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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3:02:58

브래디 엘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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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fff,#1f2023><colbgcolor=#0054a4><colcolor=#ffffff> 36회 1991 크라쿠프 파일:호주 국기.svg 사이먼 페어웨더 <colbgcolor=#0054a4><colcolor=#ffffff> 37회 1993 안탈리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경모
38회 1995 자카르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경출 39회 1997 빅토리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경호
40회 1999 리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홍성칠 41회 2001 베이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연정기
42회 2003 뉴욕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미첼 프란길리 43회 2005 마드리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재헌
44회 2007 라이프치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동현 45회 2009 울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창환
46회 2011 토리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47회 2013 벨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윤
48회 2015 코펜하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49회 2017 멕시코시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동현
50회 2019 스헤르토겐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51회 2021 양크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52회 2023 베를린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메테 가조즈 53회 2025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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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white> 브래디 엘리슨
Brady Ellison
파일:GOGOBRADYELLISON.jpg
<colbgcolor=#002664> 본명 브레이디 리 엘리슨
Brady Lee Ellison
출생 1988년 10월 27일 ([age(1988-10-27)]세)
애리조나 주 글렌데일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종목 양궁
주 종목 리커브
세계 랭킹 3위
신체 183cm / 86kg
가족 배우자 토야 엘리슨(2016년 결혼)[1]
장남(2020년생), 차남(2024년생)
종교 기독교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기록5. 둘러보기6.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 양궁 선수.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무려 다섯 번의 올림픽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10여 년 동안 미국 리커브 국가대표팀을 지탱해 온, 자타공인 미국 양궁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브래디 엘리슨 본인은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에는 올림픽에 출전한 어떤 선수들과도 붙을 수 있을 정도의 인재가 50명쯤 있다는 발언을 통해 대한민국 양궁의 두터운 선수진을 부러워하면서도 경계했으며, 실제로 올림픽 금메달을 얻으려는 노력도 젊은 신예들이 쏟아져 나오는 대한민국 앞에서 번번이 좌절당했다. 하지만 역으로 전원이 올림픽 메달리스트급인 그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과 유일하게 순수 실력으로 맞상대가 성립했던 비한국인 선수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같은 팀 선후배를 제외하고 2010~2020년대 국제 대회 개인전 경기에서 최우선으로 경계했던 상대도 다름 아닌 브래디 엘리슨이었다.

2. 선수 경력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올림픽 대회에 첫 출전했으며 여기서는 개인전에서 2라운드에 탈락하며 조기에 개인전을 마감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 준결승에서 대한민국을 패퇴시킨 주역이었다. 그 뒤 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아쉽게 패배했고 대한민국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멕시코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결승에서 대한민국에게 설욕 당한 데 이어 개인전 준결승에서도 구본찬에게 슛오프 끝에 패배했다. 다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네덜란드의 셰프 판덴베르흐를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8강에서 튀르키예 메테 가조즈에게 패배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대회를 마감했다.[2]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케이시 코폴드와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에서도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한 뒤 16강에서는 튀르키예의 베르킴 투메르에게, 이어진 8강에서 김제덕에게 완승[3]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독일의 플로리안 운루 역시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는 엘리슨 본인의 첫 개인전 결승전 진출이다.[4] 그리고 반대쪽 브라켓은 김우진이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첫 개인전 결승 진출을 한 베테랑들의 한풀이 매치가 성사되었다. 또한 엘리슨은 그간 김우진과의 공식전 통산 전적이 1승 6패로 크게 뒤지고 있기 때문에 파리 올림픽의 승리로 그간 패배의 한을 갚고 싶을 마음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 꽤 치열한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승전에선 김우진과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할 정도의 명승부를 보여준 끝에[5] 결국 슛오프에서 단 4.9mm[6]로 불스아이에서 살짝 먼 화살을 쏘고 패배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야말로 올림픽 결승에 걸맞은 세기의 명승부,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진정한 양궁 최고의 궁사들의 대결이었다.

승부가 결정되자 김우진에게 먼저 다가가서 하이파이브를 건넨 뒤, 김우진의 팔을 들어올리며 승리를 축하해 준 것에 이어 양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들까지 나와 서로의 팔을 올려주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매너를 보인 뒤 대회를 마감했다. 또한 이후 시상식 때도 끝까지 김우진을 불러 허그하며 축하해 주는 등 재치 있고 매너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에게도 졌잘싸이자 대등한 싸움을 했다는 만족감을 준 경기였음에 틀림없을 것이다.[7] 김우진을 응원하던 한국의 네티즌들도 엘리슨이 김제덕과의 경기부터 보여준 뛰어난 실력과 결승전 종료 후 보인 멋진 매너까지 보며 결승전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며 엘리슨에 대한 상당한 호평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댓글 반응들을 보자면 "미국아재 너무 잘하고 인성도 훌륭하다", "결승전 5엔드에 서로 텐텐텐 쏘는 건 미친 거 아니냐", "주몽 VS 호크아이를 방불케 하는 역대급 결승전이었다" 등등.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8] 엘리슨은 나와 김우진이 활을 들어올렸을 때, 우리는 아마 양궁 역사상 최고의 듀오였다며 김우진이 그간 쌓아올린 것을 볼 때 그와 함께 화살을 쏜 것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김우진도 엘리슨을 누가 봐도 퍼펙트한 궁사라고 평가했으며 이어 축구에 메시 호날두가 있다면 양궁에는 엘리슨과 김우진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 말에 기자들도 웃음이 터졌고 김우진도 엘리슨에게 만족하냐고 멋쩍게 물어보자 엘리슨은 만족해했다.[9]

