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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7:46:14

BUCK-TICK

사쿠라이 아츠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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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G_2028.jpg
왼쪽부터 이마이 히사시, 야가미 토오루, 사쿠라이 아츠시, 히구치 유타카, 호시노 히데히코
국적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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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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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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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멤버 사쿠라이 아츠시(보컬[a])
이마이 히사시(기타,보컬[b])
호시노 히데히코(기타,보컬[b])
히구치 유타카(베이스)
야가미 토오루(드럼)
결성 1984년 일본 군마현
데뷔 1987년 앨범 <HURRY UP MODE>
장르 고딕 록, 얼터너티브 록, 인더스트리얼, 팝 록, 포스트 펑크
레이블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 Lingua Sounda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멤버
3.1. †사쿠라이 아츠시3.2. 이마이 히사시3.3. 호시노 히데히코3.4. 히구치 유타카3.5. 야가미 토오루
4. 역사
4.1. 1984~19914.2. 1992~19964.3. 1997~20044.4. 2005~20114.5. 2012~20184.6. 2019~
5. 디스코그래피
5.1. 싱글5.2. 정규 앨범5.3. 미니 앨범5.4. 베스트 앨범5.5. 리믹스 앨범5.6. 커버 앨범
6. 관련 문서

1. 개요

1984년 군마현에서 결성하여 밴드명 비난GO-GO (非難GO-GO) 를 BUCK-TICK으로 개명한 뒤 인디즈 데뷔, 1987년에 메이저 데뷔한 5인조 록밴드.

밴드명 BUCK-TICK은 기타리스트인 이마이 히사시가 지은 것으로 누구나 기억하기 쉽고 임팩트 있는 이름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래는 일본어 폭죽(爆竹)의 로마자 표기인 'bakuchiku' 를 변형한 것인데, BUCK-TICK 또한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 읽으면 바쿠치쿠, 즉 폭죽이 된다.

2. 상세

X JAPAN과 함께 일본 비주얼 록의 형태를 정립시킨 밴드이며, 2023년 현재 무려 데뷔 36년차로 아직도 활발하게 음악활동 중인 장수 밴드. 초기에는 같은 군마현 출신 밴드인 BOØWY의 카피밴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은 BOØWY의 제자, 적어도 후배 밴드에 가깝다. 벅틱의 멤버들 중 일부가 BOØWY 멤버들에게 악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뭐… 그리고 벅틱 멤버 전원이 BOØWY의 보컬 히무로 쿄스케의 고등학교 후배들이다.

관록이 붙은 지금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은 초보와 같은 마음으로 엄청난 노력을 하는 노력파 집단이다. 드러머인 야가미 토오루는 시골한량같이 지내다가 다른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던 형의 죽음으로 드럼을 잡기 시작했다고 하며,[4] 초창기 다운피킹으로만 연주가 가능했던 동생 유타카와 밤을 새워 맹연습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사쿠라이 아츠시도 초반에는 보컬이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5]

데뷔 후 한 번도 멤버 교체가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6][7]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을 보자면, 기타솔로 따위의 눈에 띄는 화려한 테크닉이나 돌출되는 플레이는 전혀 나오지 않고, 오로지 팀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0년에 발매 된 앨범 "악의 꽃(悪の花)" 이후 음악성으로 팬들과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았으며[8] 충성도가 높은 팬 수도 적지 않은 편이다. (BUCK-TICK의 콘서트에 가 보면 관객의 연령대가 50대부터 10대까지 아주 다양하다고…) 현재도 매년 같은 날짜(12월 29일)에 무도관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는 팬 동원력을 가진 밴드다. 2014년 12월 29일에도 연말행사처럼 무도관 콘서트를 열었으며 2014년 12월 29일 무도관 콘서트 요약 영상,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2015년 12월 29일에도 무도관은 벅틱의 것이 될 것이었고 그렇게 되었다. 도쿄 올림픽 준비로 인해 2019년에 국립 요요기 경기장으로 자리를 피했다가 2020년 12월 29일에 일본무도관으로 다시 복귀해 콘서트를 열었다.

초기에는 비주얼계 밴드의 느낌도 있었고 후배 비주얼 록 밴드들의 스승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하지만, 정작 밴드 자체는 95~96년을 기점으로 비주얼 노선을 탈피하여, 기나긴 활동기간 중에서 스트레이트 록앤롤부터 펑크, 인더스트리얼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올라운더 만능밴드(…). 위키백과가 정의하는 BUCK-TICK의 장르는 Various이다! 밴드가 원숙기로 들어선 후 앨범의 장르나 분위기가 하나하나 다 다를 정도. 밴드 자체는 비주얼 밴드로 인식되는 것을 좀 꺼린다고 하며, 사실 락 그룹으로도 인식되고 싶지 않고 뮤직 그룹이 되고 싶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자주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하며, 장르를 바꾸고 이끌어 가면서도 밴드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식상하지 않은, 원숙한 연륜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X JAPAN과 달리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며, 90년대 비주얼 록에 심취했던 한국인들도 "벅틱? 아직 해체 안 했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21세기 넘어서 록 페스티벌 참가로 내한 공연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이렇다...[9] 오리콘 차트에 많이 오르긴 했지만 1위를 할 때는 적었기도 했고,[10] 비주얼 락 요소를 지킨 동시대의 다른 밴드보다 실험적으로 막 나가는 곡을 쓸 때가 많아서 그런…걸까?[11]

꾸준히 활동하는 밴드지만 2021년은 팬데믹의 여파와 이마이 히사시의 대퇴골 골절 재활로 본의 아니게 휴지기에 들어갔으나 같은해 12월 29일 무도관에서 콘서트를 열어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2022년 8월 4일, 사쿠라이 아츠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Zepp 나고야에서 열릴 예정이였던 팬클럽 라이브가 취소 되었다.


