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한 유년을 보냈다. 자신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 역시 그러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투명하리만치 드러내 보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바닥에 단단히 핀을 박고 연주하는 첼로처럼, 현호는 늘 준영과 정경에게 듬직한 기둥이 되어주는 존재다. 예술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경후그룹 외손녀인 정경과 소위 ‘월드클래스’가 되어버린 준영에 비하면 ‘서령대 첼로 전공 수석 입학, 수석 졸업’ 이라는 현호의 스펙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자격지심 같은 것은 전무하다.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현호는 현호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남이 가진 것을 바라보는 대신 자신이 지금 가진 작은 행복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현호. 밝고 구김살 없는 천진한 성격 때문에 때론 단순하다는 말도 듣지만, 복잡하게 살아서 좋을 건 또 뭔가.
사랑에 있어서도 현호는 언제나 현호답다. 예술중학교로 전학 온 정경을 처음 봤을 때, 한 눈에 반했고 그 후로 쭉 기다렸다. 대학졸업 후 같은 미국 땅이긴 해도 서로 다른 주의 학교로 유학을 가며 처음으로 정경과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열 다섯 살 소년이던 날부터 지금까지 현호의 사랑은 기다림의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사랑은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다. 정경에게 쩔쩔매는 것은 정경의 배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현호가 그토록 기다려온 시간이 시작되려 한다. 꿈꾸던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역시 공부를 마친 정경과 함께 귀국하며 비로소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있게 된 것. 현호는 설렘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다. 자신은 모든 순간 온 힘을 다해 첼로를 사랑했고 모든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정경을 사랑하고 기다려왔기에, 당연히 그 사랑을 온전히 돌려받을 거라 믿어왔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커리어의 첼리스트는 이미 많았고, 정경을 사랑하는 다른 한 사람이...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귀국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의 현호는 아직 몰랐다.
송아의 베프.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 친구다. 송아가 총무였을 때 민성은 회장 (동윤은 부회장). 대학에 와서 첼로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령대에서 화학과 박사과정 중.
학부 시절 동윤과 잠깐 사귀었으나 금세 헤어졌다. 그 후 겉보기로는 성별을 초월한 절친으로 지내고 있으나 사실 아직도 동윤을 많이 좋아한다. 동윤에 대한 송아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송아에게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 송아의 애간장을 태운다. 쿨하고 털털하지만 의외로 소심하고 여린 면이 있다. 특히 사랑 앞에선. 술을 좋아하는데 결국 그 술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만다.
경후그룹 창립자인 아버지의 수행비서로 경영수업을 시작, 뛰어난 능력으로 형제들을 제치고 회사를 물려받았다.
음악을 좋아했던 딸 경선은 피아노를 쳤고, 대학에서 만난 성근과 연애 결혼했다. 문숙은 말수 적고 무뚝뚝한 성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경선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성근이 없는 집 아들이라는 것은 문숙에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녀 정경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하나뿐인 딸 경선은 어린 정경을 남겨두고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딸을 잃은 문숙은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고 아직 40대이던 사위 성근에게 파격적으로 회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경선의 사고 보상금에 사재를 더해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이 15년 전의 일.
얼마 전 쓰러졌던 이후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하나뿐인 손녀 정경은 재단 운영에 큰 열의가 있지 않고, 그렇다면 정경의 짝이 필요하다. 그룹으로부터 재단을 잘 보호하며 사업을 이어나갈 후계자.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준영이었다. 왜였을까.
재단 일을 하며 가장 큰 보람을 안겨준 1기 장학생 준영을 무척 아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준영을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문숙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단의 앞날이다. 문숙은 아직도 자신과 정경에 대한 부채감에 짓눌려있는 준영이, 준영의 그 선하고 순한 성정이 이 자리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현호는? 문숙은 고개를 젓는다. 경후그룹에 근무하던 제 아버지의 명예퇴직을 막아주겠다 했을 때 그러시지 말라던 게 현호다. 어린 나이의 치기였을 수도 있지만, 지난 세월 지켜본 현호는 딱 그런 아이다. 밝고 건강한 천성으로 정경의 그늘을 밝혀줄 수 있는 아이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룹으로부터 재단을 지켜내야하는 이 자리에는 맞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재능있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어린 연주자들을 지원하고 밥 사주는 일은 열심히 하려 한다. 언젠가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녀와 먹었던 밥 한 끼를 추억할 것이다.
