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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6:57:17

보문사

파일:보문종 로고.png 대한불교보문종
보문사
普門寺 | Bomunsa
<colbgcolor=#ff8c00><colcolor=#ffffff> 창건 1115년
소속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주지 스님 인태
위치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20 ( 보문동3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보문사 전경.jpg
<colbgcolor=#ff8c00> 보문사 전경[1]
BBS에서 제작한 보문사와 보문종 다큐멘터리 영상

1. 개요2. 상세3. 문화재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보문종의 총본산이다.

2. 상세

고려 예종 10년(1115년) 담진(曇眞) 국사가 비구니 수련장으로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비구니, 즉 여승들을 위한 사찰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보문사가 위치한 곳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탑골승방'이라고 불리며 비구니들이 거처하던 도성 밖 4대 비구니 사찰[2] 가운데 하나였다.[3]

2017년에 보문사 극락보전을 중수할 때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건륭 12년(조선 영조 23년, 1747년) 처음 중건하고 도광 4년( 순조 24년, 1824년)과 동치 4년( 고종 2년, 1865년)에 더 중수했다. 동치 4년 상량문에는 조선 왕실의 시주를 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후궁 상궁 등 궁인에서부터 사대부, 평민에 이르기까지 불사에 동참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

보문사에는 왕실에서 하사한 연(輦)수식과 인로왕번(引路王幡)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한 석가불도, 신중도, 지장시왕도 등 서울시 유형문화재, 조선 전기에 제작된 묘법연화경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유·무형의 문화재들이 여럿 있다.

권상로(權相老)가 저술한 《보문사일신건축기(普門寺一新建築記)》는 보문사를 옛부터 비구니들이 상주하며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번성을 기원하는 비구니 사찰로 기록했다. 보문사일신건축기에 따르면 1826년 승려 수봉 법총(秀峰法聰)이 만세루를 신축하고 1842년 승려 영전(永典)이 만세루를 수리하였으며, 1827년 승려 정운(正雲)이 좌우 승당을 짓고 1872년 금훈(錦勳)스님이 좌우 승당을 중수하였다.

1972년 비구니 긍탄이 보문사를 본산으로 하여 대한불교보문종을 창종했다. 초대 종정 긍탄스님 이래 2008년 1월 현재 11대 혜일(慧日, 1919- ) 스님이 종정으로서 종단을 이끌고 법종(法綜) 스님이 총무원장으로서 일한다. 2024년 현재 보문사의 주지 스님은 인태 스님이다.

3. 문화재

파일:보문종 로고.png 보문사 문화재 목록
<rowcolor=#fff> 분류 번호 이름 수량 소재지 비고
보물 1164-2호 묘법연화경 권3~4, 5~7(2014)
(妙法蓮華經 卷三~四, 五~七(2014))
5권 2책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20
(보문동3가, 보문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98호 보문사 석가불도
(普門寺 釋迦佛圖)
1점
99호 보문사 신중도
(普門寺 神衆圖)
1점
100호 보문사 지장시왕도
(普門寺 地藏十王圖)
1점

[1] 사진 출처 - 성북역사아카이브. [2] 나머지 3곳은 옥수동의 두뭇개승방(미타사), 석관동의 돌곶이승방(청량사) 그리고 숭인동의 새절승방(청룡사). 청룡사는 경혜공주(시누이)와 정순왕후(올케)가 출가한 사찰이다. [3] 바로 옆에 담장을 맞대고 조계종 소속 미타사가 있는데 서로 탑골 승방을 자처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근처의 비구니들이 머무는 암자들을 모조리 탑골승방이라 부른 듯하다. 넓게 보면 수백 미터 떨어진 청룡사까지 '탑골승방'이라 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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