프론트맨이었던 사쿠라이 아츠시가 고인이 되면서
2023년 12월 고별 공연을(본인은 없지만 조명으로 비추고 음원만) 마지막으로 보컬이었다가
2024년 11월 신곡 부턴 기타,코러스 포지션을 하고 있는 이마이 히사히와 호시노 히데히코가 프론트맨이 되었다. *

3. 멤버

기본적인 구성은 트윈 기타. 이마이가 주로 리딩하지만, 곡의 필요성에 따라(주로 어쿠스틱 기타를 쓸 때) 호시노가 잠깐씩 리딩할 때도 있다.
밴드의 얼굴마담인 사쿠라이나 창설자인 이마이가 리더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식적 리더는 없다.

3.1. †사쿠라이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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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ruby( 櫻井敦司 , ruby=さくらい あつし)] (사쿠라이 아츠시)[12]
출생 1966년 3월 7일[13]
군마현 후지오카시
사망 2023년 10월 19일[14] (57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포지션 보컬, 작사(前 드럼)
신체 177cm, O형
학력 군마현후지오카고등학교 (졸업)

벅틱의 작사가, 보컬리스트이자 소속 레이블인 유한회사 벙커의 2대 대표이사.[15] 통칭 앗짱, 마왕.

인디즈 데뷔 전에는 드럼으로 밴드에 들어갔지만 음악적 방향성의 차이로 전 보컬 아라키의 퇴출 이후 지금까지 바쿠치쿠의 프론트맨 [16] 을 맡고 있다. 작사도 그가 담당할 때가 많으며, 대체로 어두우면서 다양한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로 곡의 분위기에 영향을 줄 때가 많다. 독특하고 낮은 미성과 좌중을 압도하는 무대매너로 밴드 전반의 음울하고 색스러운 분위기까지 정해 버렸다. 특유의 어두운 작사+보컬타입에 적응해 버린 팬들은 오히려 밴드 초창기나, 2000년대 후반 다시 밝아진 스타일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데뷔초 발성이 불안정하고 가창력이 부족하단 평을 받았으나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점차 보컬이 안정되었다.

무대에서의 사람 잡아먹을 듯한 퍼포먼스, 퇴폐적인 작사 센스와는 다르게 사석에서는 굉장히 수줍음 많고 친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고 멤버들 중 눈물이 제일 많다고 한다. 외모에 비해 말할땐 목소리가 작고 말주변도 없어 여러 예능이나 방송에서 인터뷰어를 애먹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퍼포먼스와 미학적으론 DER ZIBET의 보컬 issay와 DEAD END MORRIE, 데이비드 보위, 바우하우스(밴드) 등 고딕락과 뉴로맨티시즘의 영향을 깊게 받았음을 여러 매체에서 공언하고 있으며 밴드의 대표곡인 로맨스와 고딕락의 색채가 짙은 솔로 프로젝트 THE MORTAL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재팬의 기타리스트 츠치야 마사미의 솔로 앨범에 작사와 보컬을 제공하기도 했다. 데르지벳의 잇세이와는 서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지 각 밴드의 앨범에 듀엣곡을 수록하거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는 등 현재까지도 여러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벅틱 외에는 솔로 프로젝트인 사랑의 혹성(愛の惑性), THE MORTAL, schwein[17]등 다양한 유닛에서 활동했다.

중~장년을 웃도는 나이임에도 여성용 기모노 니 삭스 , 가터벨트를 신고 무대에 서는 등 과감한 패션 센스로도 유명하다.

자타공인 굉장한 고양이 애호가로 팬클럽 회보에 고양이들의 사진을 자주 게재한다. 진행하는 정규 라디오 방송의 제목에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을 넣거나 종종 투어 굿즈로 반려묘들을 모티브로 한 상품을 제작한다. 그러나 이마이에 의하면 고양이 알레르기라고. (...)

1991년 벅틱의 스타일리스트와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18], 이후 2004년 6월, 일반인과의 재혼을 공표한다.

일본 록계에서도 눈에 띄는 미청년 미중년 테크를 착실하게 받은 캐간지 미남[19] 20대 장발간지 30대 단발간지 40대 파문전사간지(…) 이지만 밴드 결성 때는 호시노가 잘 생겼다고 생각해서 모두들 호시노를 보컬로 만들려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히무로 쿄스케가 BOØWY로 대성공한 후 자신들의 고향인 군마에 돌아와 파티중 드러머 시절의 아츠시를 우연히 만났을 때 '너는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보컬을 해라.' 라고 조언해 준 적이 있다.

인디 시절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 스태프가 사쿠라이의 의상에 대해 불만을 표하자 이를 듣고 있던 사쿠라이가 삐져서 (....)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의상을 갈아입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때문에 이마이가 첫 곡인 'FLY HIGH'의 인트로를 5분 정도 계속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 이마이는 이 사건을 밴드의 충격적인 '인트로 계속 연주 사건'이라고 회자한다.

abingdon boys school의 2010 투어당시 게스트로 참가해서 abingdon boys school이 BUCK-TICK의 트리뷰트 앨범에서 커버한 드레스를 듀엣으로 부른적이 있는데, 이후 사쿠라이 아츠시가 퇴장한 후 니시카와 타카노리가 마왕에다가 악마로 표현한 적이 있다.[20] 영상에서는 멘트가 잘렸지만

초기 활동 당시의 순정 만화를 찢고 나온듯한 비주얼은 여러 유명 만화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사가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코바야시 토모미도 그의 팬으로 유명하다. 사가 프론티어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바쥬일은 아예 그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캐릭터. 천사금렵구의 작가 유키 카오리는 벅틱의 동인지와 사쿠라이의 팬아트를 그리기도 했다.

