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송병구의 연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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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라인과의 인연과 탈출기
홍진호와의 최초의 인연은 첫 진출한 대회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챌린지 우승으로 4번 시드를 부여받은 송병구는 우승자를 뽑겠다는 발언을 했다. 때문에 다들 긴장타고 있었는데, 정작 뽑은 건 홍진호(…).[1] 참고로 레퀴엠에서 맞붙은 경기에서는 황신의 가디언에 농락당하며 (!) 아직까지 풋사과임을 증명하고야 말았다.[2]그러던 중 모 잡지의 화보에 실린 공변뱅이 대두되자 스갤러들은 콩변뱅이 입에 착착 감긴다며 곰TV MSL 시즌2의 준우승을 기원했고,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작해야 1회 준우승이었기에 그리 대두되지 못했는데…
EVER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당시 토막이라고 불리던 이제동에게 3:1로 발리며 자신은 저막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3](…) 동시에 양대리그 준우승을 석권한다.
2008년 3월 15일, 박카스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 이영호에게 0:3 떡실신을 당해 완벽한 콩라인이 되었다.
그리고 2008 블리자드 WWI에서 우승함으로서 WCG 우승과 묶여 이벤트전에는 강하다는 콩라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2008년 10월,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8강에서 라이벌인 김택용을 사투 끝에 간신히 물리치고 승승장구하며 올라가 준결승에서 도재욱을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며 이번 시즌에도 최강의 프로토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참고로 도재욱은 이날 송병구에게 첫 세트를 따낸 이후 3연패를 하기 직전까지 프프전 1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는 김구현한테만 4패를 당하면서 8강에서 조기에 탈락해버렸다.
하지만 사실 이 결승진출에는 그런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을의 전설 vs 콩라인 숙명이었다. 가을에는 프로토스가 강하다는 스타계의 전설과 콩라인은 죽어도 콩라인이라는 거진 신앙스런 레벨의 믿음이 부딪히는 역사적인 결승전이 펼쳐졌다. 상대는 당시 듣보 신인이던 정명훈. 송병구는 여기서 이기건 패하건 전설을 쓰게 된 판이었다. 그리고 김태형조차 조지명식 때 그에게 저주를 내렸는데…[4]
드디어 송병구가 정명훈을 격파하고 스코어 3:2로 개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것도 2:0 까지 밀어붙였다가 2:2로 따라잡히고 마지막 5세트에서 승리. 농담으로 팬서비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방송으로 보던 사람들은 전부 긴장 빨고 있었다. 5경기에서 몰래멀티를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으니… 하여튼 이 우승은 정말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다.
이로서 콩라인 탈퇴라는 숙원을 이뤄낸 송병구는 가을이 프로토스에게 미소짓는 계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강적들이 많았던 대진표와 콩라인의 비극,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송병구의 인간승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다만 콩라인의 지속을 바라고 있던 팬들은 다소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송병구가 콩라인 수장인 홍진호도 해내지 못한 모든 종족 상대, 모든 스코어로(3:0, 3:1, 3:2)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 송병구는 홍진호보다 더욱 완벽한 콩라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팬들이 그의 우승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워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상대들도 김택용, 이영호, 이제동. 즉, 택리쌍. 우승한 이번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리그 내내 단 한 번도 본인이 가장 약한 종족인 저그를 만나지 않은 다소의 운도 적용하며 콩라인 탈퇴를 했다. 결국 될 사람은 되는 거다.
2008년 11월 9일 WCG 2008 결승에서 찬레기에게 완패를 당해서 은메달을 땄다. 이것은 송병구가 콩라인에서 완전히 탈퇴했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으로서, 더 이상 이벤트전 최강의 가호가 그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콩라인이 아니다.
더구나 2008년 12월 7일 IEF 2008 결승에서 김택용에게 1:2로 패하면서 콩라인 탈퇴에 대못을 박아버리는(?)행위를 해 완벽하게 콩라인 탈퇴를 이루어 냈다.
이제 모두가 콩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2010년에도 불구, IEF 2010 결승에서 다시 한번 김택용에게 패배함으로써 이벤트전 최강의 가호가 사라졌음을 만 천하에 다시 알렸다.
2. 콩라인 탈출 전까지의 프로게이머 역정
송병구의 정확한 프로게이머 인생역정은 다음과 같다. 결승을 5번이나 갔던 프로게이머 치곤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스타판은 보통 데뷔하고 1년 이내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클래스가 결정된다. 단적인 예로 임이최
신 3대 프로토스 중에서 챌린지 우승으로 가장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5] 16강을 뚫지 못했고, 팀에 변변찮은 프로토스 선배 하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수성가하였고,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우승을 차지하여 지금은 어느덧 팀의 대들보가 되었다.
- 챌린지 우승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박지호, 오영종과 함께 신 3대 프로토스로 주목받음. 당시로선 최연소 본선 무대 진출자였다.
