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의 에이스였던 안현수는 당연히 개인전에 참가했으며, 남은 2개의 출전권 중 하나는 송경택에게 갔다. 그리고 추가 선발자격으로 2004년 10월부터 팀에 합류했던
이승훈에게 마지막 티켓이 주어지며 이 세명이 세계선수권 개인전을 뛰게 된다. 모처럼 잡은 기회였지만 주종목인 1500m에서 실격당하며 스타트를 불안하게 끊었고, 다른 두 종목에서마저 결승진출도 못해보고 탈락하며 슈퍼파이널에는 출전 할 수 없게 되었다. 계주에서는 준결승과 결승에 둘 다 참가했으며 아쉽게 당시 계주 최강팀이었던 캐나다에게 패해 은메달을 걸었다.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1000m에서 3위, 슈퍼 파이널에서 3위를 기록해 총 26점으로 마지막 순위인 7위를 기록해 턱걸이로 1차 선발 8인에 포함되었다. 선발된 8명 중
안현수[1]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모두 비한체대 출신 선수들이었고, 당시 한체대 대 비한체대 (정확히는
전명규vs.반전명규) 파벌싸움이 최고조였던 시절이었다. 전명규 라인인 대표팀 코치
김기훈이
특정 선수를 편애하고 아버지 회사의 스케이트를 신을 것을 강요한다며 입촌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김기훈이 사퇴하고 한체대파 코치인 박세우와 비한체대파 코치
송재근 이 둘이 같이 대표팀을 맡게되면서 파벌싸움은 여전히 계속됐지만 비한체대파 남자 선수들의 입촌거부는 마무리 되었다.
2차 선발전에서는 선발 확정 순위인 상위 4위 안에 들어가는건 실패했고 당시에는 2차 선발 상위 4명 이외에 연맹에서 추천한 선수 1명을 포함시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주니어 3연패를 기록하며 슈퍼 루키로 떠오르고 있던 이호석이 추천되어 올림픽 출전은 좌절되었다.
안현수와
이호석가 부상과 슬럼프로 불참하게 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송경택이
김현곤과 함께 개인전에 출전하는 일이 많았다. 주종목인 1500m에서 만큼은 준수한 활약을 보여 랭킹 2위를 기록한다. 계주에서도 이호석이 빠진 경기가 많았던 가운데 본인이 선전해주며 팀의 에이스인 안현수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었다.
1500m 결승에서 안현수가 넘어진 가운데,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1위를 다퉜고 기여코 송경택이 그를 앞지르며 선두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심판진이 오노와의 접촉을 가지고 송경택에게 실격을 주어 송경택은 1500m에서 쌓을 수 있었던 포인트를 모조리 잃었다.
500m는 취약 종목이지만 선전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안현수에 이은 4위를 기록해 메달을 거는데는 실패했지만 포인트를 쌓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000m 준결승에서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와 접촉으로 또 한번 실격당했다. 하지만 그보다 포인트가 더 적었던 선수가 4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겨우 8포인트를 가지고 슈퍼파이널 진출했다.
아폴로 안톤 오노와
샤를 아믈랭과 우승 경쟁을 벌이던 안현수를 돕기 위해 송경택이 먼저 1위를 선점하기 위해 한바퀴를 잡는 작전을 실행했다. 조던 말론이 따라가나 싶었으나 결국 포기했고 송경택은 강한 체력을 자랑하며 14바퀴 정도 남았을때 2위 그룹을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이후 5바퀴 남을 때까지 그룹 선두에서 있다가 다른 선수들이 스퍼트하기 시작할때 방해되지 않도록 비켜주며 그는 그대로 순위를 유지해 슈퍼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안현수가 오노와 아믈랭을 따돌리고 2위로 들어와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하며 송경택이 우승자 본인보다 더 좋아하며 그를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호석이 송경택의 선발을 돕기 위해 1000m 결승에서
성시백과
이승훈을 방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최종 선발전 결과는 송경택이 1위, 이호석이 2위를 기록하며 개인전 출전권을 확보했으나 언급된 1000m 사건 때문에 이호석과 함께 당시 비난을 피할 수 없었고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안현수,
이호석과 함께 3인자의 포지션에서 중장거리 종목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었고, 월드컵에서는 본인의 최고 기록인 종합랭킹 5위를 달성했다. 참고로 이때 TOP 5를 모두 한국선수들이 차지했을 정도로 남자 대표팀이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던 시기였다. 계주에서도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멤버였고 3차 하얼빈 월드컵에서 엄청난 역전극을 보여줄 때 맹활약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안현수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모두가 이호석과 오노의 우승경쟁을 예상하는 가운데 송경택이 1500m 결승에서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저 둘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면서 우승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주종목이 아니었던 500m에서도 결승진출에 성공하여 3위를 기록해 동메달을 땄고 계속해서 중간 선두를 유지했다. 1000m에서도 결승에 진출해 동메달을 걸면서 계속해서 포인트 선두를 유지하며 가장 유리한 상황에 있었지만 저 둘도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하나씩 획득한 상황이라 포인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송경택은 65 포인트를 기록중이어서 대회선두였고 오노나 이호석은 60포인트였기 때문에 4위 이상을 기록하는 것을 저지하거나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저들보다 높은 순위만 기록한다면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송경택도 좋은 체력을 갖춰 3000m를 잘타는 선수였기 때문에 아무리 이호석이나 오노가 그보다 실력이 뛰어나도 일단은 송경택이 우승을 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슈퍼파이널이 시작되고
이승훈이 송경택과 이호석이 조금 더 수월하게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한바퀴를 잡는 작전을 실행했고 미국 선수 한명이 이승훈을 따라가면서 송경택은 이호석과 오노를 상대로 3위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앞서 설명한대로 송경택은 저들의 4위 이상 순위를 저지하거나 그보다 높은 순위만 기록하면 됐지만 스퍼트를 슬슬 시작해야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송경택의 스케이트가 이승훈의 스케이트 날에 걸려 어이없게 넘어지고 말았고, 이호석은 오노보다 스퍼트 타이밍이 늦으며 결국 오노에게 3위를 내주게 되어 종합우승을 코앞에서 놓쳤다.
