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1:22:28

성변측후단자

1. 개요2. 내용
2.1. 핼리 혜성 관측2.2. 1437년 신성 폭발 측정
3. 세계기록유산 추진4. 외부 링크

1. 개요

星變測候單子

조선 왕조 500년 동안 하늘에서 이루어진 천문 현상들을 관측하여 기록한 보고서.

2. 내용

파일:성변측후단자1.jpg 파일:성변측후단자3.jpg
1664년 12월 13일에 기록된 혜성 1664년 12월 14일(음력 10월 27일)에 기록된 혜성

조선시대에는 별의 위치 또는 밝기에 이변이 생기는 것을 성변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변화를 관측해 기록한 것이 바로 성변측후단자다. 일정한 양의 성변측후단자가 모이면 성변등록(星變謄錄) 또는 객성등록(客星謄錄)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보관하였다.

기록은 관상감에서 하였으며 천문현상 12종, 기상현상 20종, 지진 1종의 총 33종에 이르는 변화를 수록하였다. 이 가운데 혜성, 햇무리(백홍관일), 달무리(백홍관월), 떠돌이별( 객성), 운석(영두성)의 8종은 왕이 침소에 있더라도 쪽지로 알려야 할 정도의 긴급한 사항이었다. 각 시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매일 관측할 때마다 50~100여명의 천문학 전문가가 투입된 대규모 관측이었다.

이러한 성변단자는 관상감이 처음 만들어진 조선 세조 때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현종, 경종, 영조 등 3대 왕 때의 모음집 6개뿐이라고 한다. 한겨레: 17세기 현종때 발간 ‘성변등록’ 세계 최장 82일 혜성 관찰 기록 기상청 기상역사팀의 전영신 박사에 의하면 중국에서 혜성 관찰 기록은 기원전 15세기부터 약 338개를 기록하였고 서양에서는 11세기부터 여러 혜성들을 관찰한 기록이 있지만,한 번 관측할 때마다 몇 달간의 장기간에 걸쳐 관측하고 총 1,150건에 이르는 혜성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고 한다.

원래는 조선 세조 때부터 구한말까지 관상감 서고에 수백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방대한 양의 천문학 고문서들이 모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일본의 기상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측후단자가 지닌 그 가치를 깨닫고 몇 편의 연구논문에 그들이 사용했던 측후단자의 내용을 활자화하여 남겨 놓은 것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라졌거나 일본에서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 역사학자들이 왕실 관련 도서관이나 개인 장서가들이 소장한 자료 가운데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하는 중이다.

2.1. 핼리 혜성 관측

파일:성변측후단자2.jpg
1759년( 영조 35) 3월 11일에 기록된 핼리 혜성
1759년 관상감 35명의 관료가 25일간 핼리 혜성을 관측해 이동 경로, 위치, 밝기, 색깔, 형태, 꼬리 길이 등을 관측자의 이름과 함께 자세히 기록했다. “북극에서의 각거리는 116도였다.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의 길이는 1척 5촌이 넘었다”는 등 자세히 기록하며 혜성 꼬리의 모양, 별자리와의 거리와 위치를 그림으로 묘사했다. 이는 동양의 핼리혜성 관측 기록으로서 최상으로 평가된다.[A]

2.2. 1437년 신성 폭발 측정

2017년 8월에 미국을 포함해 6개 나라 천문학자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580년 전 조선의 천문학자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신성(평소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지는 별)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성변측후단자와 성변등록, 세종실록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국경제 : 1437년 조선 천문학자들 '신성'을 포착하다
SBS : '별 폭발'의 비밀…600년 전 세종실록 덕에 밝혀냈다
조선일보 : 600년 전 조선이 관측한 '客星'은 전갈자리 新星 현상이었다

3. 세계기록유산 추진

2023년 3월 23일 한국천문연구원이 성변측후단자 속 3건의 혜성 관측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겠다고 연세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를 통해 공식 발표했다. 성변측후단자를 보관하고 있는 연세대와 함께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천문학회, 한국우주과학회가 ‘성변측후단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목표로 하는 등재 신청 시점은 2025년이다.[A]

4. 외부 링크



[A]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