- 박지호와 오영종만 개인 리그에서 성적을 내고 자신은 별 활약을 못한 채로 묻힘.[6]
- 2006년 한 해를 와우로 방황. 노트북까지 구입해서 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그렇게 미완의 기대주로 잊혀지나 싶었지만 2007년 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자로 성장.
- 다음 스타리그 4강에서 변형태의 3연 2팩에 무너졌지만 3,4위전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다 져가는 경기를 1경기 파이썬에서는 캐리어, 2경기 히치하이커에서는 스카웃을 활용해 대역전승을 거두며 셧아웃 승리. 그리고 동 시즌에 진행된 곰TV MSL 시즌2에서 16강에서 마레기를 만나 패배했으나 이주영의 입대 덕분에 와일드카드를 통해 결승 진출, 상대는 김택용
- 택뱅 결승에서 많은 이들이 송병구의 우세를 점쳤으나 김택용에게 3:2로 패배
- 다음 시즌의 EVER 스타리그 2007 4강에서 다시 만난 김택용에게 3:0으로 리벤지 성공, 결승 상대는 토막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제동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송병구의 우승을 점쳤음
- 1, 5경기 맵이 저그맵 페르소나였지만 1경기 승리, 2경기 카트리나는 토스맵이었고 3경기 몽환 2와 4경기 블루스톰 또한 프로토스가 충분히 할만한 맵이었기 때문에 송병구의 우승이 기정사실이 되는 분위기
- 카트리나에서 다 이긴 게임을 커세어 안뽑다가 역뮤탈에 허무하게 패하고 그 여파로 인해 3경기도 패배
- 그래도 블루스톰에서 이제동이 정직하게 반땅싸움을 해주는 바람에 아직 희망이 있던 상황이었으나 옛날토스를 시전하면서 김캐리의 절규와 함께 3:1로 무너지고 콩라인 가입
-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시즌의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 진출. 상대는 다음 스타 리그 3,4위전에서 핑북선을 앞세워 3:0으로 일축했던 이영호
- 하지만 이영호의 압도적인 기세에 밀려 3연준 달성
- 3연준의 여파로 EVER 스타리그 2008은 조기탈락
- 부진은 오래가지 않고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다시 결승에 진출, 상대는 당시 테테전만 좀 하는 듣보잡으로 취급받던 정명훈
- 2:0으로 리드하다가 2경기를 연달아 내주며 2:2 동률 상황
- 추풍령에서 벌어진 5경기에서 승리, 우승
- 그리고 그 날 Stork(송병구의 게임아이디)가 새겨진 손수건을 들고 그를 응원하던 모든 팬들과 송병구는 눈물을 흘렸다.
-
그리고 3년 뒤에 똑같은 상대에게 셧아웃 당하면서 또다시 준우승
[1]
이 때, 홍진호는 자신이
우승자가 맞다는 드립을 친다.
[2]
원래 송병구가 뽑으려 했던 우승자는
임요환이었다.
조지명식에서 원래 뽑으려했던 우승자가 떨어져서 다른 우승자를 뽑겠다라고 했는데 그 때
듀얼 토너먼트에서 떨어진 우승자는 임요환 뿐이다. 한 큐에 임과 콩을 동시에 깠다!
[3]
8강
마재윤 vs 김택용이 결승전이라고 주장하며 결승전의 수준이 낮았다고 폄하하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이후 이제동은 김택용,
윤용태,
김구현 등 저그전에 강한 토스들을 모조리 발라버리며 자신이 토막에서 탈출했음을 보였다.
[4]
김캐리의 양아들이어서
저주가 안 통한 듯.
[5]
첫 챌린지 리그 진출에 바로 챌린지 리그 우승으로 스타 리그 4번 시드를 가져갔다. 이 때 쓰러뜨린 상태가 04년 당시 WCG 2004 금메달리스트 서지훈과 WCG 2005 금메달리스트 이재훈이었다. 이 정도였으니 주목도가 엄청났다. 그리고, 챌린지 리그라는 이름으로 스타 리그 4번 시드 직행 제도를 실시했던 시즌 동안, 챌린지 리그 역대 우승자 중 양대 개인 리그 우승을 못해본 선수는 주진철 딱 한명이다. 역대 우승자는 서지훈, 박용욱, 주진철, 박태민, 변길섭, 임요환, 조용호, 오영종, 송병구. 이들 중 가장 늦게 개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6]
프로게이머에게
거품이란 별명을 붙이는 데에 있어 최초의 사례는
장육도
오영종도 아닌 송병구다. 2005 EVER 스타리그에서 재경기 끝에 조별리그 탈락에 그친 후 정신 차리자는 의미에서 스스로
MSN메신저의 대화명을 '안녕하세요 거품토스 송병구입니다'로 한 것이 그 시작이다. 송병구는 이 때 '맵에 대한 연구가 선행 됐어야 하는데, 상대 선수들(
홍진호,
서지훈)의 플레이 스타일에 집착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