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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10:52:45

시바(아시카가)


시바(斯波)씨는 일본 중세의 무사 가문으로, 아시카가 가문의 지파다.

시조 아시카가 이에우지(足利家氏)는 본디 아버지 아시카가 야스우지(足利泰氏)의 적자였으나, 어머니가 내란에 연루돼 서자로 떨어지고 종가의 지위는 동생 아시카가 요리우지(足利頼氏)에게 넘어갔다. 이에우지가 무쓰국 시바군을 받아 이에우지의 후손이 시바씨가 되었으나, 시바씨를 쓴 것은 무로마치 시대 무렵이고 이전까지는 아시카가씨를 쓰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종가는 병위부(兵衛府)의 장관이나 차관을 대대로 지내, 무위가(일본식 독법으로는 부에케)로 불렸다. 주로 오와리, 도토미, 에치젠 슈고를 겸임했으며, 무로마치 막부에서 중신으로 활약해 호소카와, 하타케야마 가문과 함께 무로마치 막부의 재상이라 할 수 있는 간레이를 독점해, 이 세 가문을 함께 3관령이라 했다. 한때는 3관령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가문으로 대우받았으나, 15세기 중반에 들어 막부의 개입이 더해져 시바 요시타케(斯波義健)의 두 양자 시바 요시토시(斯波義敏)과 시바 요시카도(斯波義廉) 사이에 가독 분쟁이 일어나 하타케야마 가문의 가독 분쟁과 함께 오닌의 난의 주요 원인이 되면서 몰락했다. 무위가는 가이(甲斐), 오다(織田), 아사쿠라(朝倉) 세 가문을 가로로 중용해[1] 가이씨에게 에치젠과 도토미 슈고다이, 오다씨에게 오와리 슈고다이를 맡겼다. 그런데 오닌의 난 와중에 아사쿠라씨가 서군에서 동군으로 배반하는 대가로 에치젠 슈고직을 통째로 탈취해서 독립했다.

가이씨는 에치젠에서 아사쿠라씨와 함께 세력을 겨뤘으나 결국은 아사쿠라씨에게 밀려나 에치젠에서 쫓겨나 도토미로 갔는데, 이 도토미는 시바 이전에 이미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로 유명한 이마가와 가문의 방계 도토미 이마가와 가문이 대대로 슈고를 지냈었으나 시바 가에 밀려난 곳이었다. 시바 가는 계속 반항하는 도토미 이마가와 가를 완전히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들이 스루가 슈고를 지내는 종가 이마가와씨에게 도망가 스루가 방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이마가와 요시타다(今川義忠)의 공격은 막아내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요시타다의 아들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2]의 계속되는 공격까지는 막아낼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시바씨에게 남은 영토는 오와리요, 남은 슈고다이는 오다씨뿐이었다. 시바 요시타쓰(斯波義達)는 오와리를 바탕으로 도토미를 회복하고자 했고, 출병에 반대하는 슈고다이 오다 다쓰사다(織田達定)의 반란을 진압해 오와리를 기반으로 하는 센고쿠 다이묘로 전환하는 단초를 열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마가와씨와의 싸움에선 우지치카에게 대패하고 사로잡혀 머리가 깎이는 대굴욕을 당해, 급속도로 가문이 쇠퇴하게 된다.

한편, 오다씨도 상 4군 슈고다이인 이세노카미 오다씨와 하 4군 슈고다이인 야마토노카미 오다씨로 갈라졌고, 이미 시바씨에게서 도토미를 빼앗은 이마가와씨가 오와리의 혼란을 틈타 동남부를 갉아먹었는데, 이마가와씨가 내분에 빠진 틈을 타 야마토노카미 오다씨의 가신인 오다 단조추 가문의 오다 노부히데가 이마가와령 오와리를 탈취해 주군격인 이세노카미, 야마토노카미와 맞먹는 세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단조추 가문은 아직까지는 시바, 야마토노카미 오다 가문의 신하라는 본분을 지키고 있었다.

무위가 당주로 시바 요시타쓰의 아들인 시바 요시무네(斯波義統)는 단조추 오다 가문에 접근해 야마토노카미 오다 가문을 견제하려 했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야마토노카미 오다 노부토모(織田信友)에게 살해당하면서 시바 가문의 위명은 실추되었다. 단조추 가문의 오다 노부나가는 주군을 죽인 자를 친다는 명분으로 시바 요시무네의 아들 시바 요시카네(斯波義銀)를 옹립하고 야마토노카미 가문을 쳐서 멸했고 뒤이어 이세노카미 가문도 쳐서 멸해 오와리를 평정했다. 시바 요시카네는 이용 가치가 없어진 이후 이마가와 가문과 내통한다는 이유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무위가의 몰락을 마무리했다. 시바 요시카네는 이후 오다 노부나가와 화해하고 그의 가신이 되었다. 다만 오와리 수호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아서, 죽는 날까지 명목상으로나마 오와리 수호 직위를 역임하고 있었으며 지역의 명사로서 의외로 꽤 영향력이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당대 오와리 지방의 공문서들은 1569년 이후까지도 오와리 수호 시바 요시카네의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한편, 요시카네의 동생 모리 나가히데(毛利長秀)와 쓰가와 요시후유(津川義冬)는 각자 오다 가문을 섬겨 다이묘가 되었으나, 모리 나가히데는 아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해 개역됐고[3] 쓰가와 요시후유는 주군 오다 노부카츠에게 살해돼 근세에까지 다이묘로 남지는 못했다.

