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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12-15대 운수대신 | |
일본국 제8-10대 참의원 의장
시게무네 유조 重宗雄三 | Shigemune yuj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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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 1894년 2월 11일 |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 |
사망 | 1976년 3월 13일 (향년 82세) |
도쿄도 | |
학력 | 도쿄공업대학 부속 고등학교 (졸업) |
직업 | 정치인 |
의원 선수 | 5 (참) |
의원 대수 | 1, 2-3, 4-5, 6-7, 8-9 |
경력 |
메이덴 대표이사 일본 참의원 의장 일본 참의원 부의장 제24대 운수대신 (제1차 기시 노부스케 내각) 자민당 참의원 의원 회장 일본 제국 귀족원 위원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정치인.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와 더불어 조슈 고산케(長州御三家)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2. 생애
1894년 2월에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서 태어났다. 1912년 3월 도쿄고등공업학교 부속 공업보습학교(현 도쿄공업대학 부속 과학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형 시게무네 요시미즈가 1896년에 창업한 회사 메이덴샤[1]에 입사했다. 1938년엔 대표이사가 되었고, 1946년 정계로 진출해 귀족원 의원에 칙선[2]되었다.1947년 일본국 헌법 제정에 의해 귀족원이 폐지되자 새로 신설된 상원의원 개념인 참의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해 3월 열린 제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요시다 시게루의 일본자유당 후보로 전국구 선거구에 입후보해 당선되었다.[3]
1953년 5월 참의원 부의장이 되어 1956년 5월까지 재임했다. 1959년 4월에는 제2차 기시 내각에 운수상으로 입각했다. 이후 2개월 만에 물러나서 자유민주당 참의원 의원회장이 되었다. 1961년에 전기기계공업의 기술 향상과 품질 개선을 통한 국산화를 이루어 일본 제품의 수출 진흥에 공헌해 남수포상을 수훈했다.
1962년 참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이후 참의원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이케다 하야토와 사토 에이사쿠 내각을 지탱해 참의원의 실력자로 불렸다.[4]이러한 시게무네의 정치적 영향력은 사토 내각 때 절정에 달해 기시, 사토와 함께 조슈의 고산케로 불렸다.
심지어 총리대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던 사토 에이사쿠도 법률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직접 의장실을 찾아가 시게무네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임 의장인 마쓰노 쓰루헤이[5]가 일본자유당 당적을 유지한 채 참의원 의장으로 재직한 것을 본받아 시게무네도 참의원 의장이 된 뒤에도 자민당 당적을 유지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자민당 참의원들을 자신의 파벌인 청풍회에 가입시켜 세를 과시하였고, 각료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을 제치고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도 미쳤다. 각료 자리에 오르길 희망하는 참의원 의원들이 거의 매일마다 시게무네의 의장실을 찾아갔기 때문에 당시의 참의원을 두고 "시게무네 왕국", "시게무네 천황"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편 시게무네는 이러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참의원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시키려 노력했고, 한일기본조약, 오키나와 반환 협정 등의 법안을 강행 처리하며 전후 일본의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게무네의 독재적이고 강압적인 스타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의원들도 적지 않았고, 사토의 후임을 두고 벌어진 각복전쟁과 4선 총재인 사토 에이사쿠와의 관계 악화로 그는 1971년 참의원 의장 선거에 불출마했다. 사실 원래 그는 참의원 의장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시게무네와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던 고노 겐조가 참의원 의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노의 출마 단념을 목적으로 불출마를 단행했으나, 고노는 참의원 개혁을 명분으로 의장 선거에 출마했고 시게무네 반대파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과 손을 잡고 시게무네가 지지하던 기우치 시로를 10표차로 꺾고 고노가 후임 의장직에 선출되게 된다.[6]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든 시게무네는 1974년 참원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은퇴했고, 그가 재직한 참의원 의장 재임일수 3,242일은 참의원 사상 최장 기록을 세웠다.
1976년 3월 13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도쿄 미나토구의 아오야마 장의소에서 자민당장으로 치러졌으며, 사후 종2위가 수여되었다.
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1946 - 1948 | 창당 |
|
1948 - 1950 | 창당 |
|
1950 - 1955 | 창당 |
|
1955 - 1979 |
합당 사망 |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46 | 제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전국구 |
|
1,360,456 (6.40%) | 당선 (61위) | 초선 |
1950 | 제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8,131,756 (29.05%) | 당선 (33위) | 재선 | |
1956 | 제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11,356,874 (39.69%) | 당선 (9위) | 3선 | |
1962 | 제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16,581,637 (46.4%) | 당선 (25위) | 4선 | ||
1968 |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20,120,089 (46.7%) | 당선 (5위) | 5선 |
5. 여담
-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들인 미키 다케오, 다나카 가쿠에이, 오히라 마사요시, 후쿠다 다케오의 성 앞글자를 따서 만든 삼각대복이란 단어를 창시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원은 시게무네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야나이시의 명물 미카도모치(三角餅)[7]에서 힌트를 얻어 삼각대복이라고 부른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 그의 생일인 2월 11이면 동료 의원인 이시카와현 출신의 하야시야 가메지로(林屋亀次郎)가 대구를 가져오고 시게무네 본인이 야마구치현에서 복어를 가져와 파티를 열었는데 이를 다라후쿠 모임이라고 불렀다.[8] "시게무네 천황" 이라 불리며 위세를 자랑하던 시절 의장 공관에서 파티가 열리면 총리 이하 당내 주요 파벌의 보스들을 비롯해 다수의 의원들과 경제계의 인사들 수백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1]
일본의
인버터 및 공업용 전자 장비 및 전기장치 제조회사, 1986년 한국에 진출하였고 2006년 10월 메이덴 코리아가 설립되었다.
홈페이지
[2]
공적 혹은 학식이 있는 인물 중에서 내각의 보필에 근거해 일본
천황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3]
시게무네가 참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생활을 이어갈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향 출신 사토 에이사쿠와 기시 노부스케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4]
시게무네는 참의원의 천황이라 불리울 정도로 참의원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자민당 총재 선거 때마다 80표 이상을 동원하며 이케다, 사토 정권을 지탱하였다.
[5]
마쓰노 라이조의 부친,
마쓰노 요리히사의 조부.
[6]
고노는 참의원 의장 선출 이후 자민당을 탈당하며 시게무네의 의장의 당적 보유 권한을 깨트렸다.
[7]
떡이나
센베이 위에
팥이나 갖가지 재료들을 넣고 구워 삼각형 형태로 잘라 만든 전통과자이다.
[8]
다라는 대구, 후쿠는 복어, 다라후쿠는 '배가 터지도록'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