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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라이벌리를 다룬 문서.아직도 팬들 사이에서는 애티튜드 시대의 단 하나의 아이콘을 꼽으라면 더 락을 꼽을 것인지 오스틴을 꼽을 것인지 논쟁이 오간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흥행 면에서나, 인기 면에서나, 조명 받은 시기로서나,[1] 상징적인 의미로서나, 상대 전적[2]으로나 다방면에서 모두 오스틴이 한 수 위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기운다.
1.1. 스티브 오스틴
오스틴은 이미 1996년 킹 오브 더 링 우승, 1997, 1998년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 후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를 꺾고 WWE 챔피언에 등극한 상태였고, 그 해 WWF 섬머슬램(1998)에서도 언더테이커를 클린 핀폴로 잡아내며 메인이벤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스톤콜드와 빈스 맥마흔과의 대립은 경쟁단체인 WCW를 역전하다 못해 패망시킬 정도로 폭발적인 히트를 쳤고, 앞으로 넘기 힘든 WWE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대립을 통해 스톤콜드는 블루 컬러의 정석적인 액션과 거친 캐릭터성 및 카리스마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스에게 억압받는 소시민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활동하며 락보다 훨씬 먼저 회사를 프로레슬링 업계 부동의 원탑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즉, 오스틴과 빈스 맥마흔 일가의 대립이 WWE 역사상 최전성기인 애티튜드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엄청나게 크다.오스틴의 강점은 전무후무한 캐릭터 성에 있다. 'Austin 3:16'으로 대표되는 그의 캐릭터는 그 당시로선 매우 충격적인 캐릭터이다. 그 때 까지의 선역은 헐크 호건으로 대표되는 선한 캐릭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를 앞세우는 캐릭터가 많았다. 하지만, 오스틴은 불의에 맞서싸우긴 하지만 선하지는 않고 오히려 '내 앞길 막지마'라는 Badass스러운 카리스마를 앞세워 거친 표현을 서슴치 않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선역이다. 사실 요새도 찾기 드문 특이한 캐릭터이고 그 카리스마 하나로 대부분의 상대를 압도하였으며, 사장으로서 모든 선수들의 위에 군림하던 그 빈스 맥마흔조차 벌벌 떨며 기어야 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오스틴이었다.
1.2. 더 락
반면 락은 1996년 데뷔 이후 역대 최연소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인이었고, 이후 빈스 맥맨의 코퍼레이션의 지원을 받아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첫 챔피언에 오르며 메인이벤터급으로 올라섰으나 그때는 오스틴의 위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락은 공교롭게도 1999년 레슬매니아 15의 메인이벤트에서 오스틴에게 패해 타이틀을 넘겨준 이후 턴페이스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현란한 마이크웍과 역동적인 액션의 포텐이 터지며 파죽지세로 인기가 치솟았고[3]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까지 오스틴이 목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한 동안엔 명실상부한 WWE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오스틴이냐 더 락이냐는 논쟁도 이 시점부터였다.더 락이 오스틴에 비해서 강점을 가지는 부분은 바로 말빨에 있다. 오스틴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쇼를 휘어잡는 편이라면 락은 마이크 하나만으로 관중들과 상대 선수를 가지고 노는 타고난 엔터테이너이다. 흑인식 슬랭을 섞어 상대와 관중을 조련하는 그의 마이크워크는 더스틴 로즈로 대표되는 특유의 스타일과는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그의 연설 능력은 'Rocky Sucks' 반응이 나오던 관중들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 잡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이는 파트타임으로 가끔 쇼에 출연하는 2020년대에도 유효하며 현 시점에서도 더 락의 능력은 독보적이다.
1.3. 두 명의 메인이벤터
목 부상때문에 장기간 이탈한 오스틴은 2000년 9월에야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 시점은 이미 더 락이 WWE의 1인자로 챔피언 장기집권을 하던 시기였다. 덕분에 WWE는 두 명의 아이콘을 갖게 되었고, 경쟁단체인 WCW는 이 시점에서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두 메인이벤터는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으로 일컬어지는 레슬매니아 17의 메인이벤트에서 역대 최고급 프로모를 뽑아내며 충돌했고, 이는 과거 헐크 호건 vs. 얼티밋 워리어에 뒤지지 않는 위상과 상징성을 가진 대립으로 평가받는다.[4]1.4. 레슬매니아 17 이후
레슬매니아 17에서 락에게 승리한 후 악역으로 전환한 오스틴은 패망한 경쟁단체 WCW와 ECW잔당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WWE에 위협을 가했고, 이에 맞선 락은 WWE를 수호하기 위한 리더로 활동했다. 이 대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5:5 매치에서 락의 팀 WWE가 오스틴의 연합군에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이듬해인 2002년은 둘의 직접적인 대립은 없었지만 레슬매니아 18에서 락은 헐크 호건과의 아이콘 vs. 아이콘 매치를 치러 승리했고, 오스틴 역시 스캇 홀과의 경기라는 나름의 드림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얼마 후 벌어진 WWE 드래프트에서 오스틴은 RAW, 락은 스맥다운 소속이 확정되면서 당분간 둘이 만날 일이 없게되었다. 게다가 오스틴은 회사와의 마찰로 스스로 WWE를 떠나버리고, 락 또한 2002년 8월 WWE 섬머슬램(2002)를 끝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장기간 이탈하며 둘의 대립은 아예 종결되는것으로 보였으나...
