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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5 03:12:15

쇼트 셰틀랜드

쇼트 셰틀랜드(Short Shetland)

1. 제원

형식 : 4발 초계 비행정
전장 / 전폭 / 전고 : 33.54 m / 45.83 m / 11.28 m
익면적 : 244 m²
탑승인원 : 11명
초도비행 : 1944년 12월 14일
중량 : 34.5톤 / 54.5톤 / 56.8톤
동력 : 브리스톨 센타우러스(Bristol Centaurus) VII 18기통 공랭식 엔진 4기 (각 2,500마력)
최대속도 : 423 km/h
순항속도 : 295 km/h
항속거리 : 6,440 km
상승한도 : 5,182 m
상승률 : 276 m/min.
무장 : 2연장 12.7mm 기관총탑 3기 / 12.7mm 중기관총 1정 / 폭탄 및 폭뢰 1.8톤
생산수 : 2대

2. 소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해군 유보트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던 영국은 공군성으로 하여금 장거리 해상 초계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비행정 업체인 쇼트 사가 켄트주 로체스터 공장에서 대형 비행정 2척을 만들어냈는데, 쇼트 사 기존의 대형 비행정인 쇼트 엠파이어 쇼트 선더랜드 보다 훨씬 더 큰 거인기로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공군성의 장거리 초계 비행정에 대한 요구사양서 R.14/40에 맞춰 개발된 이 비행정은 선더랜드 제작에서 얻은 경험을 십분 활용해 짧은 시간 만에 완성시킬 수 있었다.

3. 설계 및 개발

요구사양서 R.14/40은 선더랜드보다 속도가 빠른 비행정을 위한 요구사양서 R.3/38이 그 시작으로, 전쟁 전에 제안되었던 요구사양서 R.5/39를 휴지통에 보내버리고 재빨리 대체했었다. 그런데 쇼트 사를 비롯한 각 항공기 메이커들은 요구사양서 R.5/39에 맞춘 설계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공군성은 선더랜드를 시급히 대신할 비행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조달 정책을 바꾸게 된다. 최대이륙중량이 38,102 kg (84,000 lb)로 되어있던 R.5/39에 비하면 R.14/40는 폭탄 탑재량만 9,072 kg(2만 lb)에 달해서 최대이륙중량은 45,359 kg(10만 lb)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 거대하고 무거운 비행정을 띄울 엔진은 브리스톨 센타우러스나 네이피어 세이버로 내정되었는데 두 엔진은 각각 당대 최강의 공랭 엔진과 액랭 엔진이었다.

R.14/40의 경합에는 쇼트 사의 강력한 라이벌인 사운더스 로우(Saunders-Roe : Saro) 사도 S.41이란 초안을 제출하여 자웅을 겨루게 된다. 하지만 그 무렵 유보트의 위협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공군성은 이 계획을 어느 한 업체에 몰아주는 것보다 유력 업체들끼지 협력하여 작업을 분담하는 공동 개발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세부 설계는 Saro에서 이루어졌고, 선체와 윙 박스 부분은 이들이 전에 1척만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운더스 로우 쉬림프(Saunders Roe A.37 Shrimp)에서 얻은 비행 데이터와 경험을 동원했다. 생산은 대부분 쇼트 사에 맡겨졌으나 사운더스 로우에게는 선체 후미의 제작과 최종 조립을 담당했다.

4. 파생형

시제 1호기이며 유일한 셰틀랜드 I으로 남겨진 기체로, 일련 번호는 DX166이었다. 1944년 12월 12일에 쇼트의 수석 테스트 파일럿 존 파커(John Lankester Parker)와 제프리 타이슨(Geoffrey Tyson)의 손에 의해 처녀 비행을 시작했다. 이 기체는 원형기여서 방어용 기총탑을 붙이지 않고 비행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처녀 비행 직전에 비무장 수송기로 용도가 바뀐 탓이기도 했다. 1945년 10월에 펠릭스토우의 왕립 해군 항공 실험연구소(MAEE)에 인도된 1호기는 곧바로 수상 활주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물 위에서의 조타 반응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만족할 만 했으나, 주날개 밑에 달린 보조 플로트의 위치가 너무 낮아 최대 적재시 흘수선이 얕아 이수에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그래도 표준 중량 상태에서 이착수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져 일단 띄워보니 비행 안정성, 특히 종안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가 끝나고 정박된 상태로 있던 이 기체는 1946년 1월 28일에 승무원의 부주의로 인해 주방에서 일어난 화재가 번져 불타버리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두 번째 프로토타입으로 건조된 DX171호기는 민간 수송기로 완성되어 셰틀랜드 II로 명명되었다. 원래 이 기체는 70명의 승객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테스트를 위해서 40석만 설치되었다. 새로운 등록기호 G-AGVD를 부여받은 셰틀랜드 II는 1947년 9월 17일에 첫 비행을 개시했는데, 1호기의 문제점을 반영해 수정을 거친 후여서 비행은 전반적으로 아주 순조로았다고 한다. 평가를 마친 기체는 쇼트의 본사가 있는 아일랜드 벨파스트 항구로 되돌아갔지만 구입처를 찾지 못하고 1951년에 폐기 처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