배우 쿠리야마 치아키의 음반 circus에 작사를 제공했다.

2019년 시이나 링고의 정규 6집 삼독사 (三毒史)에 그녀의 부탁으로 작사, 보컬을 제공했으며 함께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23년 10월 19일 23시 9분, 뇌간 출혈로 병원에서 사망, 향년 57세. 당일 KT Zepp Yokohama에서 열린 팬클럽 라이브에서 첫 곡을 부르던 중 컨디션의 난조를 보였고, 세 번째 곡 '절계'를 완곡한 후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퇴장하고 라이브는 중단, 사쿠라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차후 예정된 모든 공연 개최가 취소되었다. 공연이 예정 돼있던 장소는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장이 되었다. 밴드의 공식 공지 그러나 멤버들과 스태프들 간의 논의 끝에 12월 29일, 밴드는 새로운 타이틀 'Buck-Tick Phenomenon -2023-' 으로 일본 무도관 콘서트를 개최한다.

3.2. 이마이 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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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ruby(今井 寿, ruby=いまい ひさし)] (이마이 히사시)
출생 1965년 10월 21일 ([age(1965-10-21)]세)
군마현 후지오카시
포지션 기타, 작곡, 코러스
신체 175cm, O형
학력 군마현후지오카고등학교 (졸업)
인스타그램 블로그

별명은 그냥 이마이. 별명 같은 것이 필요없다. "이마이"로 설명이 다 되는 사람.

기타리스트이자 밴드의 음악성을 책임지는, 정신줄을 반쯤 4차원에 놓고 사는 듯한 음악과 발언들이 매력적인 음악가. 특이하게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지만 실제로는 오른손잡이. 왼손 기타를 치는 이유는 그게 더 편해서.[21] 커스텀 기타도 많이 연주하고[22], 라이브 시 추는 괴상한 다리춤이라든가, 야하거나 기기괴괴한 의상이라든가, 머리카락을 총천연색으로 염색한다거나, 얼핏 보면 3초 정도는 조니 뎁이 연상될 정도로 수염을 기른다거나, 발로 테레민을 연주한다던가 등 밴드의 퍼포먼스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저 리드 기타만이 아닌 기타리스트 그 이상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 기타를 신디사이저처럼 연주하는 느낌이 강하며 상기한 것처럼 남들과는 정 반대로 연주하는지라변태기타 벅틱의 곡들은 테크닉적으로는 별로 어렵진 않으나 예상외로 리드 기타의 프레이즈와 감각이 너무 괴상해서 귀로 듣고 한번 따보려고 하면 카피를 어렵게 만든다. 기타리스트들은 생긴대로 플레이한다는 속설의 신뢰도를 높이는 주범(...).

2008년에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 전후로 여태까지의 밴드 내 세계관이 의심될 정도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밝은 러브송들을 양산하여 기존 팬들을 패닉에 몰아넣고 있다.[23] 대표적으로 이런거

BUCK-TICK의 활동을 잠깐 쉬어갈 때에는 Soft Ballet의 기타/키보디스트인 후지이 마키와 인더스트리얼 유닛 SCHAFT[24] 로 활동하고 있다.SCHAFT 외에도 Kiyoshi[25], 오카자키 카츠시게와 함께 Lucy라는 밴드로도 활동을 하는데, 이마이를 포함한 멤버 셋이 각자 돌아가면서 보컬을 맡고 있다.

전신 밴드 비난 GO-GO와 벅틱의 밴드명, 공식 팬클럽 FISH TANKER는 모두 이마이가 지었다. 결성 당초 더 스탈린 의 카피 밴드였기 때문에, 이마이는 'THE NOTALIN' 이라는 밴드명을 생각했지만, 히구치 유타카의 강한 반대로, '비난 GO-GO' 로 정했다고 한다.

뺨에 쓰여 있는 B-T가 트레이드마크다. 데뷔 초에는 뺨 전체에 크게 쓰여 있었으나, 'SEVENTH HEAVEN' 시절부터 '왠지...못생겼으니까'라는 이유로 작게 쓰여지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뺨이 아닌 목덜미에 쓰여지기도 하고, 바리에이션으로 'BiTch'라고 쓰여진 적도 있었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오른쪽 앞니 2개에 각각 B 와 T 를 금도금하고 있다.

라이브에서 공연 시작 전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마이가 평소 듣고 있는 음악 중에서 고른 것이다. 라이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용한 BGM 목록을 블로그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한다. 선곡에 대해서는 공연장의 규모나 관객의 상태(지정석인지 입석인지)를 고려하지만, 일부러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느린 성격 탓인지, 작곡 기간의 마감일을 넘기거나 녹음 중에도 잠을 자고 있다는 에피소드도 많다. 그 영향으로 앨범 'darker than darkness -style 93-'에서는 발매 전에 투어를 시작하거나, 'Six/Nine' 등 호시노 히데히코가 만든 곡에서는 이마이의 기타를 연주하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무대 의상 디자인이나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멤버 중 가장 늦다. 본인 왈, "방학 동안 핑핑 놀고, 막바지에 허둥지둥 약 한 달 분량의 일기를 벼락치기한다. 그런 초등학생. 그게 바로 나." 라고...[26] 그래도 누구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완성하긴 한다.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1989년 4월 LSD 사용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마이 외에도 밴드 전원이 6개월간 근신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같은 해 12월부터 활동 재개.

