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소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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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3년 12월 10일 |
전라북도 익산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소설가 |
학력 | 대학교 중퇴 |
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1983년 12월 10일 전라북도 익산시 출생. 대학교를 중퇴했다.
할아버지는 소병호 화백, 아버지와 누나는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으로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다.
2008년에 소설 《나는 텐프로였다》로 등단.[1] 사회 비판적인 소설을 주로 집필한다.
'나는 텐프로였다',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터널', ' 균'등 4개 작품이 영화화 되었고, '이별이 떠났다'는 드라마화되면서 스스로가 극본을 씀으로서 드라마 작가로도 데뷔하게 되었다.
2. 작품 목록
2.1. 소설
- 나는 텐프로였다(2008)[2]
- 아비(2008)
- 밤의 대한민국(2009)
- 살아가려면 이들처럼(2010)
- 형제(2010)
- 소원-희망의 날개를 찾아서(2010)[3]
- 아버지 당신을(2011)
- 터널-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2013)[4]
- 그날(2014)
- 균-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2016)[5]
- 기억을 잇다(2017)
- 이별이 떠났다(2018)
- 행복하게해줄게(2019)
- 세 남자 이야기(2020)
- 이야기_그날 소장판(2021)
- 벼랑 끝이지만 아직 떨어지진 않았어(2024)
2.2. 드라마
- 이별이 떠났다(2018)
3. 사회활동
3.1. 일본군 '위안부' 명칭 변경 서명 활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온을 위해,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꽃송이'로 바꿀 것을 제안했었다. 작가가 쓴 글을 일부 발췌하자면,"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입으로 그분들을 성 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공식 명칭을 아예 바꾸자는 게 아니다"
"언어가 통하고 뜻을 소통할 수 있는 우리끼리라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지칭하자는 취지"
"언어가 통하고 뜻을 소통할 수 있는 우리끼리라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지칭하자는 취지"
"할머니들이 어린 시절 미처 꿈도 채 펴보기 전에 피해를 봤기 때문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라는 의미로 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꽃송이가 북한에선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꽃송이가 북한에선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위안부를 매춘에 비유하는 등의 망언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 차별금지법 관련 입장
과거 동성애를 비난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 바가 있다. # 이로 인해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로 얻은 긍정적 평가를 상당히 까먹었는데, 향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사과하였다.3.3.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활동
소설 [소원-희망의 날개를 찾아서]를 영화 [소원]으로 만들면서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이끌었으며 아동성범죄 공소시효를 폐지시킨 이력이 눈에 띄기도 한다. 다만 13세 미만의 성범죄자들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 시켰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성범죄 공소 시효 중 하나를 폐지시킨 건 큰 성과다.3.4.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위원 활동
2016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윤리심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갑질과 부도덕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에 적극적인 위원 중 한명이었다. 한창 총선이 있던 시기였기에 공천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한 국회의원을 소재원이 적극적으로 징계 절차를 진행하며 자신의 sns에 "제명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한다”며 “재심 따위로 권력을 되찾으려 하지 말라” 등의 내용을 게시하기도 했다. 해당 국회의원이 소재원을 검찰에 고소를 하기도 했지만 혐의없음 판결을 받았고 해당 지역구는 다른 후보자가 공천되어 당선되었다.3.5. 가습기살균제 사회적참사 활동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해 소설 [균]을 집필하고 소설 [균]을 영화 [공기살인]으로 제작하였으며 사회적참사법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캠페인을 진행한 이력도 있다.4. 기타
- 2000년대 초반에 노숙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 유일한 낙이 서점에서 책을 고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직원에게 쫓겨났다고. 하지만 다른 직원이 그 책을 선물해주면서 "제 작품을 선물로 드리겠다"고 감사인사를 대신했었는데, 2024년 11월에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시의 서점 직원을 찾는다는 글을 남겼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