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8년 이전[1]
1. 개요
皇金紫光祿大夫ㆍ故衛尉卿ㆍ帶方郡王義慈曾孫, 皇光祿大夫ㆍ故太常卿ㆍ襲帶方郡王隆之孫, 皇朝請大夫ㆍ故渭州刺史德璋之女也.
[부여태비는] 금자광록대부(皇金紫光祿大夫) 고(故) 위위경(衛尉卿)ㆍ대방군왕(帶方郡王) 의자의 증손이며, 광록대부(光祿大夫) 고(故) 태상경(太常卿) 습(襲) 대방군왕(帶方郡王) 융의 손녀이며, 조청대부(朝請大夫) 고(故) 위주자사(渭州刺史)를 지낸 덕장(德璋)의 딸이다.
부여태비 묘지명 中, 부여덕장에 대한 유일한 언급.
[부여태비는] 금자광록대부(皇金紫光祿大夫) 고(故) 위위경(衛尉卿)ㆍ대방군왕(帶方郡王) 의자의 증손이며, 광록대부(光祿大夫) 고(故) 태상경(太常卿) 습(襲) 대방군왕(帶方郡王) 융의 손녀이며, 조청대부(朝請大夫) 고(故) 위주자사(渭州刺史)를 지낸 덕장(德璋)의 딸이다.
부여태비 묘지명 中, 부여덕장에 대한 유일한 언급.
백제의 인물. 의자왕의 손자이자 부여융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등 문헌이 아니라 2004년 부여태비 묘지명이 확인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부여태비의 묘지명에서만 언급되는 인물로, 당나라에서 황조청대부와 위주자사(渭州刺史)[3]를 지냈다고 한다.
2. 가족관계
3. 기타
- 부여덕장의 두 딸은 각각 길거[4], 당나라 황족 이옹과 혼인시켰다. 이웅과 부여태비의 결혼은 묘지명상 711년으로 확인되었지만, 부여태비의 언니와 길온의 결혼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 682년 아버지 부여융이 사망할 당시에도 다른 형제인 부여문선[5]과 함께 생존해 있었는데도 웅진도독 대방군왕의 자리는 부여융의 손자인 부여경에게 돌아갔다. 이를 볼 때, 부여문선과 부여덕장은 부여융의 적자가 아니었던 모양.
- 토번과 인접한 지역인 위주에서 관직을 지낸 점을 볼 때 흑치상지, 부여준처럼 대토번 전선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