3.3. 호시노 히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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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ruby(星野 英彦, ruby=ほしの ひでひこ)] (호시노 히데히코)
출생 1966년 6월 16일 ([age(1966-06-16)]세)
군마현 후지오카시
포지션 기타, 작곡, 키보드, 코러스
신체 179cm, A형
학력 군마현후지오카고등학교 (졸업)

통칭 히데. 영어로 써도 Hide라서 X JAPAN 팬들이 헷갈려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호시노 히데" 라고 해 주자.

벅틱의 오른손 기타리스트이자 밴드의 최장신. 비범한 작곡가임은 틀림없지만 사실 기타리스트로써는 그다지 특출나지는 않은 이마이와 반대로 존재감은 훨씬 떨어지나 훌륭한 연주자이며, 라이브에 가 본 적이 있는 올드비 팬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마이의 라이브 실력이 어설펐던 시절엔 1인2역도 하더라라고 한다(…) 이마이와 또 달리 그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곡들도 만들어 낸다. 비교적 청자에게 부드럽고 세련된 곡들을 잘 뽑으며, 히데가 만든 곡들을 더 선호하는 팬들도 꽤 많다. 어떻게 보면 이마이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지만 인기도는 항상 이마이에게 눌리는 콩라인[27]. 밴드의 정상인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사쿠라이의 대마왕 카리스마와 이마이의 4차원에 가리긴 하지만 이 사람도 가끔씩 만만찮게 변태적인 곡들을 뽑기도 한다. [28]

벅틱의 활동 이외에는 Drops라는 유닛을 결성해서 프로듀서로 활동을 한 적도 있는데, 그냥 파묻혀 버린 흑역사가 있다.

여담으로 토크쇼나 인터뷰 중에 멍 때리거나, 졸거나, 몽롱해져 있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가장 큰 흑역사는 상기한 이마이의 LSD 사용혐의로 인한 구속사건 때 기자가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아 신문기사는 이마이의 기사인데 사진은 호시노 히데히코의 사진이 나간 것(…)으로 호시노의 회고에 따르면 소속사 사무실로 지인들의 전화가 미친듯이 걸려왔다고.

상경 초기 이마이에게 매일같이 자택의 아파트를 털리고, 용변을 일부러 흘려보내지 않거나 목욕탕에 된장국을 끓여놓는 등 기행을 겪은 일화가 있다. 이마이와 동거하던 시기에는 이마이가 숙면을 취하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밖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투어 중 다른 멤버들보다 늦게 호텔에 도착해 '벽'이라는 이름으로 예약된 적이 있다. 데스크에서 "벽입니다"라고 말하는 호시노를 멤버들은 웃으며 지켜보았다고 한다.

청력장애를 오래 앓은 끝에 현재는 왼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활동에 크게 지장은 없지만 일상생활에선 은근히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초중고 축구부에 소속됐을 만큼 운동을 좋아한다. 현재까지도 축구 외에도 스노우 보드 등 여러 스포츠 활동을 즐겨하는 모양이며 GLAY의 테루가 주최하는 밴드맨 축구회의 골키퍼를 담당하고 있다.

1991년 10월 21일, 옴니버스 앨범『DANCE 2 NOISE 001』에 자신이 작사・작곡・편곡・보컬도 담당한 「Jarring Voice」를 본인 명의로 수록했다.

배우 쿠리야마 치아키의 음반 circus에 곡을 제공했다.

3.4. 히구치 유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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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ruby(樋口 豊, ruby=ひぐち ゆたか)] (히구치 유타카)
출생 1967년 1월 24일 ([age(1967-01-24)]세)
군마현 다카사키시
포지션 베이스
신체 162cm
학력 군마현후지오카고등학교 (졸업)

통칭 유타. 밴드의 막내이자 최단신이다. 형인 야가미와 함께 바쿠치쿠의 리듬을 책임지는 리듬 형제의 일원. 라이브 백스테이지 영상을 보면 다른 멤버들이 놀릴 정도로 완벽주의적으로 메트로놈을 대고 연습한다. X JAPAN을 위시한 오래된 밴드들이 간혹 가장 중요한 파트 중 하나인 베이스 기타 파트에서 백킹 중 삑사리를 내서 빈축을 사는 것과 달리 웬만해서는 삑사리 잘 안 내기로 유명하다. 다른 멤버들보다 비교적 성격이 친근하고 말이 많아 대외적으로는 형 야가미 토오루와 함께 방송이나 잡지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다.

공식 팬클럽을 가입하면 조회할 수 있는 유타의 블로그가 있는데, 매일 성실하게 게시글을 업로드 하고 있으며 주로 투어나 일상에 관한 사진이다. 여담으로 오너캐인 시리어스 베어를 여러 상품으로 굿즈화 하여 판매하고 있다. 유타의 싸인에도 종종 등장하며 특유의 너무하리만치 심플한 디자인이 귀엽다는 평이 많다.

한신 타이거스의 열성 팬이다. 월간지 음악과 사람에서 같은 한신빠인 편집장 카네미츠와 팬심을 피력하는 코너가 연재될 정도.

싱글 악의 꽃의 수록곡 under the moonlight은 벅틱의 곡들 중 유일하게 유타가 작사한 것이다.

