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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3 22:36:40

스티브 불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파일:울브스 스티브 불.jpg
이름 스티브 불 MBE
Steve Bull MBE
본명 스티븐 조지 불
Stephen George Bull
출생 1965년 3월 28일 ([age(1965-03-28)]세)
잉글랜드 스태포드셔 팁튼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팁튼 타운 FC (1984~1985)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985~1986)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1986~1999)
헤리퍼드 유나이티드 FC (2000~2001)
감독 스태포드 레인저스 FC (2008)
국가대표 13경기 4골 ( 잉글랜드 / 1989~1990)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은퇴 이후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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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인. 현역 시절 4부리그에 쳐져있던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프리미어리그 승격 목전까지 올렸다.

또한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한 마지막 3부리그 소속 선수기도 하다.

2. 클럽 경력

어린 시절 정식 프로팀 유스 선수가 아닌 학교 방과후 클럽 선수로써 축구를 시작한 인물이다. 고등학생 시절에서야 논리그 팀이었던 지역팀 팁튼 타운에서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팁튼 타운 감독의 추천을 받아 프로팀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에 유소년 선수로 처음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식으로 프로계약을 제시받고 프로 축구선수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1985-86 시즌 풋볼 리그 데뷔전을 가졌으나 강등권 전력의 팀 사정상 출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후 1986-87 시즌 팀의 2부리그 강등으로 인해 조금 더 많은 기회를 가져 각종 대회에 출전해 6경기 2골을 기록했으나 평범한 수준이었다. 결국 팀의 주전을 꿰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불은 1986년 11월, 당시 4부리그에서 허덕이고 있던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이적하게 되고 이는 그의 선수 경력 통틀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1.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시즌 중반에 합류했지만 상위리그를 경험하고 온 스티브 불은 그야말로 울브스에서 4부리그를 폭격한다. 86-87 시즌 30경기 출전 리그 15골 및 총 19골을 기록하며 감을 잡은 그는, 1987-88 시즌 리그 34골을 득점하며 팀을 4부리그 정상으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1] 또한 각종 컵 대회까지 합하면 그는 이 시즌에만 무려 58경기 52골이라는 스탯을 작성한다.

그의 골 폭풍은 3부리그에서도 이어졌다.1988-89 시즌 승격 첫해 3부리그에서 45경기 37골, 모든 대회 합산 55경기 50골의 가공할 골 결정력을 뽐내며 울브스의 2년 연속 리그 우승 및 승격을 이끌었다. 이 시즌 리그에서만 3번의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컵 대회에서 두 번의 포트트릭까지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신들린 수준이다. 88-89 시즌 3부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것은 당연했다.

1989-90 시즌 2부리그에서도 변함없는 골 결정력을 선보였다. 리그 42경기 24골에 총 48경기 27골로 역시나 리그 탑 급 공격수로 자리매김했고, 승격팀 울브스의 안정적인 중위권 마크를 이끌었다. 시즌 종료 후 2부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으며, 후술하겠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기도 한다. 이후 1990-91 시즌 리그 43경기 26골, 1991-92 시즌 리그 43경기 20골로 변함없는 득점력을 선보였지만 울브스는 도통 10위권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계속 잔류하게 된다.

1992-93 시즌 EPL이 출범했고 자연스레 2부리그 최고의 스타인 스티브 불에게도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구애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미 1991-92 시즌 종료 후 리즈 유나이티드의 영입 제의가 있었다고 하며 이외에도 뉴캐슬 유나이티드, 코번트리 시티 FC까지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영입 제안은 계속되었다. 특히 1995년 코번트리와는 이적료 150만 파운드에 이적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결렬되기도 했다.

1992-93 시즌부터 슬슬 출전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나올때마다 골은 잘 넣었다.1992-93 시즌 36경기 16골, 1993-94 시즌 27경기 14골로 2경기당 한 골은 꼭 넣었고, 특히 1994-95 시즌 리그 31경기 16골로 드디어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활약을 다시금 한다. 그러나 준PO에서 볼턴 원더러스에게 아쉽게 1승 1패, 한 골차 탈락을 경험하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에는 실패한다. 이 시즌 트란미어 로버스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울브스 소속으로 250골째를 기록했으나 빛이 바랬다. 이후 1995-96 시즌 44경기 15골, 1996-97 시즌 43경기 23골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울브스의 3년 연속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함께 했으나 번번이 승격에는 실패하고 만다.

1997-98 시즌부터는 무릎 부상이 도지기 시작하며 출전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 1997-98 시즌 31경기 7골로 그의 울브스 커리어에서 첫 시즌 한 자리수 리그 골에 머물렀고, 1998-99 시즌 15경기 3골의 기록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울브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2000년 울브스 은사였던 그레이엄 터너 감독의 요청으로 잠시 지역 팀인 헤리퍼드와 계약하며 컴백했으나 6경기 2골을 기록한 후 다시 현역에서 물러났다.

울브스에서 13시즌 동안 리그 474경기 250골, 모든 대회 합산 561경기 306골에 통산 해트트릭 18회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기록하며 울브스의 레전드가 되었지만, 선수 생활 동안 울브스와 함께 결국 프리미어 리그까지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3. 국가대표 경력

1989년 5월 존 파샤누의 부상 공백으로 처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의 대표팀 발탁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는데, 차기 시즌 승격을 달성했지만 엄연히 당시 3부리그 선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 바비 롭슨은 하부리그지만 한 시즌 50골을 넣은 그의 득점력을 눈여겨보았고, 5월 27일 스코틀랜드와의 A매치 평가전에 그를 처음 기용한다. 그리고 그는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는다.[2]

이후 그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본선을 준비하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지속적으로 소집된다. 1990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평가전에선 멀티골을 넣었고, 이후 열린 튀니지와의 경기에도 골을 넣으며 심지어 월드컵 최종 22인 엔트리에 발탁된다. 본선에서 비록 골을 넣진 못했지만 이집트와의 조별리그 선발 출전과 3차례의 교체출전으로 4경기에서 활약하며 잉글랜드의 4강 진출에 쏠쏠한 활약을 했다.

1990년 10월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출전한 이후 새 국가대표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 하에선 선택받지 못했다. 통산 A매치 13경기 4골을 기록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2000-01 시즌 헤리퍼드의 코치직을 맡으면서 상술한 것과 같이 잠시 선수로도 복귀해 뛰었다. 7년 뒤인 2008년, 6부리그 강등 위기에 처한 스태포드 레인저스 FC의 소방수로써 처음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데, 결국 팀을 강등의 위기에서 구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2008-09 시즌 초에도 스태포드 감독직을 유지하다가 2008년 12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는 코치 일을 더 이상 맡고 있지 않다.

5. 플레이 스타일

최전방 공격수로써 가장 무시무시한 신체 조건인 양발잡이다. 때문에 슈팅 상황을 다양하게 가져가며 하부리그를 폭격했다. 또한 175cm의 최전방 공격수 치고는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이 좋아 원톱 피벗 플레이를 꽤나 능숙하게 소화했다.

6. 여담



[1] 이 우승으로 울버햄튼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5번째로 4개의 디비전을 모두 제패한 클럽이 되었다. [2] 현재까지도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에 출전한 마지막 3부리그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