 차이로 국대 선발전 3위 안에 들지 못하거나 군 입대 이후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 조기전역에 실패하는 짠한 모습을 보였다.[10] 게다가 2020 도쿄 올림픽때는 역대급 불운을 겪였지만[11] 결국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이후 제 기량을 보여주며 남자 단체와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처음 출전한 파리 올림픽에서도 남자 단체 금메달에 큰 기여를 한 것,[12] 그리고 아직 젊은 본인의 나이로 보면 이후의 올림픽에도 계속 출전해 개인전 금메달을 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1]
84 올림픽에는 개인전만 있었고, 단체전은 없었다.
[A]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는 단체전 부문이 없었기 때문에, 한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2관왕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3]
세계 선수들을 모두 비교해 보더라도 김수녕이 가장 좋은 메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B]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는 혼성 단체전 부문이 없었기 때문에, 한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3관왕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B]
[6]
동계올림픽을 포함한다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달성한
진선유에 이어 두번째 인물이다.
[7]
그것도 두 메이저 대회 연속해서 3관왕이며, 당연하지만 이 기록 또한 양궁 역사상 최초이다.
[8]
김우진의 경우 올림픽 메달보다 더 어렵다는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한국 올림픽 역사상 전 종목 통틀어 최초의 5관왕 선수다.
[9]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전국체전에서 5관왕을 했다.
[10]
이때 상대는
김우진
[11]
2020년 선발전에서는 3위 안에 들었지만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며 다시 치러진 선발전에서 윗 문단의 김제덕에게 국가대표 자리를 내주었다.
[12]
결승전 본인의 순서에서 모두 10점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