3.5. 야가미 토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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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ヤガミトール
본명 [ruby(樋口 隆, ruby=ひぐち たかし)] (히구치 타카시)
출생 1962년 8월 19일 ([age(1962-08-19)]세)
군마현 다카사키시
포지션 드럼, 퍼커션
신체 170cm, A형

통칭 아니이. 야가미 토오루는 예명으로, 베이스 히구치 유타카와는 형제이다. 드럼은 빨리 친다고 다가 아님[29]을 몸소 보여 준다. 레드 제플린을 연구하는게 취미라고 할 정도의 레드 제플린 광이기도 하다. 예명을 쓰게 된 계기가 독특한데, 차마 LOUDNESS 히구치 무네타카 선생님과는 같은 성을 쓸 수 없다며 예명을 쓰게 되었다, 또한 예명에서의 토오루는 드럼을 치던 죽은 형의 이름을 따왔다고…

현 BUCK-TICK의 유일한 굴러들어온 돌. 동생 유타가 고등학교 동창들과 밴드를 만들었을 때 그는 다른 밴드에 속해 있어서 가입을 거절했지만, 악기라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고딩들(…)을 돕기는 했다. 주로 아츠시에게 드럼을 가르쳤다. 후에 소속된 밴드가 해체하고 벅틱도 기존 보컬이 탈퇴 후 드러머였던 아츠시가 보컬이 되면서 어찌하여 드럼으로 합류, 그리고 인디즈 데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밴드 초창기부터 세운 모히칸 머리를 아이덴티티로 고수해 오셨다. 무대 밑에서 머리를 내리신 형님을 보면 심심하다. 캐롤 야자와 에이키치의 팬으로 첫 밴드는 캐롤의 카피밴드로 시작했고 고등학교 자퇴 후 철공소에 취직해 일하면서 주말에만 취미로 밴드를 하다가 한때 음악을 그만두고 드럼키트를 내다버린 적도 있을 정도로 방황했었지만 이후 동생의 권유로 도쿄에 상경해 밤새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는 일화가 있다.