1.5. 마지막 대립
2003년 2월 락은 확 달라진 외모와 함께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 기믹으로 다시 WWE로 컴백했고, 오스틴 또한 WWE와 다시 계약을 맺으며 돌아왔다. 그리고 당시 스맥다운 소속이었던 락은 RAW로 이적해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못해본 일은 오스틴을 꺾는 것"이라면서 다시 한 번 오스틴에게 도전했고, 결국 둘은 레슬매니아 19에서 다시 한 번 충돌하게 된다. 이 경기에선 락이 피니시 기술 락 바텀을 3번 연달아 작렬시키며 오스틴에게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오스틴은 고질적인 목 부상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이 경기가 사실상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5]2. 정리
보다시피 둘이 직접적으로 대립한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1999년 당시의 대립은 락이 오스틴의 위상에 한참 뒤쳐졌고, 둘의 위상이 동급으로 평가받던 시절의 대립은 2001년 레슬매니아 시즌과 WWE vs. 연합군 시절, 그리고 2003년 레슬매니아 시즌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의 간판이자 아이콘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WWE 매니아들 사이에선 오스틴 vs 락은 꾸준히 회자되는 떡밥이며 지금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그도 그럴것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WWE는 2003년을 기점으로 오스틴이 현역에서 은퇴하고 락 또한 2004년 후로 영화에 전념하며 2011년 컴백 이전까지 무려 7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그 기간동안 단체의 탑페이스가 된 선수가 바로 존 시나였다. 애티튜드 시대의 재미와 흥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골수팬들에게 시나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고 시청률은 폭락했으며, 이는 더더욱 팬들이 오스틴과 락을 그리워하는 반작용도 불러일으켰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시기의 WWE를 그리워할 정도로 당시 둘의 위상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6]
그 탓에 많은 팬들은 다른 vs 놀이처럼 서로를 까내려 못잡아먹는 논쟁과 달리, 오스틴과 락 둘중 누가 우위인가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둘 모두가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향이 짙다. 말 그대로 그 둘이 대립하는 모습 자체가 재미있는, 좋은 의미로 아무나 이겨라하고 보았다는 것. 이는 전술했듯이 커리어 면에선 다방면으로 오스틴이 한 수 위로 인정받는 쪽으로 기운 탓이기도 하고, 락의 팬들도 이 부분에서는 딱히 토를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락이 영화배우로서 WWE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고, WWE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부동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배우 전업 후 7년만인 2011년에 WWE에 깜짝 컴백해 3년 연속으로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장식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인 부분 등이 오스틴과의 vs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커리어를 메꾸고 있다.
정리하자면 오스틴은 애티튜드 시대로 상징되는 WWE의 중흥기를 앞장서서 이끌며 단체의 아이콘이 되었고, 락은 오스틴의 공백기동안 그 바톤을 이어받아 애티튜드 시대를 지속시켜주며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둘의 대립은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을 찍으며 전설이 되었다.[7] 풀 타임 레슬러로서 활약하는 동안은 오스틴이 락에 다방면에서 우위를 점하며 WWE의 성장을 이끌었으나, 락 또한 영화배우를 겸업하면서 외부에서 WWE의 인지도를 올려주고, 이미 영화배우로서 성공한 2010년대에 WWE로 다시 컴백해서 활동할만큼 WWE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선수였다. 굳이 '유일무이한' 아이콘을 꼽자면 오스틴에 무게가 쏠리지만, 실상 둘의 우열을 가린다는건 크게 의미가 없을만큼 두 선수 모두 WWE 역사에 빛나는 커리어를 쌓은 마일스톤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라이벌의 기준을 '장기간 대립'으로 한정한다면 오스틴은 언더테이커, 락은 트리플 H쪽이 더 맞겠지만 그럼에도 오스틴 vs 락의 떡밥이 유효한 것은, WWE 역사상 그 둘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있는 위상을 갖춘 선수가 한 손에 겨우 꼽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3. 여담
- 현역 시절 둘은 경기와 프로모에서는 매우 치열하게 대립하며 다퉜지만 사적으로는 매우 절친한 사이다. 마지막 경기였던 레슬매니아 19에서도 경기 종료 후 서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서로를 리스펙트하던 사이였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서로와의 대립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또한 락은 오스틴 vs 락을 WWE 역대 최고의 라이벌이라 생각한다고 본인 SNS에 따로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 한편 이 둘은 대립이 아닌 제 3의 적이 나타나면 협력이나 오월동주 같은 관계로 공공의 적에 맞서는 모습도 보여줬다.[8]
- 위에 언급된대로 오스틴은 과거 오웬하트의 파일 드라이버를 잘못 맞아서 당한 목부상 여파로 레슬매니아 19를 마지막으로 만 40세도 되기 전에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관리만 잘하면 50대에도 파트 타이머로 간혹 경기를 가지는 케이스도 있는 만큼 팬과 선수 모두 아쉬울 부분. 게다가 레슬매니아 19 당시 마지막 경기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스틴의 은퇴를 예상하지 못한 팬들도 많았다. 그러한 아쉬움의 목소리들로 인해 그간 꾸준히 One more match 떡밥이 있었고, 결국 오스틴은 19년 후인 레슬매니아 38에서 케빈 오웬스와 진정한 마지막 매치를 가지며 팬들의 아쉬움을 풀게 되었다.
