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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3 22:33:48

스티브 볼드

로멀 SK
Lommel Sportkring
파일:Steve Bould.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스티브 볼드
Steve Bould
본명 스티븐 앤드류 볼드
Stephen Andrew Bould
출생 1962년 11월 16일 ([age(1962-11-16)]세)
잉글랜드 스태퍼드셔주 스토크온트렌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직업 축구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스토크 시티 FC(1978~1980 / 유스)
스토크 시티 FC (1980~1988)
토키 유나이티드 FC (1982 / 임대)
아스날 FC (1988~1999)
선덜랜드 AFC (1999~2000)
감독 아스날 FC (2012~2019 / 수석 코치)
아스날 FC U-23 (2019~2021)
로멀 SK (2022~ )
국가대표 2경기 ( 잉글랜드 / 199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감독 경력5. 수상
5.1. 클럽5.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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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아스날의 센터백.

스티븐 앤드류 "스티브" 볼드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이자 아스날의 수석 코치였다. 그는 현역시절 193cm에 달하는 장신을 활용하여 공중볼을 따내고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담궈버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코너킥, 프리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아스날의 수석 코치로서 아르센 벵거를 보좌해 왔는데, 한때 일각에서는 벵거가 은퇴할 경우 그가 차기 감독으로 부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했다. 에메리가 부임하면서 2019년에 U-23 팀 감독을 맡았다.

2. 클럽 경력

2.1. 스토크 시티 FC

파일:external/www.stokesentinel.co.uk/9690094-large.jpg
볼드는 1962년 11월 16일 스토크온트랜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8년 16살의 나이로 고향팀인 스토크 시티에 입단했다. 이후 2년간 유스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그는 1980년 11월에 프로계약을 체결하고 1군팀으로 올라왔다. 볼드는 1981년 9월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면서 첫 데뷔경기를 가졌지만 팀은 3:2로 패했다. 하지만 그는 팀에서 주전 선수로 자리잡는데 실패했고 1982년 10월 5부리그에 해당하는 컴퍼러스 리그팀인 토르키 유나이티드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았다

이후 당시 스토크 시티의 감독 믹 킬스는 임대에서 복귀한 볼드를 센터백으로 변경시켜 폴 다이슨을 대체하도록 했다. 볼드는 새 포지션에 완벽히 적응했고 1군 팀의 주전 선수로 거듭났다. 볼드는 14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경기력을 보였지만 중간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풀타임 출전은 실패했다. 하지만 1983년부터 1985년까지의 기간 동안 1부 리그에서 40여 경기를 소화하며 3골씩 기록하는 등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다. 스토크는 1985년에 2부리그로 강등되고 말았지만 볼드는 팀을 떠나지 않았고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매시즌 36~38경기씩을 소화하며 2부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거듭났다. 이런 볼드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조지 그레이엄 아스날 감독은 1988년 6월 13일 39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볼드를 전격 영입했다.

2.2.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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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그레이엄은 볼드를 영입한 뒤 나이젤 윈터번 - 토니 아담스 - 스티브 볼드 - 리 딕슨으로 이어지는 강철의 포백을 구축했다. 볼드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1989년과 1991년에 1부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91-92 시즌엔 아스날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즌 아스날은 유로피언 컵에서 조기 탈락의 충격으로 리그에서 4위에 그쳤고 FA컵에선 두 수는 아래로 평가받던 렉섬 FC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1992년 8월 15일, 그는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4:2 완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FA컵과 리그컵 결승전에선 부상으로 결장했고 동료들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1993-94 시즌, 볼드는 유로파 위너스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쳐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1994년 2월 조지 그레이엄이 선수 에인전트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나 경질되자 팀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던 1996년 9월 아스날에 부임한 아르센 벵거는 아스날의 기강을 바로잡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때 볼드는 아스날을 떠날 것이라는 이적설에 휘말렸다. 하지만 벵거는 그를 잡기로 결정했고 볼드는 1997-98 시즌 아스날이 리그와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기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99-00 시즌, 아스날은 FA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 상대는 다름아닌 오랜 라이벌 맨유였다. 1:1로 팽팽하게 맞붙던 후반 막판, 아스날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그러나 피터 슈마이켈 데니스 베르캄프의 슛을 막아냈다. 그 직후 라이언 긱스는 엄청난 돌파력을 선보이며 볼드를 가볍게 제치고 골을 기록하며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한 달 뒤, 아스날은 또다시 맨유에게 패배하고 맨유의 리그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벵거는 볼드가 더이상 아스날에서 뛸만한 기량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를 선더랜드로 이적시켰다.

2.3. 선덜랜드 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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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볼드는 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선더랜드로 이적했다. 1999년 12월, 선더랜드의 감독으로 부임한 피터 리드는 볼드를 팀의 주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볼드는 선더랜드를 리그 7위로 기록했는데 유로파 컵 진출권인 6위와는 한 순위 아래였다. 그는 선더랜드에서 21경기를 출장했고 2000년 9월 관절염이 심해져서 더이상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볼드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까지 1부리그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고작 2번밖에 나오지 못했고 그나마도 31세의 나이가 될때까지 국가대표로 선발되지도 못했다. 토니 아담스가 국가대표로 66경기에 뛴 것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기록이었다.

4. 감독 경력

4.1. 아스날 FC (수석 코치)

은퇴 후, 볼드는 UEFA 코치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아스날 유스팀의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2008-09 시즌엔 아스날 U18팀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유스팀 선수들을 잘 통솔하여 이 시기 프리미어 아카데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도시에 FA 유스 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듬해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2012년 5월 10일, 볼드는 팻 라이스 수석 코치가 은퇴한 뒤 벵거의 부름을 받고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는 주로 수비를 담당했고 그의 지도력 덕분인지 아스날은 이전에 비해 경기당 실점률이 많이 낮아졌다. 현재 일각에서는 벵거가 은퇴하면 그가 유력한 감독 후보라고 보고 있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의 톈진행 확정 이후 전북 현대 감독직에 이력서를 제출했었다고 한다.

4.2. 아스날 FC U-23

2019년 6월 17일, 프레디 융베리와 직책이 바뀌어 U-23 팀 감독이 되었다. 감독이 미켈 아르테타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U-23 감독을 유지하고 있다.

데이비드 온스테인에 따르면, 2020-21 시즌 10위에 그치자 이 시즌을 끝으로 U-23 감독에서 해임되었다고 한다. 후임으로는 페어 메르테사커 아카데미 매니저를 선임한다고 한다.

4.3. 로멀 SK

2022년 6월 3일, 로멀 SK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

5. 수상

5.1. 클럽

5.2.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