4. 역사

4.1. 1984~1991

1984년 스탈린의 카피 밴드 비난 GOGO를 같은 해 여름 BUCK-TICK 으로 개명, 이듬해 봄 호시노와 히구치의 고교 졸업을 계기로 도쿄 진출에 나섰다. 전 보컬의 탈퇴와 사쿠라이의 보컬 전향으로 야가미가 밴드에 합류하며 지금의 라인업이 완성된다. 계속되는 판매 부진에 오리지널 곡의 필요성을 느낀 멤버들은 야가미의 인연으로 YAMAHA 히요시 센터 스튜디오에서 싱글 「TO - SEACH/PLASTIC SYNDROMEⅡ」을 레코딩하였고, 이후 레이블 태양 레코드를 통해 인디즈 데뷔를 하였다.
1987년 4월 1일에는 인디 앨범 'HURRY UP MODE' 가 발매되었다. 홍보를 위해 '4월 1일 토시요마 공회당 바쿠치쿠 현상' 이라는 스티커를 제작해 도쿄 시내 곳곳에 붙였는데, 스티커 전략이 통했는지, 사전 판매 티켓은 400장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일권 400장이 판매되어 총 8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에 힘 입어여러 유명 음반사들의 연락이 쇄도 하자, 같은 해 6월 16일, 밴드는 공연 "BUCK-TICK Phenomenon II at LIVE INN" 통해 빅터 엔터테이먼트에서의 메이저 데뷔를 발표한다. 빅터와의 계약 체결은 공연일의 이틀 후 였다.
당시 빅터의 디렉터였던 다나카 준이치는 계약 기간인 2년 동안 싱글 대신 세 장의 앨범을 발매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미지를 바꾸지 말 것 / 멤버 5명을 변함 없이 유지할 것 / 프로듀서를 지정하지 않을 것 / 멤버 외의 세션을 동원하지 않을 것' 등 BUCK-TICK측이 요구한 메이저 계약의 조건에 따라 메이저 1집 앨범 'SEXUAL×××××!' 는 스튜디오 뮤지션이나 프로듀서를 기용하지 않고 제작되었으며, 11월 21일 발매되자마자 오리콘 차트 최고 33위를 기록하며 신인 밴드의 첫 앨범으로서는 기대치가 높은 결과였지만, 평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HURRY UP MODE' 역시 메이저에 진출하자마자 잠재성은 있어도 '영혼을 팔았다'거나 '실력이 없다'는 등의 평가가 쏟아졌고, 1년 안에 사라질 거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멤버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게 된다.
해가 바뀌자마자 멤버들은 미니앨범 'ROMANESQUE' 제작에 돌입했다. 데뷔 전 데모 테이프용으로 녹음했던 'SEXUAL ×××××!', MOON LIGHT', 'ROMANESQUE', 'ROMANESQUE' 세 곡 중 1집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평이 좋았던 'ROMANESQUE'의 이미지를 보다 구체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록곡 'HEARTS'는 그들을 모델로 한 동명의 소녀 만화를 모티브로 한 곡으로, 만화 속 밴드명 'BLUCK-TLICK'이라는 이름으로 1월 24일 신주쿠 LOFT에서 시크릿 라이브도 진행했다.
1집과 이번 'ROMANESQUE' 로 당시 가지고 있던 곡을 모두 쏟아냈기 때문에 2월부터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SEVENTH HEAVEN'의 제작 일정이 힘들어졌다. 짧은 기간에 신곡을 만들어하지만 일정은 스케줄로 꽉 차 있는 탓에 그래서 그전까지는 거의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이었지만, 'SEVENTH HEAVEN' 녹음을 계기로 리듬대가 함께 녹음한 후 기타를 넣는 이른바 정통적인 녹음 패턴으로 바뀌었다. 이번 작품에는 SOFT BALLET의 모리오카 켄이 키보드로 참여했다. 'SEVENTH HEAVEN'의 작품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그의 공이 컸으며, 6월 21일 발매하자마자 오리콘 차트 첫 등장 3위, 최고 2위라는 좋은 기록을 세웠다.
이 무렵, 멤버들은 닥치는 대로 촬영과 취재가 이어지면서 머리를 세우는 데 2시간을 쓸 바에야 그 시간을 잠자는 데 쓰고 싶어서 머리를 세우고 잠을 자는 듯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예를 들어 'SEVENTH HEAVEN'의 재킷 촬영 날에는 아침 6시부터 잡지 촬영을 시작해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재킷 촬영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맞이한 것이 앨범 『TABOO』의 첫 런던 녹음이었다. 영국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던 그들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고,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지만 너무 바빠서 데모 테이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프로듀서인 오웬 폴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오웬 폴과 엔지니어 윌 고슬링에게 받은 스파르타 레코딩은 드럼의 사운드 메이킹, 스튜디오 플로어가 아닌 믹싱룸 테이블 앞에서 연주하고 녹음하는 기타나 베이스의 녹음 스타일 등 이후 BUCK-TICK의 녹음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 곧바로 시작된 'SEVENTH HEAVEN' 투어는 단숨에 공연 횟수가 늘어났고, 공연장도 더 많은 홀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고 생각한 멤버들은 이 투어부터 무대에 단을 배치해 멀리서도 멤버 전원이 보이도록 하는 등 현재에 이르는 무대 배치를 확립했다.
투어 중 발매된 메이저 첫 싱글 'JUST ONE MORE KISS'는 라디디오 카세트'CDian'의 TV 광고에 등장해 큰 히트를 쳤다. 멤버들도 직접 출연하여 '중저음이 폭발한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화제를 모았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그 해 '제30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 해는 BUCK-TICK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해였다.
1989년 1월 18일, 드디어 앨범 'TABOO'가 발매되었다. 팝적이고 캐치한 이전 두 작품과 달리 어둡고 하드한 사운드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메이저 아티스트의 작품 중에서는 이색적이었지만, 첫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톱 아티스트로 급부상했다. 그 다음날에는 'SEVENTH HEAVEN' 투어의 파이널 공연으로 첫 일본 무도관 공연 2days가 개최되었는데, 첫째 날은 앨범 'SEVENTH HEAVEN'의 곡을 중심으로, 둘째 날은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TABOO'를 중심으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했다. 이 2일차 무대 모습을 담은 2편짜리 라이브 비디오' Sabbat 【Ⅰ】/【Ⅱ】가 4월에 발매되었는데, 1일차 무대가 머리를 거꾸로 세운 사쿠라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3월 22일, 도쿄 다치카와 시민회관을 시작으로 "TABOO" 투어가 시작되었다. 각지에서 확실한 반응을 느끼며 알찬 투어를 돌고 있던 멤버들이었지만, 이마이의 마약 사건으로 인해 투어가 중단되었다.
활동 중단 후 제작한 새 앨범의 타이틀인 '악의 꽃'은 자숙 중 사쿠라이가 읽었던 샤를 보들레르의 동명의 시집에서 따온 것으로, 전작 'TABOO'의 엔지니어 윌 고슬링(Will Gosling)을 영입하여 더욱 더 어둡고 퇴폐적인 작품으로 완성됐으나 상황상 '반성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이마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멤버들이 의욕적으로 작사에 임한 시기로, 호시노가 작사한 'PLEASURE LAND'와 야가미가 작사한 'DIZZY MOON'을 수록했다. 또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히구치가 작사한 'UNDER THE MOON LIGHT'는 선행 싱글 '惡の華'의 커플링이 되었다.
부활 라이브로 12월 29일 도쿄돔 공연이 대대적으로 발표되었지만, 그 9일 전에 그들의 고향인 군마 음악센터에서 부활의 첫 번째 라이브 '벅틱 현상'이 개최되었다. 사건 이후 전국에서 가장 먼저 그들에게 공연장을 빌려준 곳이 바로 이 군마 음악센터였고, 그 덕분에 다른 현의 공연장도 빌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메이저 데뷔 후 불과 2년 3개월 만인 12월 29일, '벅틱 현상 TOKYO DOME'이라는 제목으로 BUCK-TICK의 첫 도쿄돔 공연을 개최했다. 약 43,000명을 동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메이저 1집 앨범의 타이틀 곡 'SEXUAL×××××!'를 선택. 이 12월 29일은 벅틱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화려한 부활극을 보여준 벅틱은 그 기세를 몰아 새해를 맞이했고, 1월 24일 발매한 싱글 '惡の華'와 2월 1일 발매한 앨범 '惡の華'가 모두 오리콘 차트 첫 1위를 차지했다. 또한 4월 1일에 발매한 앨범 전곡 비디오 클립집 '惡の華'도 비디오 차트 1위에 오르며 '惡の華'로 3관왕을 달성했다. 부동의 인기를 세상에 알렸다. 그 높은 인기와 화제성으로 인해 그들이 과거에 발표한 인디 작품들이 프리미어되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일이 많아지자 'HURRY UP MODE'를 리믹스하여 2월 8일 'HURRY UP MODE(1990MIX)'를 발매했다.
그리고 3월부터 염원하던 전국 투어 '惡の華' 가 시작되었다. 'TABOO' 투어로 중단된 곳을 우선적으로 순회하며 약 4개월에 걸친 투어를 성황리에 마쳤으며, 첫 단독 야외 콘서트 '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는 역동적인 무대와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관객을 압도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관객은 늘어났고, 12월에 개최한 '5 FOR JAPANESE BABIES' 투어는 아레나 규모의 대형 공연장이 늘어났다. 이 투어 즈음부터 드디어 여유를 가지고 투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투어를 순회하는 곳마다 폭음을 즐기게 된 것도 이 투어부터라고 한다. 각지를 휩쓴 BUCK-TICK의 과음 전설은 이 투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TABOO', '惡の華'의 두 작품으로 BUCK-TICK이 지향하는 사운드의 방향성과 어두운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고 있었지만, 멤버들은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는 여전히 모색 중인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디렉터 다나카는 9월부터 시작된 새 앨범 제작에 녹음 엔지니어로 '히루마 히토시 (比留間整)' 를 초빙하였고, 그를 만나면서 BUCK-TICK의 사운드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녹음에만 총 800시간이 소요된 '미친 태양'은 사쿠라이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자신을 겹쳐서 붙인 이름이다. 아직은 어딘지 모르게 아이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쉬웠던 BUCK-TICK이 이 '미친 태양'으로 제 33회 일본 레코드 대상의 우수 앨범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혀를 내두르기에 이른다. 타이틀이 되는 '미친 태양'은 사쿠라이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되어 붙인 이름으로, 물론 크게 달라진 것은 사운드만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이마이와 나눠서 앨범 중 절반 정도의 곡을 작사하는 경우가 많았던 사쿠라이가 이번 작품에서는 11곡 중 10곡을 직접 작사했다. 그 안에는 내면을 울리는 현실적인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4.2. 1992~1996