곽윤기,
성시백,
이정수에게 밀려나며 아쉽게도 2008-09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2009년 2월에는 동계체전에서 2관왕을 달성하는 등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해 폼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아쉽게 탈락하며 본인의 첫 올림픽 출전의 희망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어 또 한번 좌절되었다. 부각되진 않았지만 선발전에서 이정수와 곽윤기[2]의 짬짜미의 피해자 중 한명이었지만 본인도 2007-08 시즌 선발전에서
이호석과 함께 비슷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할 입장이 못 된다는 여론이 있었다.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후 지나지 않아 은퇴했으며 쇼트트랙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임시 코치로 남자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쇼트트랙 팬들은 처음에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4차 월드컵 1500m(2차) 결승에서 김준천에게 지시한 정신나간
무모한 작전이 후반 체력 소진으로 실패하면서 대차게 까였다. 게다가 유일하게 김준천의 한바퀴를 잡는 움직임을 쫓아간
런쯔웨이는 후반을 버텨내면서 오히려 런쯔웨이가 성공한 꼴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팬들의 관심은 당시 남자 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던
곽윤기와
박지원에 쏠려있었는데, 한바퀴를 잡는 작전때문에 카메라가 저 둘의 스케이팅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어서 더 반응이 나빴던 것도 있다.
성시백,
노진규처럼 키가 178cm로 쇼트트랙 선수로 치면 꽤 큰 편에 속한다. 실력이 좋은 편이었음에도 폼이 굉장히 엉성하기로도 알려져 있는데 기술보다는 힘과 체력을 짜내며 경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힘으로 치고 나가는 스피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며, 덩치가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에도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인코스나 아웃코스 패싱 기술도 당시대에 선수들과 비교해 본다면 좋은 쪽에 속했다. 1500m가 주종목인 선수답게 지구력이 좋은 편이며 순간 판단력도 괜찮아
안현수,
이호석과 함께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여줬다. 실질적으론 1500m에서는 안현수, 이호석에 이어 세계 TOP 3에 속하는 선수임[3]과 동시에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보다도 실력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
한때 이호석과 함께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봉쇄해서 안현수를 막았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송경택은 안현수와 좋은 친분을 가지고 있던 선수고, 송경택이 국가대표활약을 할 당시엔 국가대표팀 파벌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 이호석과 함께 힘을 합쳐 노골적으로 안현수를 막으려고 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대부분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2007-08 1차 월드컵 1500m 결승 경기를 뽑는데, 우선 송경택은 이호석이나 안현수의 스피드를 낼 정도의 선수는 아니다. 이호석을 따라잡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던 게 뒤에 있는 안현수를 봉쇄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4] 만약 고의성이 있었다면 안현수가 이미 알았을 테고 송경택, 이호석과 서로 격려를 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루머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2007-08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1000m 결승 경기에서
이호석이 송경택이 선발될 수 있도록 대놓고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를 본 선수들은 바로
성시백과
이승훈이었다.[5] 이호석은 본 경기에서 실격을 당했지만 이미 포인트를 많이 따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끝엔 2위로 선발됨은 물론 당연히 개인전 출전권도 따냈다.[6]
[1]
세계선수권 우승자 자격으로 1차 선발전을 건너뛰고 우선선발.
[2]
그리고
김성일(쇼트트랙).
[3]
하지만 기량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당시 전성기를 향하던
성시백에게 밀리는게 보였다. 세계랭킹에서도 성시백은 3위를 기록해 송경택보다도 순위가 높았다.
[4]
당연히 2위가 3위보단 나으니깐 2위를 유지하려는 의도는 있었을 테지만, 이호석이랑 짜고 막았다는 설은 신빙성이 없다는 얘기다.
[5]
다행히도 성시백과 이승훈 둘 다 국가대표에 승선했음은 물론 국가대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넷 모두 친해졌다.
[6]
당시 안현수 다음으로 세계에서나 국내에서나 최고는 이호석이었고 1500m에서 강했음은 물론이고 국내에선 500미터에서도 강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포인트를 따는데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나 마지막 경기인 3,000m 슈퍼파이널은 포인트 부담이 적은 선수들에게 유리하다.
[7]
세계선수권 결과 기재 : 수상기록이 없는 시즌 결과는 제외, 8위까지의 개인 종목 순위 결과와 포인트의 기록. 2023년 세계선수권 부터는 종합제와 3000 m 슈퍼파이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달과 순위결과만 기재.
[8]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
[9]
랭킹 표기 : 전체 랭킹기록 9개의 80%인 7개까지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