문숙의 사위, 정경의 아버지. 세상을 떠난 아내와는 캠퍼스커플이었다. 워낙도 무뚝뚝한 남자였지만 아내가 죽은 후 말수가 더 적어졌다. 없는 집안에서 난 ‘개천의 용’. 우연히 경선을 만나 재벌가의 사위가 되었지만 능력은 출중했고, 문숙의 형제들을 제치고 그룹을 물려받은 지금도 경영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계열사를 하나씩 운영하는 문숙 형제들의 견제 속에서 그룹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 그런 그에게 문화재단은 아무리 장모의 열망이자 아내를 기리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돈을 쏟아붓기만 하는 애매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재단 설립 때 입사한 실무진 중 최고참. 준영이 어릴 때부터 봐와서 사석에선 누나라고 부르는 사이. 그러나 누나보단 이모 같은 존재에 가깝다. 오랫동안 준영의 여러 상황들을 지켜봐왔기에 준영의 마음을 잘 알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도 대표까지 했던 피겨 스케이팅 선출(선수 출신). 그 시절, 대회 곡을 고르려 듣던 클래식음악이 큰 위안이 되었다. 본인이 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매일 노력하고 연습하는 이들, 특히 몸을 쓰며 성실하게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재능과 현실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어린 음악가들을 안쓰럽게 여긴다.
경후그룹 계열사인 경후카드 VIP마케팅팀에 있다가 재단으로 지원해 넘어왔다. 클래식을 원래 좋아했지만 그것보다도 나중에 홍보대행사 같은 회사를 차려 VIP대상 행사 등의 사업을 하기 위해 음악계에 인맥을 다져놓으려는 계획이었다. 4,5년은 일하고 나가려 했는데 이내 비영리재단의 한계에 답답해하며 영인과 계속 각을 세운다.
3년 전 신입으로 입사했다. 해나의 사수. 언론홍보를 주로 담당한다. 남자아이돌 덕후인데 ‘파는’ 아이돌이 자주 바뀐다. 보는 것은 오로지 ‘얼굴’. 준영의 팬들이 승지민으로 옮겨갈 때도 꿋꿋이 준영을 계속 팬질하는 것도 준영이 (아이돌에 비할 외모는 아니지만) 클래식 판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훈남이라 그렇다. 클래식을 좋아해 입사한 건 아니고 여기저기 원서 넣다가 덜컥 합격했다. 당돌하고 할 말 다 하고,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한다. 성재와 자주 말로 치고 받는다.
송아의 과 동기. 바이올린 전공. 확 튀게 예쁘고 당돌하다.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잠시 살아서 영어를 잘하는 편. 서령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엄마(졸업 후엔 가정주부) 덕분에 5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레슨을 받기 시작해 한국예중-예고에 서령대까지 엘리트코스를 밟아왔지만, 실기 실력이 늘 중간이라는 콤플렉스가 있다. 더 잘했으면 그냥 바이올린을 계속 할 것이고, 더 못했으면 그만두기라도 할텐데, 하필 이도저도 아닌 중간 성적이라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그만두는 걸 상상하기도 쉽진 않다. 바이올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기도 하고.
가을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서령대 바이올린 교수. 수십년간 길러낸 제자들이 국내 음악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큰’ 선생님이다. 정경도 서령대 시절 정희의 제자였다. 퇴임을 목전에 둔 지금은 국내 콩쿠르를 휩쓰는 영재 지원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령대 음대 기악과 피아노전공 교수.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경후문화재단과 연이 닿아 중학생이던 준영을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준영이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할 때까지 가르친, 준영의 거의 유일한 선생님이다. 태진과 공부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준영이 콩쿠르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준영의 재능을 ‘콩쿠르 맞춤형’ 연주로 이끌어낸 그의 탁월한 지도법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