4.3. 1997~2004

4.4. 2005~2011

4.5. 2012~2018

4.6. 2019~

5. 디스코그래피

5.1. 싱글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6.10.21 TO-SEARCH[30] - -
1988.10.26 JUST ONE MORE KISS 6위 146,680장
1990.01.24 悪の華 1위 220,800장
1991.01.21 スピード 3위 179,590장
1991.06.05 M・A・D 4위 83,960장
1991.10.30 JUPITER 8위 98,770장
1993.05.21 ドレス 5위 170,890장
1993.10.21 die 10위 61,920장
1995.03.24 4위 199,680장
1995.04.21 鼓動 6위 140,130장
1995.09.21 見えない物を見ようとする誤解 全て誤解だ 15위 54,070장
1996.05.22 キャンディ 11위 114,440장
1997.11.12 ヒロイン 11위 82,450장
1998.03.11 囁き 25위 18,800장
1998.05.13 月世界 18위 44,050장
1999.07.14 BRAN-NEW LOVER 17위 30,930장
1999.10.20 ミウ 15위 38,940장
2000.09.06 GLAMOROUS 17위 34,200장
2001.11.21 21st Cherry Boy 25위 23,240장
2002.02.20 極東より愛を込めて 17위 19,580장
2003.01.18 残骸 5위 37,985장
2003.12.03 幻想の花 11위 25,333장
2005.03.02 ROMANCE 14위 24,250장
2005.04.02 ドレス(bloody trinity mix) 24위 12,729장
2006.08.02 蜉蝣-かげろう- 17위 24,610장
2007.06.06 RENDEZVOUS~ランデヴー~ 9위 18,705장
2007.08.08 Alice in Wonder Underground 18위 17,858장
2008.12.17 HEAVEN 5위 20,080장
2009.01.14 GALAXY 6위 18,974장
2010.03.24 独壇場Beauty 7위 17,399장
2010.09.01 くちづけ 7위 18,789장
2012.05.23 エリセのために 11위 16,328장
2012.07.04 MISS TAKE ~僕はミス・テイク~ 11위 14,462장
2014.01.22 LOVE PARADE / STEPPERS -PARADE- 9위 12,855장
2014.05.14 形而上 流星 10위 14,991장
2016.09.21 New World 10위 13,203장
2017.11.15 BABEL 11위 12,527장
2018.02.21 Moon さよならを教えて 14위 11,188장
2019.05.22 獣たちの夜 / RONDO 4위 13,410장
2020.01.29 堕天使 6위 12,188장
2020.08.26 MOONLIGHT ESCAPE 13위 12,618장
2021.09.22 Go-Go B-T TRAIN 5위 13,505장
2023.03.08 太陽とイカロス 10위 9,905장
2023.03.22 無限 LOOP 10위 9,488장

5.2. 정규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7.04.21 HURRY UP MODE[31] - -
1987.11.21 SEXUAL×××××! 33위 40,820장
1988.06.21 SEVENTH HEAVEN 3위 90,850장
1989.01.18 TABOO 1위 298,620장
1990.02.01 悪の華 1위 434,630장
1990.02.08 HURRY UP MODE[32] 1위 212,430장
1991.02.21 狂った太陽 2위 324,740장
1993.06.23 darker than darkness-style93- 2위 213,260장
1995.05.15 Six/Nine 1위 240,760장
1996.06.21 COSMOS 6위 174,410장
1997.12.10 SEXY STREAM LINER 4위 107,840장
2000.09.20 ONE LIFE, ONE DEATH 11위 45,970장
2002.02.06 極東 I LOVE YOU 12위 34,750장
2003.02.13 Mona Lisa OVERDRIVE 7위 45,297장
2005.04.06 十三階は月光 4위 42,593장
2007.09.12 天使のリボルバー 5위 32,541장
2009.02.18 memento mori 7위 31,692장
2010.10.13 RAZZLE DAZZLE 6위 27,932장
2012.09.19 夢見る宇宙 14위 26,255장
2014.06.04 或いはアナーキー 4위 23,821장
2016.09.28 アトム 未来派 No.9 5위 22,930장
2018.03.14 No.0 2위 24,952장
2020.09.21 ABRACADABRA 3위 23,907장
2023.04.12 異空 -IZORA- 2위 19,774장[33]

5.3. 미니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8.03.21 ROMANESQUE 20위 43,820장
1998.03.11 LTD - -

5.4. 베스트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7.04.21 HURRY UP MODE[34] - -
1987.11.21 SEXUAL×××××! 33위 40,820장
1988.06.21 SEVENTH HEAVEN 3위 90,850장
1989.01.18 TABOO 1위 298,620장
1990.02.01 悪の華 1위 434,630장
1990.02.08 HURRY UP MODE[35] 1위 212,430장
1991.02.21 狂った太陽 2위 324,740장
1993.06.23 darker than darkness-style93- 2위 213,260장
1995.05.15 Six/Nine 1위 284,510장

