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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양국일(梁國一), 서국일(徐國一), 대림(大林) |
출생 | 1886년 |
함경도
덕원도호부 (현 강원도 원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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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6년 5월 6일 (향년 40세) |
중화민국 허베이성 차하얼특별구 장자커우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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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비행사,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서왈보는 1887년 함경도 덕원도호부(현 강원도 원산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일병합 후 베이징으로 망명해 중국군에서 복무하다가 1919년에 중국 육군항공학교(中國陸軍航空學校)에 입학하여 조종사로서의 훈련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3.1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베이징에서 베이징과 톈진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신채호를 단장에 추대하면서 자신은 군무장(軍務長)이 되었다.항공학교를 졸업한 후, 서왈보는 조종사 자격으로 의열단에 가입했다. 그러나 의열단 내부에서 이념 대립이 심화되자, 그는 최용덕, 송호(宋虎), 이한룡(李漢龍), 김사집(金思潗) 등과 함께 신의단(申義團)을 조직해 의열단에 대항하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1924년부터 펑위샹 군대의 항공대 대대장으로 임명되어 쑤저(蘇浙) 전투에 참가해 20여 차례 출격하여 공을 세웠으며, 1924년 말에는 베이징 항공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1925년 6월, 서왈보는 베이징에서 조남승(趙南升), 한흥 등과 함께 선두자사(先頭者社)를 결성하고 중국 국민을 후원하여 한, 중 양국민의 항일운동을 촉진하자는 전단을 배포했다. 그러나 1926년 5월 6일 허베이성 장자커우 상공에서 새로 수입된 이탈리아제 안살도 SVA.9 비행기를 시승해보다가 기체 이상으로 추락해 절명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왈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20년 서거 94년 만에 서왈보의 삶을 재조명한 학위논문이 최초로 발표되었다. 비행사 徐曰甫의 민족운동(수원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