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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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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연구 분야 | 블랙홀( 호킹 복사) | ||
생애 | 생애 ( 초년기 · 청년기 · 말년 · 사후) | |||
저서 | 시간의 역사 · 위대한 설계 | |||
기타 | 스티븐 호킹의 지니어스 | }}}}}}}}} |
1. 초년기
2. 청년기
1962년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나, 중동여행 이후 갑작스럽게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즉 루게릭병이 발병하여 의사에게 1~2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병으로 인해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책 한 장조차 넘기기 힘들고 1줄의 공식도 종이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는 암산으로 수식을 푸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해 결국 박사 학위를 따냈다. 박사 학위논문 제목은 Properties of expanding universes이며 2017년 10월경에 무료로 공개되었다.[3]루게릭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가 21세였는데, 오래 살아봤자 2년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76세까지, 즉 55년 동안이나 살았다. 이는 굉장히 희귀한 사례이다. 진행이 멈춘 건 아니고 매우 느리게 진행이 되었던 것이다.
병이 병인지라 병원비가 부족해져서 경제적 곤란을 겪었지만 영국은 의료복지제도가 매우 잘 되어있으므로, 치료비가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루게릭병으로 인해 몸이 굳어버린 탓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담할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때마침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가 성공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시간의 역사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호킹은 경제적으로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당시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던 블랙홀의 특징들에 대해 정리하고 우주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의 발표하여 일약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이후 근육위축과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인해 1985년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폐에 꽂은 파이프로 호흡을 하고,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로 대화를 했다.
병이 심해져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며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4] 컴퓨터를 이용한 음성합성 시스템으로 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5] 과거 비교적 몸이 자유로웠을 때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켜 강의도 하고, 글도 받아쓰고, 이야기도 나눴다고.
3. 말년
한때에는 병의 증상이 호전되어 고개 정도는 까딱이거나 팔을 움직이고 표정을 짓는 정도까진 됐다는데, 다시 병의 증상이 악화하면서 손가락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의사소통은 인텔에서 지원해주는 음성 합성 도구를 이용했으며 이 도구는 눈썹의 움직임이나 뺨의 움직임[8]을 감지해 글자를 입력할 수 있게 해줬다. 말년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해 이 도구를 사용해서 1분당 1개의 단어만을 입력할 정도로 힘겨워했는데,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은 동공 추적, 단어 자동완성 등의 기능이 추가되어 의사전달 능력을 10배 이상 향상시킬 계획이었다.신체 상태가 악화되었던 만큼, 인류의 사이보그화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 본인도 이미 생존을 위해 호흡기도 인공적인 걸로 교체하는 등 사실상 개조인간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이렇듯 일생의 대부분을 기계에 의지한 채 꿋꿋이 살아오면서 물리학, 천문학계에 혁신을 가져온 호킹 박사는 2018년 3월 14일 새벽(현지 시각),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 21세에 ALS 진단을 받은 이후로 55년을 더 산 것을 보면 그야말로 기적이다. 과학계 인사들은 물론 영국 정치인들과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큰 별이 졌다'며 애도를 표했다.
4. 사후
장례식은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그레이트 세인트 메리 교회(Church of St. Mary the Great, Cambridge)에서 3월 31일 거행되었고, 화장한 유해는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이 잠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감사성찬례 후 안장된다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명을 발표했으며, 6월 15일에 안치됐다.유품들은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과학박물관으로 귀속된다. #
[1]
사진 맨 오른쪽에 흰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이 스티븐 호킹이다. 키잡이는 노를 젓지 않기에 최대한 가벼워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 리더였다.
[2]
무한도전 조정 특집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콕스는 키잡이 이외에도 전반적인 통솔력과 더불어 물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 등의 지식을 상당 부분 갖춰야 맡을 수 있는 자리다. 즉, 오케스트라로 비유하면 지휘자인 셈이라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장애를 입기 전의 스티븐 호킹이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창시자인
스티븐 힐렌버그도 2017년
루게릭병이 발병하여
같은 년도에 사망했다. 즉, 스티븐 호킹 사망 8개월만에 스티븐 힐렌버그도 사망한 것. 다만 스티븐 힐렌버그는 루게릭병이 발병하고 보통인 1년만 살았다.
[4]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호킹은 본인 육성으로 말을 할 수 있었다. 단, 이미 발음이 매우 어눌해져 있어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
[5]
DECtalk DCT01의 여러 버전 중 하나인 Calltext 5010을 사용했다.
[6]
말 그대로 개그일 뿐으로, 나중에 DCT01이 단종되어 영국식 발음으로 TTS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호킹 본인이 거부했다. 이유는 그 목소리가 본인의 상징처럼 되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7]
미국의 토크쇼 호스트
존 올리버와의 인터뷰이다. 존 올리버 본인도 영국인이다.
[8]
병의 진행 때문에 이조차도 어려워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