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보통 1500m 경기에서 초반에 다른 선수들과의 차이를 반 바퀴 이상 벌리는 경우는 드물다. 위 영상 후반부의 실패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지막까지 체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초반에 저런 식으로 힘을 빼면 보통 후반에 자신을 추월하려는 선수들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 영상에서 김동성이 대단한 건 페이스를 거의 잃지 않아 마지막까지 2위와의 차이를 많이 벌린 상태로 골인했다는 점에 있다.김동성이 이런 방법을 쓴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1500m 결승에서 1위로 들어왔으나, 아폴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결국 실격되어 메달을 놓쳐버렸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2002 세계선수권에서 오노에게 (경기력으로) 복수할 마음에 칼을 갈고 있었으나 오노가 끝내 대회에 불참하자 화가 났기 때문에 한 짓이었다.
1500m는 장거리 종목이기 때문에 출발 직후엔 다들 체력 안배 겸 탐색전을 위해 산책 가듯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바퀴를 막 돌았을 때쯤 맨 뒤에서 따라가던 김동성이 갑자기 급가속을 넣더니, 혼자서 전력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김동성은 1바퀴 차이를 벌리는 데 성공하고, 다른 선수들은 '저렇게 하면 후반에 알아서 나가떨어지겠거니'라 생각해 김동성을 무시하고 자기 페이스대로 달렸다. 그러나 김동성은 끝까지 전력질주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초인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후반에는 1.5바퀴 차이까지 벌리면서 압도적인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버렸다. 김동성이 너무 앞서나간 바람에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을 김동성이 한 바퀴 남았을 때 한 번, 2위 이하가 지나갈 때 한 번 더 쳤다. 심지어 김동성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고 계속 2위 경합 장면만 중계되었고, 선수들도 관객들도 김동성의 존재는 까먹은 채 2위 경합이 마치 우승 경쟁인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2등 경합을 하던 세 선수 중 세 번째로 들어온 선수는 3등인 줄 알고 환호하려다 김동성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선 손을 내리고 실망하는 모습도 보인다.
재밌는 점은 김동성은 당시 분노의 질주를 전략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오노의 불참으로 인해 홧김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말 그대로 분노의 질주였다. 분노의 감정이 모든 체력과 페이스를 압도해버린 셈. 그래서 1등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으며[1], 체력적으로 부담이 매우 심한 방법을 썼음에도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골인 후 잡힌 화면에서는 그렇게 해도 화가 안 풀렸는지 그저 분노를 삭이는 모습만 보인다. 실제로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이때 아예 2바퀴 차이로 벌려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을 실격시키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김동성은 대회 최초 6관왕, 남성부 전 종목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성과를 올렸다.
우연히도 대한민국의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불린 선수들은 한 번씩 이런 식의 역주를 펼친 적이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에이스가 되고 싶으면 분노의 질주를 해봐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초반은 눈치 작전으로 2, 3위에서 머무르다가 1위로 달리는 팀의 선수가 체력이나 판단력이 흐려질 후반 무렵에 폭발적인 스퍼트로 1위 선수를 추월하여 역전으로 1위를 따내는 데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 쇼트트랙 팀의 전통적인 전략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탄력에 비해서 그것을 끌어나가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보기엔 멋있고 통쾌한 장면이라기보단 마지막에 모든 걸 짊어지고 달릴 에이스 선수들의 역주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장면이기도 하다. 쇼트트랙 경기상 후반부에 리드를 잡지 못하면 에이스의 하드 캐리로 모든 걸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과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중국 대표팀의 경기에선 이러한 장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중국 대표팀의 전략은 우리 대표팀과는 반대로 압도적인 피지컬로 처음부터 끝까지 1위를 유지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역전의 실마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역전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하는 우리나라 선수들과 중국 선수는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흔히 보는 중국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가 나오는 이유다. 이것을 뒤집는 에이스들이 있었기에 한국 대표팀은 지금까지 중국과의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중국 선수들이 이러한 전략을 실격으로 되돌려주는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이게 뒤집힐 가능성이 향후 농후하다. 당장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실격이 여러 번 나온 이유가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룰도 역전하려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추월하려고 자신 바로 옆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사람을 밀쳐내는 건 합법이다. 다시 말해 A가 B를 추월할 때, A가 B를 밀면서 들어오면 해당 상황에 한해 B는 A를 손으로 트랙 밖으로 밀어내거나 쓰러트려도 반칙이 아니다. 단, 미는 부위는 상체 한정이며, 다리를 밀면 반칙이고, 범위 밖 선수를 미리 밀려 하거나 하면 안 된다.
