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계엄사령관은 더이상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게 되었다. 보통 계엄령은
5.16 군사정변이나 10.17 처럼 처음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선포되거나 1964년 당시
6.3 항쟁이 발발하자 당일 21시 40분 대통령 공고 11호로서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이 내려졌다가 54일만인 7월 29일 해제되는 것처럼 선포 후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컨대
4.19 혁명의 경우 서울에서 4월 19일 오후 3시 경 이승만 정부를 향한 학생 등의 규탄 시위가 격렬해진 나머지 서울 한정으로 계엄령이 내려졌는데, 반정부 움직임은 수그러들지도 않고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계엄령 역시 오후 5시경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으로 확대된 바 있다. 1980년에도 이같은 비상계엄 확대조치가 있었는데, 이는
박정희 사망 확인 이후인 1979년 10월 27일에 선포된 비상계엄이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계엄이었기 때문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은
최규하 대통령과 내각을 강압하여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통과시키고, 계엄 포고령으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계엄군을 배치하여 국회의 출입을 봉쇄하고
김종필,
김대중 등을 연행하고
김영삼은 가택연금 시키는 등 주요 정치인들을 감금하여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계엄의 전국 확대로 계엄군을 직접 지휘, 감독하게 된 대통령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국정을 장악하는 등
5.17 내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