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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2:17:21

벽곡단


1. 도가에서 단식수련시 사용하는 식량2.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벽곡단

1. 도가에서 단식수련시 사용하는 식량

辟穀丹

도가에서 벽곡수련을 할 때 몸을 보하기 위해서 송화가루나 솔잎, 콩, 당근, 결명자, 둥굴레, 대추, , 등을 말려서 가루로 빻은 것을 꿀에 개어서 둥글게 뭉쳐서 만든 식량.[1] 옛날 중국식 에너지바라고 할 수 있다. 정을 흐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육류나 생선은 사용하지 않는다.[2]

환약이라는 이름답게 동글동글한 구슬 모양이며, 크기는 정로환과 비슷하다. 벽곡단을 1~2일에 1번 정도 소량을 물과 함께 먹는다. 견과류와 꿀이 포함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양에 비해 칼로리가 높고, 단식 중에 부족해지는 각종 미량영양소를 공급하여 신체를 그나마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도가에서만이 아니라 불가에서도 단식수행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2.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벽곡단

기본적으로는 1.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본래의 벽곡단은 일반적인 식량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벽곡수련(단식수련) 기간중에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일시적인 대체식품이지만, 소설에 따라서는 어째 먹기만 하면 배고프지 않고 몸 상태가 오히려 더 좋아진다거나, 영약을 재료로 써서 먹을수록 강해진다거나,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무공을 수련하면서도 체중감소가 없다거나 하는 등 신비한 힘을 가진 아이템 처럼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예 무공 수련 기간이나 긴 여정 기간동안 요리를 하지 않고 벽곡단을 가지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작품도 드물지 않은데, 이 정도면 렘바스와 같은 일종의 신비한 만능 휴대 보존식량으로 등장하는 수준이다. 물론 무협소설 역시 사변소설의 한 갈래라 할 수 있으므로, 그 작품 내적으로 벽곡단이 그런 특수한 능력을 가진 먹거리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3]

이런 벽곡단 만능주의가 극에 달한 작품으로 2001년작인 <태극검제>에 등장하는 '유회표 벽곡단'이 있다. 이것은 솔잎가루와 생 쌀가루만으로 만든 것으로 현실의 역사에서 만들어지던 벽곡단에도 한참 못 미치는 빈약한 것인데 주인공 청수는 젖 뗀 뒤로 12년동안 이것만 먹고 살았지만 영양실조를 겪지 않고 잘 성장했다. 이는 <태극검제> 자체가 단순한 벽곡단 만능주의 뿐 아니라 소위 ' 판협지' 라고 불리는 2000년대 3세대 무협의 조류에서 '내공 만능주의' 라는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작품의 주제를 보여주는 장치의 일부이다. 해당 작품에서 내공은 그 사람의 신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초월적인 힘이라서 정순한 내공을 기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생존은 물론 성장까지 가능하다는 설정인 것. (다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성장한 것에 비하면 체격이 왜소하다고는 하지만 화기나 탁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것만을 먹었기 때문에 무공의 기반인 내공은 오히려 더 정순하고 강력해진다고 한다.) 사실 해당 작품에서 청수는 12년간 벽곡단만 먹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 후에는 15년간 아예 물만 마시면서 내공수련만으로 살아남았다. 사조의 음모로 15년간의 폐관수련을 명령받으면서 썩은 벽곡단을 받게 되자, 스승에게 배운 것도 뛰어넘어 아예 식사마저도 내공수련으로 대체해 버린 것. 결국 해당 작품 특유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므로 현실성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태극검제 자체가 위에서 이야기한 내공 만능주의 이외에도 일종의 '기본기 중심주의', 즉 신공절학을 익혀 빨리 강해지기보다는 삼재검법과 같은 기본적인 무공이라도 한없는 노력으로 철저하고 완벽하게 익힘으로써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주제를 통해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물론 위에서 예로 든 <태극검제>처럼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폐관수련이 등장하는 무협지라면 길게는 수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벽곡단만 먹으며 버틴다는 묘사는 드물지 않게 나온다. 현대로 치면 에너지바와 물만 먹으며 몇 년을 산다는 것보다 더 극단적인 식생활인데, 창작물은 창작물이고 무협지는 리얼리즘적인 장르도 아니니 장르적 허용이려니 하자.

비슷한 것으로 닌자들이 사용하던 병량환이 있다. 세부 재료는 다르나 벽곡단과 마찬가지로 곡식가루를 둥글게 빚어 섭취했다. 주 재료는 콩가루, 메밀가루, 찹쌀가루이며 여기에 갈은 깨, 가츠오부시, 꿀 등을 첨가하며 탁주와 물을 넣고 반죽하고 찐 뒤 반나절 정도를 말려서 사용했다고 한다. 섭취방법은 재료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큰것은 한끼에 두알, 작은것은 한끼에 열알정도를 먹었다고 한다.

넷핵에서 사무라이로 플레이할 때 food ration이 gunyoki(환약의 일본식 발음)로 바뀌어 나오는데, 게임 내 기능은 영락없는 병량환이다.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중에 ㅂ으로 시작되는 세 글자라서 햇갈린 것인지 벽력탄과 햇갈린 양반도 있다.
[1] 재료로 보나 효능으로 보나 분명히 식량이지만 도가에서는 약으로 봤다. 단식 수행하며 먹는 물건이다보니 식량이라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벽곡단도 분명 일종의 식량이고 사실 전근대인들도 저게 식량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어보이지만 '포만감이 들 때까지 조리된 음식을 먹는 행위'는 하지 않고 몸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소위 벽곡수련이라 하는 수련법의 목적이었다 보면 적절할 것 같다. [3] "현실의 벽곡단은 어찌저찌한 물건인데 벽곡단만 먹고 오랜 기간 지내면서 격렬한 활동을 하는게 말이 되냐?" 식으로 트집을 잡는 이가 있으면, "그러면 칼을 휘둘렀는데 검기가 나가고, 손을 뻗으니 장풍이 나가고, 풀잎 밟고 퓽퓽 뛰어다니는 거는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무협지를 보고 있냐? 꼬우면 무협지 보지 마라" 고 대답해주면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