한편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혼성 단체 동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세계양궁협회의 공식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올림픽 시상대에 네 번 올라간 최초의 비한국인 양궁 선수라는 기록까지 달성한 것은 덤이다.[10] 개인전 결승을 마친 후에는 "메달을 따는 것도 좋지만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이뤘어요."라는 말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양궁이 종목 특성상 선수 커리어가 길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국에서 열리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 김우진 역시 LA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한 이상 LA 올림픽에서 재대결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특기할 점이 있다면 다른 선수에 비해 묵직한 시위를 쓴다는 점. 활을 쏘는 소리를 들어 보면 장력이 강한 것이 느껴진다. 그만큼 엘리슨이 시위를 당기는 힘이 남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화살의 궤적이 보다 직선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아서 바람이 부는 경기에 상대적으로 강하며 수직 탄착군이 거의 일정하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colcolor=#373a3c> 은메달 2012 런던 단체전
은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단체전
은메달 2024 파리 개인전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개인전
동메달 2024 파리 혼성 단체전
세계 선수권
금메달 2013 벨렉 단체전
금메달 2019 스헤르토겐보스 개인전
은메달 2013 벨렉 혼성 단체전
은메달 2021 양크턴 단체전
동메달 2021 양크턴 개인전
월드컵 파이널
금메달 2010 에든버러 개인전
금메달 2011 이스탄불 개인전
금메달 2014 로잔 개인전
금메달 2016 오덴세 개인전
금메달 2019 모스크바 개인전
은메달 2012 도쿄 개인전
은메달 2017 로마 개인전
은메달 2021 양크턴 개인전
동메달 2013 파리 개인전
동메달 2018 삼순 개인전
팬아메리칸 게임
금메달 2007 리우데자네이루 단체전
금메달 2011 과달라하라 개인전
금메달 2011 과달라하라 단체전
금메달 2019 리마 혼성 단체전
은메달 2015 토론토 개인전
은메달 2015 토론토 단체전
동메달 2019 리마 단체전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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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Archery
리커브 남자 세계 랭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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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빅토르 루반
(2009.5.12 - 2010.8.15)
<colbgcolor=#0054a4>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10.8.16 - 2010.9.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동현
(2010.9.10 - 2011.5.2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11.5.30 - 2011.6.18)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11.6.19 - 2011.7.1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11.7.14 - 2011.8.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11.7.14 - 2011.8.9)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11.8.10 - 2013.4.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오진혁
(2013.4.3 - 2014.6.1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우석
(2018.10.29 - 2019.6.16)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19.6.17 - 2022.5.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메테 가조즈
(2022.5.23 - 2022.6.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22.6.27 - 2022.10.2)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22.10.3 - 2022.10.3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22.10.31 - 2023.1.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우진
(2022.10.31 - 2023.1.22)
파일:미국 국기.svg 브래디 엘리슨
(2023.1.23 - 2023.2.5)
파일:브라질 국기.svg 마르쿠스 다우메이다
(2023.2.6 - )

6. 여담



[1] 슬로베니아 출신의 양궁 선수이다. [2] 이후 가조즈는 엘리슨을 이긴 여세에, 올라왔다면 강력한 경쟁자들이 되었을 한국 남자 양궁팀이 당시에 예상보다 부침을 겪고 개인전에서 조기 탈락하는 등 운도 따라 주면서 결국 튀르키예 역사상 최초로 양궁 개인 금메달 획득에 성공한다. 가조즈가 이후 2023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엘리슨처럼 근 30년 내에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단 셋 뿐인 비한국인이 된 것을 보면 가조즈의 실력 자체가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3] 심지어 무려 6:0이라는 퍼펙트 스코어로 승리했다. 이때 김제덕은 1세트 시작부터 8점으로 시작했고 총 3세트 9발 동안 10점을 3발, 9점을 4발, 8점을 2발 쏘면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4] 미국 국적의 선수가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 진출한 것은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던 빅 원덜(Victor Wunderle) 이후 24년 만이다. [5] 특히 5세트는 양 선수 모두 10/10/10을 쏠 정도로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6] 두 선수 모두 라인에 물리는 10점을 쐈으나, 김우진은 라인 안에 물렸고, 엘리슨은 라인 밖에 물렸다. 공식적인 기록은 김우진 55.8mm, 엘리슨 60.7mm. [7] 경기 후에 소감을 밝히기로는 본인이 선수로 이루고 싶은 꿈이 올림픽 개인전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였고, 꿈꿔왔던 시합이었다는 말과 함께 기뻐하는 멘트를 보이기도 했다. [8] 기자회견이 있기 전 둘이 잠시 서로에 대한 안부와 자녀 나이 등(두 사람 다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다.)을 물으며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마이크가 켜져 있어서 이 대화가 기자들에게 다 들렸다. 결국 관계자가 두 사람에게 마이크가 켜져있다고 언급해주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9] 도핑 테스트로 인해 뒤늦게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우석은 이를 전해듣고는 “두 사람이 메시와 호날두라면 난 그 뒤를 쫓아가는 음바페다.“ 라는 개그 멘트를 하여 그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이우석이 김제덕에게 "너는 뭘로 하고 싶냐"라고 물으니 김제덕은 "그러면 나는 손흥민 할래요"라고 답했다. [10] 물론 전술되어 있듯 개인전 결승에 또 진출하면서 엘리슨의 올림픽 시상대 횟수는 총 다섯 번이 되었다. [11] 참고로 파리 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결승에서 맞붙었던 김우진 역시 마찬가지로 노안이어서 92년생이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김우진보다 3세 연상인 구본길이 자기보다 형이라고 착각할 정도였고 심지어 11세 연상인 오진혁과 같이 밥먹으러 식당에 갔을때 아주머니가 계산서를 오진혁이 아닌 김우진에 내밀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