5.5. 리믹스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94.08.24 シェイプレス 5위 110,450장

5.6. 커버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92.03.21 殺シノ調べ This is NOT Greatest Hits 1위 337,140장

6. 관련 문서


[a] 1984~2023 [b] 2024~ [b] 2024~ [4] 예명의 토오루는 형의 이름이다. 야가미는 가타카나 표기 ヤガミ의 뾰족뾰족한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5] 밴드의 대표곡 '악의 꽃'은 근육소녀대 오오츠키 켄지에게 패러디당하기도 했다. 디스의 목적은 아니었고 관객들 웃겨보려고 했던 이벤트였다는 듯. 본인은 곡 자체는 꽤 좋아했다고 한다. 추후에 라디오에 직접 등판해서 본인 앞에서 재현해주기도 했다. 머쓱해 죽으려는 오켄이 압권. [6] 일본의 TV프로그램 '뮤직파이터'에서 (당시 시점으로) 20년간 오리지널 멤버인 비결을 묻자, '참는 것'이 비결이라고 대답한 바가 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의 의미는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한다는 의미. [7] "우리는 항상 다섯이서 소리를 맞추어 왔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BUCK-TICK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라거나 "한 사람이 죽게 될 때까지는 같이 밴드활동을 하고 싶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하는 것을 보아 오랜 세월을 함께 활동하다보니 멤버들 간의 유대감도 상당한 듯. [8] 그들의 음악성이 제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되는 악의 꽃 이후 이때까지 출시된 싱글, 앨범들이 한 번도 진입시 오리콘 20위 이하일 때가 없었다! [9] 현재 동두천 락 페스티발인 2001년 소요 락 페스티벌에서는 장비들의 목숨이 걱정될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야외 공연을 훌륭하게 해내어 참석한 팬들에게 대인군자 인증을 받았다고. 저 시절에 한국에 앨범 정발도 하나 되었으나, 워낙 팔리지가 않았던 듯 더 나오진 않는다. [10] 싱글 1위는 악의 꽃, 앨범 1위는 더 많이 해 봤지만 1995년 Six/Nine이 끝이다. [11] 사실 한국에서는 동일한 성향으로 계속 나가는 뮤지션이 인기있는 편이다. 같은 일본 밴드인 DIR EN GREY도 탈비주얼 선언 당시 팬들이 후두둑 떨어져나갔다. [12] 1993년경까지는 신자체로 '桜井敦司' 또는 'ATSUSHI'(아츠시)로 표기했다. [13] 생일과 기일이 아버지와 같음. [14] 생일과 기일이 아버지와 같음. [15] 1대는 같은 멤버인 야가미 토오루. [16] 원래 외부에서 보컬을 들어오려 했지만 그의 생떼에 가까운 주장으로 보컬을 맡았고, 빈 드럼 자리는 히구치의 형인 야가미 토오루가 맡게 되었다. [17] KMFDM의 샤샤 코니에츠코, pig의 레이몬드 왓츠 참여. [18]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도노 하루카(토노 하루카)라는 아들이 있다. [19] 하지만 워낙 인상이 무섭게 생겨서 취향을 타긴 한다. 니시카와같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뱀파이어같다는 평가도 한다는 듯. [20] 이때 니시카와가 했단 MC가 압권인데, 무려 '건강하기만 하면 스테이지에 악마도 부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21] 근데 이게 의외로 일렉에선 더 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주 쓰는 손으로 코드의 방향을 잡고 왼손으로 피킹만 하면 되니… [22] 주로 페르난데스(버니) 커스텀. 가격은 40만엔 대 이상. 16 시그니처 기타론 마이마이라 불리는 BT-480MM과 STABILIZER SLV 등의 모델이 유명하다. [23] 이건 작사/작곡에 관여하는 이마이, 히데, 앗짱 세 사람이 이마이를 마지막으로 모두 유부남이 되어 버려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 것으로 보아야 할 듯. 그런데 사쿠라이는 신혼 생활중에 고딕 컨셉 앨범 작업을 아주 신나게 하는 사람이고, 호시노는 원래 정상인(?)이어서… [24] 1999년 zilch의 리믹싱 앨범「BastardEYES」에 참여한 후 활동 휴지 상태였으나 결성 21년 만인 2016년 1월, 2집 앨범 UTLA의 발매와 함께 활동을 재개하였다. [25] hide 밴드로 알려진 hide with Spread Beaver의 기타리스트. 이마이와는 술친구로 유명하다고… [26] http://blog.buck-tick.com/?p=1333 [27] 그래도 호시노가 작곡한 6번째 싱글 Jupiter 같은 곡은 한때 팬클럽 투표 1위를 차지한 명곡이다. [28] 헤엄치는 정자(...) 시점의 아스트랄한 가사가 압권이다. # # [29] 레드 제플린 존 본햄이랑 스타일이 비슷하다. 존경하는 분도 존 본햄이지만… 여담으로 존 본햄도 빠르진 않지만 특유의 리듬의 감각이 뛰어나다. 말하자면 야가미 토오루는 레드 제플린의 존 본햄 스타일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30] 인디즈 싱글 [31] 인디즈 앨범 [32] 재발매 [33] 진행중 [34] 인디즈 앨범 [35] 재발매 [36] 95년에 탈비주얼을 선언했지만 비주얼계에서 X JAPAN과 함께 상당히 영향을 주었고 상징같은 존재이기 때문인지 취소선을 긋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재 비주얼계로 활동하는건 아니다. 단지 그런 성향의 밴드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