일반 종목과는 다르게 3000m에서는 한바퀴를 잡는 전략을 자주 볼 수 있다. 구간마다 먼저 골인을 하면 포인트 획득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순위권 경쟁을 하는 팀동료를 위해서 먼저 한바퀴를 잡는 경우는 많이 나왔다. 2007 세계선수권에서 송경택이 우승 경쟁을 하던 안현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2] 한바퀴를 먼저 잡는 전략을 성공시켰고,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이승훈이 실행한 적이 있다. 2017 세계선수권에서는 최민정이 구간 포인트를 따내기 위해 실행했었다. 하지만 2021-22 시즌 이후로 3000m 종목이 폐지가 되었기 때문에 한 바퀴를 잡는 작전을 이용한 포인트 싸움은 더 이상 볼 수 없게되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매스 스타트에서도 이런 작전이 나온다. 물론 첫 바퀴는 가속을 하면 실격이지만, 두번째 총성이 울리는 순간 치고 나와서 결국 끝까지 선두를 유지하는 레이스가 가끔씩 나온다. 다만 이는 매스스타트에서만 볼 수 있으며, 실제로 5000m와 10000m에서 시전하다간 큰일 난다. 여자 3000m 계주는 분노의 질주만큼은 아니더라도 빨리 가는 선수들이 종종 보인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편파 판정 논란 직후 김동성이 한 인터뷰에서 편파 판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에서 경기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할때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그가 선보인 '분노의 질주' 장면이 나왔는데 이게 와전되어 '실격을 피하기 위해 분노의 질주를 해야한다'라는 밈이 올림픽 기간동안 잠시 퍼지기도 했다.
3. 사례
3.1. 초반부터 간격을 벌린 사례
- 2020 사대륙선수권 여자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최민정이 김동성의 분노의 질주를 재현했다.
- 2020 로잔 동계청소년올림픽 여자 500m에서 서휘민이 준준결승과 결승에서 보인 분노의 질주도 있다.
-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준준결승에서 최민정이 경기 시스템 오류로 인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분노의 질주를 시전해 압도적으로 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여자 1500m 결승에서 중국의 양징루가 분노의 질주를 시전했는데, 나머지 선수가 크게 당황했는지 곧바로 따라잡지 못해 간격을 좁히는 데 실패하여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했던 상황이 왔다. 이로 인해 정재희는 바퀴 수를 착각하여 아직 한 바퀴가 남았는데도 마지막 코스인줄 알고 날 들이밀기를 잘못 시전했고, 크게 넘어져 7위로 마감하였다.
3.1.1. 실패 사례
- 2015-16 4차 월드컵 남자 1500m(2차) 결승에서 임시 코치였던 송경택이 김준천에게 한바퀴를 잡는 작전을 지시했으나 후반에 체력이 빠져 결국 다시 뒤쳐지고 오히려 선수들중 유일하게 김준천을 따라가던 런쯔웨이가 이를 성공한다.
* 2013-14 시즌 2차 월드컵 남자 1500m 준결승에서 중국의 왕싱췬이 분노의 질주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역전당하는 경기가 잘 알려졌다. 무려 반 바퀴를 초반에 앞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아웃코스로 크게 질주해서 결국 마지막에 꼴찌로 들어왔고, 오히려 선수들 중 뒤따라오던 한국의 신다운이 막바지에 1~2바퀴를 남겨두고 성공했다. 마지막에 해설자가 하는 팩트폭력이 압권이다. "자 이렇게 되면 왕싱췬 선수는 무슨 작전을 편 건가요?"
-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파이널 A에서 한위퉁이 11바퀴를 남겨두고 시전했으나, 곧 쉬자너 스휠팅에게 따라잡혀 힘만 낭비했고 결국 최하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스휠팅이 초반에 체력을 빼도록 유도하게되어 금메달 경쟁자였던 최민정과 아리안나 폰타나에게는 오히려 득이되었다.
- 2023-24 4차 월드컵 여자 15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하너 데스멋이 12바퀴를 남겨두고 분노의 질주를 시도했으나 금방 체력 낭비로 인해 순위가 많이 밀려났으며 나중에 마지막 바퀴에서 김길리,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3.2. 역전극을 펼친 사례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가 남자 5000m 계주에서 캐나다의 마지막 주자 마티외 튀르코트를 상대로 선보였다.
- 2007-08 시즌 3차 월드컵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이호석이 넘어져 한바퀴 이상 뒤쳐진 상황이었으나 이를 남자 계주팀이 마지막에 따라잡아 안현수가 역전하는 레이스. 쇼트트랙 최고의 레전드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심석희가 한 바퀴 반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뒤쳐지던 상황을 아웃코스 질주로 역전시키고 금메달을 따내자 네티즌들은 '역시 한국의 에이스는 분노의 질주가 제 맛'이라면서 환호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유빈이 넘어졌지만 선수들이 분노의 질주를 시전한 결과 1위로 진출했으며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웠다.
- 2021-22 시즌 2차 월드컵 남자 1500m 결승에서 유리 콘포르톨라가 이 작전을 사용하여 17년 만에 월드컵 금메달을 획득했다.
-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파이널 B에서
기쿠치 스미레가 시전하여 1바퀴를 앞질렀다. 1등이 선두가 아닌 맨 뒤에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1]
2위와 3위로 들어온 선수들은 경합에서 승리해서 메달을 땄다는 생각에 서로 웃으면서 악수했는데, 김동성은 진작에 금메달을 확정했음에도 혼자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 다만 국내 해설의 언급으로는 현장에 관람 온 한국인들에게 감사 표시로 손을 흔들어주긴 했다.
[2]
포디움 순위권 밖의 선수(송경택)가 1위를 차지해놓으면 중간 선두인 선수(안현수)에게 유리하기 때문.
[3]
500m는 보통 단거리 경기를 뜻하지만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거의 성인 기준 1500m를 보는 느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