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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0 20:36:11

석광렬

파일:attachment/Seokgwangryeol.jpg
이름 석광렬(石光烈)
출생 1968년 9월 2일[1]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현 양주시 시내)
사망 1994년 8월 1일 (향년 25세)
서울아산병원
가족 아버지 석가화(1935년~2022년)[2][3], 어머니 송신자(1939~2010)
신체 178cm, 70kg
직업 배우
종교 불교
데뷔 1993년 KBS2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
'강문영의 어둠 속의 미소'

1. 개요2. 생애3. 출연작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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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배우. 이종원, 이정재, 이리노, 조문정[4] 등처럼 모델 출신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1968년 9월 2일,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에서 아버지 석가화와 어머니 송신자 슬하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당초 아들의 이름으로 광직, 원석, 원렬 등을 생각해내다가 작명소에 물어본 결과 '광렬'이 출세할 것 같은 이름이라 해서 지었다.

어릴 적부터 화가를 꿈꾸다가 점차 크면서 디자이너 쪽을 꿈꾸기도 했고, 고교 시절 서문여자고등학교 앞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다가 군 복무 당시 타고난 운동실력을 밑바탕삼아 스케이트 선수로 뛴 바 있었다. 1988년경에는 KBS 무용단 '짝궁들' 1기 출신인 친구 누나의 권유로 모 광고기획사에 들어가 청바지 카탈로그 모델로 모델계에 입문하여 100여편의 광고에 출연했는데 주로 콜라, 커피, 헤어무스 등 신세대를 겨냥한 상품광고가 많았다.

특히 그는 1992년에 세계물산(현 SG세계물산)의 아웃도어 브랜드 '옴파로스' 의 CF[5]에 나와 대중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후술할 1994년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피아노 실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촬영 보름 전부터 피나는 연습으로 익혀가며 대역을 쓰지 않은 채 직접 쳤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 <소녀 18세>를 시초로 연예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뒤, KBS2 <토요대행진> 코너 '진실과 대답'에서도 활약하다가 1993년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 '강문영의 어둠 속의 미소'에서 운전기사 민정훈 역으로 본격 데뷔했다. 1994년 주말연속극 <남자는 외로워'에서 심지 깊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오렌지족 '권영훈' 역을 연기하여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6] 연이어 출연한 <한쪽 눈을 감아요>에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면서 냉철한 신세대의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주목받는 신인 연기자로서 연기력과 훈훈한 외모로 드라마팬들과 소녀팬들의 인기를 한창 얻어가던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배우였다. TV는 사랑을 싣고의 첫번째 출연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4년 7월 25일 밤 12시 50분경, 일일연속극 < 한쪽 눈을 감아요>의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자가용 자동차[7][8]를 운전하다가 새벽 1시 20분경 올림픽대로 남단 부근에서 교각을 들이받고 차가 전복됐고, 사고를 목격한 승합차 운전자 및 택시기사 등에 의해 깨진 후면 유리창에서 구조된 뒤 서울중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입원했다. 당시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어 쇼크 상태인 줄 알았으나 검사 결과 뇌부종 진단을 받았고, 점차 상태가 악화되자 동월 31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부친은 그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결국 8월 1일 오전 8시 30분에 환자 7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9]

사후 여의도 KBS 별관 내의 <남자는 외로워> 세트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유해는 화장되어 어느 산에 뿌려졌다 하며 강일동 금화사에서 49재를 치렀다. 1년 전에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변영훈과 더불어 창창한 앞날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10]

1994년 8월 22일자 KBS1 <사람과 사람들> '석광렬이 남긴 것은...' 편에서 그에 대한 일화가 방영됐는데, 바로 아버지 석가화 씨가 다 폐차가 되어버린 그의 차량을 둘러보고 슬퍼하는 것도 나오고 외아들을 잃은 부모의 애절한 모습이 방영하던 바 있다.

사후 2재를 치를 당시 석광렬의 부모는 아들의 친구이던 배우 이리노 및 조민희와 양자녀 결연식을 맺기도 했다. 친척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생전에 배우 김일후, 이병헌, 이리노, 이창훈, 오대규 등과 친분이 있었으며, 박용우가 그를 닮았다.

3. 출연작

4. 참고 자료



[1] 연예계 활동 당시에는 1970년 9월 21일생으로 했다. [2] 1994년 9월 2일에 서울시민상을 받고 12월 31일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자로 선정된 것 외엔 소식이 전해지지 않다가 2022년에 그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서 무연고자(!)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향년 87세. # 아들인 석광렬이 유일한 자식인데다 먼저 사망했기에 홀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 채 사망했다. 무연고자인 걸 보면 모친도 이미 돌아가신 듯하다. [3] 당시 그의 매니저였던 사람이자 1990년대 말까지 석가화씨를 모셨던 이강석(1994년 당시 36세) 씨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 송신자 씨는 이미 2010년 6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 1970~1994,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요절했다. 생전에 남긴 작품이 공룡선생 단 1편 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공룡선생에 출연중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5] 실제 방영은 1993년. 이 CF는 '바람이고 싶어~ 강물이고 싶어~ 그대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싶어~'라는 노랫말로 유명하다. 이 브랜드는 90년대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2000년대 이후 인기가 저조해지며 사라졌다. [6] 이때의 이정재와 이병헌은 석광렬에 비해 인지도도 낮았을뿐더러 연기력도 당시에는 상당히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7]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현대 스텔라 중고차를 몰고 다니다 사고 5개월 전 마련한 새차였고, 융자금 1000만원과 할부금 800만원이 남아 있었다. [8] 근데 당시 기사마다 현대 스쿠프 아니면 기아 스포티지라고 각각 다르게 기재됐으며, 후술할 KBS1 <사람과 사람들>에서 부친이 폐차장을 찾을 당시의 장면에서 스포티지로 나왔다. [9] 심장, 신장 2개, 간, 췌장, 안구 2개 [10] 이 때문에 당시 세간에서는 호사가들이 만들어 낸 억지 괴담이 돌았다. 무슨 억울하게 죽어 원귀가 된 배우가 연예계에서 세 명 더 잡아가느네 어쩌네... PC통신 보급 초창기이자 유언비어가 잘 돌던 시절의 단면이다. 실제로 이로부터 몇 년 전에는 노주현 사망설, 고두심 사망설, 서태지 임신설(서태지가 여자라는) 등의, 지금 생각하면 이걸 대체 어떻게 믿나 싶을 정도의 괴소문이 서울을 중심으로 퍼지곤 했다. [11] 그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후 극중에선 여행을 떠난 것으로 처리됨. [12] 사고 후 극중에선 미국 유학으로 처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