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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2:12:57

슌판로

슌판로
春帆楼 | Shunpanro
<colbgcolor=#b28323><colcolor=#ffffff> 회사명 株式会社春帆楼
주식회사 슌판로
Shunpanro Inc.
국가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업종 숙박업, 요식업
설립일 1887년 ( 료칸 슌판로 개업)
유형 주식회사
대표자 니타나이 타카아키 총지배인
소재지
(본사)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아미다이지초 4-2번지
소재지
(도쿄 지사)
도쿄도 미나토구 하마마쓰초 2-3-1번지
일본생명 하마마쓰초 크레아 타워 14층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clearfix]
1. 개요2. 역사3. 상세4. 지점 목록
4.1. 현재 영업 중인 지점4.2. 폐점한 지점

1. 개요

파일:Shunpanrou-2941.jpg
시모노세키 슌판로 본점 전경
世界にその名いと高き / 馬関条約結びたる
세계에 그 이름 드높인 / 마관조약 맺어지고
春帆楼の跡といて / 昔しのぶもおもしろや
슌판로의 흔적에 이르니 / 옛날을 그리워함도 재미있구나
- 철도창가 산요편

일본 시모노세키시에 본점을 둔 고급 캇포 료칸[1].

슌판로라는 이름을 한자로 읽으면 "춘범루"가 되는데 이는 이토 히로부미 시모노세키까지 배를 타고 오다가 지금의 슌판로 건물 주변에 벚꽃이 잔뜩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지은 것이라 한다.

2. 역사

본래 슌판로가 있던 자리에는 아미타사(寺)라는 절의 처소가 있었으나 이 절이 메이지 시대 때 폐불훼석 정책으로 인해 신궁으로 개조되면서 없어진 후 이 처소 부지를 나카츠번의 안과의사 후지노 겐요가 사들여 1877년에 츠키와루 의원이라는 병원을 지어서 운영했고, 1887년에 겐요가 죽은 후, 그의 아내 후지노 미치가 이 병원을 요릿집으로 만든 것이 슌판로의 시작이다.

한편으로 슌판로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내에서 복어 요리를 처음으로 해금한[2] 1호 복어집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이토 히로부미가 야마구치현 출신으로서 복어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복어 덕후가 권력자가 되자 복어 금지령을 철폐했고, 이토를 비롯해서 해당 지역에서 다수 배출된 유신지사들이 중앙 정계에 자리잡자 이들을 통해 복어 요리가 일본 전체에 퍼지게 된 것.
파일:external/imgtu.5011.net/4407531467686616.jpg

슌판로는 세계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발자취를 하나 남겼다. 청일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 두 나라의 중역들이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는데, 이 회담장을 빌려준 숙소가 바로 슌판로이기 때문. 이를 묘사한 해당 그림은 슌판로 바로 옆에 있는 청일강화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이후 슌판로는 쇼와 천황을 비롯한 주요 황족들이 시모노세키에 들릴 때마다 머무는 어소가 되었고[3] 2차대전 기간 동안 공습으로 본관 건물이 전소되기도 했으나 전후 4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로 다시 세워졌고, 현재는 여러 지역에 지점을 꽤 많이 세운 사실상의 기업이 되었다.

3. 상세

파일:Shunpanrou Tokyo cuisine.jpg
슌판로 복어 정식

상술했듯 슌판로는 본래 복어집으로 시작한 곳이고, 시모노세키 자체도 복어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복어 코스 요리에 한해서는 최고의 기교를 보여준다. 타베로그에서도 3.6점의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

그러나 숙박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는데 슌판로 전체를 통틀어서 객실은 본점의 7개밖에 없는 데다가[4] 황족들이 많이 머물렀다는 스토리 때문에 최소 숙박비가 4만엔이고, 이마저도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실제로 여러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도 슌판로는 방이 없다는 이유로 예약할 수 없고, 만약 생긴다고 해도 극소수로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라 사실상 여기 머무르려면 시모노세키 본점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예약해야 한다.

4. 지점 목록

4.1. 현재 영업 중인 지점

4.2. 폐점한 지점


[1] 일단 료칸은 료칸이긴 한데 경영 목적이 숙박업이 아닌 요식업을 중심으로 하는 료칸이다. 실제로 슌판로는 원래 복어집이었다. [2] 그 전까지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복어 금지령 때문에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전까지 공식적으로 복어를 먹지 못했다. [3] 순종 황제도 슌판로를 2번 정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4] 즉 본점 제외 지점은 객실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