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윤화(徐允華) |
생몰 | ? ~ 1919년 4월 1일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평안북도 벽동군 벽동읍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19년 3월 30일, 평안북도 벽동군 읍내에서 천동교 벽동교구가 주도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일본군이 출동해 200명의 시위대를 해산시켰지만, 다음날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300명이 재차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일본군은 다시 출동해 시위대를 해산시켰지만, 4월 1일 밤 11시경 천도교인들이 쏘아올린 폭죽을 신호로 1,000여 명이 사방에서 일시에 읍내로 몰려들었다. 이때 서윤화도 시위에 참여해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본 헌병대와 수비대가 출동하여 일제 사격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서윤화를 비롯한 13명이 피살되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서윤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