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21:51:04

식리총 금동신발

파일:식리총 금동신발1.jpg

파일:식리총 금동신발2.png
예상 복원 모습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

1. 개요

飾履塚 金銅製飾履.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경주시 노동동 126호분인 식리총(飾履塚)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금동 신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길이 320㎜.[1]

파일:식리총 금동신발3.jpg

1924년 식리총(飾履塚)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형 신발로, 제작 연대는 대략 5세기(서기 40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전 세계적으로 금동제 신발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동시기 고구려 백제에서 총 14켤레의 신발이 발견된 반면, 신라는 그 2배에 가까운 27켤레가 발견된 상태이다. 황남대총(남분, 북분),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식리총과 같은 큰 봉분을 가진 무덤뿐만 아니라, 경주시 주변 지역인 양산시, 대구광역시 달서, 의성 탑리 등의 무덤에서도 다수가 발견되는 이 금동 신발은 무덤에 매납된 다양한 황금 장신구들과 함께 신라의 발달된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술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신라 왕릉 중 최초로 발굴했던 금관총에서 기존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수많은 황금 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자 이에 크게 놀란 일제가 다음 발굴지로 선택한 것이 금령총과 식리총이었다. 그중 이 식리총에서는 백화수피제 관모, 금 귀걸이, 옥 목걸이, 은 허리띠, 금은 장식대도, 금속 그릇, 토기, 말갖춤, 큰칼, 철제 무기, 칠기류 등이 쏟아져나왔는데 그중에 금관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화려한 무늬들로 뒤덮인 이 금동신발이 발견되었고 이에 이 126호 무덤의 이름은 식리총(飾履塚)이라고 붙혀졌다. 식리(飾履)가 곧 신발이라는 뜻이다.

파일:식리총 금동신발5.png
파일:식리총 금동신발4.jpg
파일:식리총 금동신발6.jpg

식리총 금동신발의 황금 무늬 구성은 바깥 라인쪽에 불꽃무늬, 안쪽에는 거북등무늬로 구획한 후 그 안에 다양한 동물과 새무늬 등을 배치하였는데, 좌우 측판의 동물무늬에는 현무, 주작, 호랑이 등이 확인되고, 발뒤꿈치 부분에는 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가장 화려한 무늬가 배치된 바닥판의 경우, 뿔을 가진 도깨비,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 날개 달린 물고기,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가진 가릉빈가 등의 상상 속의 동물무늬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다양한 연꽃무늬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도안은 당시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던 페르시아의 장신구 형태를 신라가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특히 거북등 무늬는 육각형이 연속적으로 붙어있는 것으로 5~6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크게 유행한 양식이다. 당시 신라의 국제적인 문화 교류 및 수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무늬들로 가득차 있어 신라, 고구려, 백제를 통틀어 한국의 금동 신발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1,600년 전 신라의 화려한 황금 공예술을 보여준다.

3. 외부 링크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