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원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석진
성명 | 박석진(朴錫震) |
생몰 | 1874년 4월 29일 ~ 1927년 2월 19일 |
출생지 |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대흥리 |
사망지 | 함경남도 리원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박석진은 1874년 4월 29일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초 서울 천도교 본사의 연락을 받고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해 3월 10일 리원군 리원읍 장날에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였으며, 김준태(金濬泰) 등과 함께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을 설치하여 군내 각 지방에 독립선언서를 살포했다. 또한 3월 20일에 다시 시위를 벌이려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6월 2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리원군에서 포교 활동에 전념하다가 1927년 2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박석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안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석진
성명 | 박석진(朴錫鎭) |
생몰 | 1896년 12월 13일 ~ 1934년 6월 21일 |
출생지 |
경기도 안산군 성곶면 일리 (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
사망지 | 경기도 수원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박석진은 1896년 12월 13일 경기도 안산군 성곶면 일리[1]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1일 수원군 반월면 시장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500~6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14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수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4년 6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석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현 안산시 상록구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