[1]
오스틴이 한참 메인 이벤터 급으로 조명을 받았을 시기에, 더 락은 아직
트리플 H와 함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놓고 다투는 하이 미드카더급 위치에 불과했다.
[2]
레슬매니아에서만 3번을 붙었는데, 오스틴이 2승 1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그 2승도 연승이었다. 레슬매니아 뿐 아니라 그 외의 경기들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락은 오스틴을 상대로 거의 매번 지기만 하는 살아있는 호구 수준이었는데, 1:1 경기로는 유일하게 락이 승을 챙긴 경기가 오스틴의 사실상 커리어 최후의 경기인 레슬매니아 19였고, 다 : 다 경기까지 합치면 2001 서바이버 시리즈 인베이전 경기에서 락이 오스틴을 상대로 최종 핀폴을 따낸 것이 추가된다. 즉, 락이 오스틴을 핀폴로 이긴 적이 경력 통틀어 두 번 뿐이다.
[3]
물론 그 이전부터 아이콘이 될 싹수는 일찌감치 보여줬다. 흑인 스테이블인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에서 활동할 당시 악역임에도 독특한 캐릭터로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섬머슬램 1998에서
트리플 H와 가진 사다리 매치에서 명경기를 뽑아낸 이후 서바이버 시리즈까지 맥맨의 코퍼레이션과 대립하던 그 잠깐의 턴페이스 기간동안 오스틴 못지않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보여준 가능성 때문에 WWE에선 오스틴이 부상으로 이탈한 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락을 단체의 간판으로 밀었고, 락은 WWE가 기대했던 그 이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4]
단체를 대표하는 선역 대 선역 메가스타들끼리의 충돌은 그 자체로 매우 희귀한 사례기 때문에 당연히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감이며, 그나마도 현재까지 제대로 된 사례는 레슬매니아 6의 헐크 호건 vs. 워리어와 레슬매니아 17의 오스틴 vs. 더 락 뿐이다. 그나마 이에 비교할 수 있는 건 레슬매니아 28, 29의 더 락 vs. 존 시나 정도다.
[5]
원래는 진짜로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으나, 19년 뒤인 레슬매니아 38에서
케빈 오웬스와 원모어매치를 가졌다.
[6]
다만 이건 정확한 말은 아니다. 시청률이야 미국 내 방송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이지 시나때문에 폭락하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나의 전성기에는 WWE의 수익은 계속 증가했다. 또한 애티튜드 시대도 실제로 오스틴과 락이 각각 은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이후 벤와 사건때문에 과격하고 성인지향적인 면을 자제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오스틴과 락이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레슬러들이긴 하지만 존 시나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 둘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이들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고 존 시나의 시대 역시 애티튜드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되려 프로레슬링 본연의 재미는 애티튜드 시대 이상으로 뛰어난 시대였다. 어디까지나 애티튜드 팬들의 입장이 이랬다고만 알아두자.
[7]
당장 애티튜드 시대에서 오스틴의 은퇴와 락의 영화배우로의 전업과 함께 폭력성의 문제가 겹치자 WWE조차도 불가피하게 애티튜드 시대를 종식시킬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시대들과 다르게 WWE조차도 불가피하게 종식했다고 평가받는 유일한 시대가 애티튜드 시대다. 정점인 레슬러 2명의 이탈로 인해 인기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사건사고까지 겹치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8]
이를 테면
백래쉬 2000에서 더 락과 트리플 H가 WWF 타이틀을 놓고 겨룰 때, 맥마흔 가문의 작당으로 경기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와중에 갑자기 오스틴이 등장하여 맥마흔 패밀리와 편향적 심판들을 모두 체어샷으로 작살낸 적이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린다 맥마흔이 당시 해고된 설정이었던 얼 헤프너 심판을 다시 데려와서 더 락에게 정당한 승리와 타이틀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