시바 가문은 종파 무위가 외에도 가문명인 시바에 어울리게 무쓰와 데와에 여러 지파들을 두었는데, 특히 오슈탄다이 시바씨와 우슈탄다이 시바씨가 강성했다. 오슈탄다이 시바씨는 선조 이에우지가 시모우사국 가토리군 오사키 땅을 받은 데서 연원하여 오사키(大崎)씨를 일컬었고, 우슈탄다이 시바씨는 선조 오우칸레이 시바 이에카네(斯波家兼)의 아들 시바 가네요리(斯波兼頼)가 데와국 모가미군에 자리잡은 데서 연원하여 모가미(最上)씨를 일컬었다. 이외에도 시바씨의 이름이 유래한 시바군에 고스이지성을 쌓고 토착 세력이 된 고스이지 시바씨가 있는데, 이 가문은 계통을 알기 위한 자료가 부족하다.

오사키씨와 모가미씨는 둘 다 무로마치 시대에 오슈탄다이와 우슈탄다이의 권위를 토착 세력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몰락했고, 한때는 두 가문 모두 다테씨에 종속되기도 했다. 다테 다네무네가 무쓰슈고에 보임되면서 오사키씨의 세습 오슈칸레이라는 권위는 사라졌다. 오사키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 당시 호조 정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역됐고 가사이-오사키의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가 멸망했다. 모가미씨는 전국시대 말기에 모가미 요시아키라는 영웅을 배출해 에도 막부에서 58만 석을 안도받는 거대 다이묘가 됐으나, 요시아키 사후 내분으로 몰락했다. 고스이지 시바씨는 난부씨의 압박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버텼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무사령을 몇 년 앞두고 결국 난부씨에 멸망하고 말았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단골손님. 이 시점에서는 이미 가문이 많이 쇠락한 상태이지만, 주인공 노부나가의 명목상 주군 가문이라 오와리에 영역이 넉넉하면 보통 오다 노부나가 이외의 오와리 세력들을 통합한 세력의 다이묘로 등장하고,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처럼 오와리에 자리가 없어서 오다 노부나가만 나오더라도 가신으로라도 얼굴을 들이민다. 고스이지 시바씨는 지금의 이와테현을 대표하는 다이묘로 등장한다. 가신단이 형편없이 약하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인근의 난부, 안도, 다테에는 비벼볼 수도 없고 가사이,[4] 오사키, 도자와보다도 나쁘면 나쁘지 좋지는 않다.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 노부나가 사후의 고스이지 시바가(위에서도 말했듯이 무위가가 안 나와서 시바가는 이 시바가만 있다)는 고난도 플레이를 즐기는 플레이어의 과제로 많이 선택됐다.

Europa Universalis IV에서도 등장하는데, 프로빈스에 도토미는 없지만 무위가의 영토인 에치젠에 모가미씨가 자리잡은 우젠까지도 시바씨의 영역으로 나온다. 게임에서 일본 프로빈스가 66국보다 더 적어서 오사키씨가 있는 리쿠젠엔 다테만, 고스이지 시바씨가 있는 무쓰엔 난부만 나오지만 우젠이라도 건진 게 감지덕지. 그러나 일뽕이 대량 투입된 오다 가문을 출연시켜줄 자리가 필요하다고 오와리를 (당시까진 아직 시바씨의 가신에 불과한) 오다씨에게 강탈당했고, 두 프로빈스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군주 시바 요시타케가 바로 그 오닌의 난의 단초가 되시는 분인지라 2/2/2인 암군이라는 문제도 있다. 1471년까지는 무위가 당주가 군주로 나오고 그 이후로는 에치젠을 아사쿠라에 탈취당하면서 모가미가 당주들이 군주로 나오며, 모가미 요시아키가 마지막 시바씨의 군주로 등장한다. 실제 역사보다 이른 1598년에 가문이 사라지는데 이해는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아이즈로 이봉된 해로, 아이즈가 있는 리쿠젠 프로빈스에 다테 마사무네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에스기가 우젠으로 밀려나면서 시바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 있는 다이묘는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가문 이름이 Shibe doge 밈과 비슷해서 어느 정도의 팬이 있다.
[1] 막부에서 시바씨를 견제하기 위해서 가이씨나 아사쿠라씨에 직접 접촉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2]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아버지다. [3] 그전에 나가히데가 죽을 때 영지 대부분을 아들이 아닌 사위 교고쿠 다카토모에게 상속시켰으나, 다카토모는 모리 나가히데의 딸과의 사이에서 딸만을 낳아 다카토모계 교고쿠 가문에 시바 가문의 피는 전해지지 못했다. [4] 이와테현에 성이 넉넉하면 같이 나오는데 모자라면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