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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3:00:41

박도현(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朴道賢
자(字) 미상(未詳)
본관 미상(未詳)
출생 1865년 2월 5일
전라북도 익산 춘포면
사망 1919년 4월 4일 (향년 54세)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생애와 주요 활동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 박도현(朴道玄)은 전라북도 익산(益山) 춘포면(春浦面) 동화리(同化里) 출신이다.

1919년 3월 이래로 전국 각지에서 발발한 독립만세 운동은 익산의 이리군(裡里郡) 오산면(五山面)까지도 전파되었다. 박도현은 당시 문용기(文鏞祺/文鏞璂/文容基), 김치옥(金致玉), 박성엽(朴成燁), 장경춘(張京春) 등과 4월 4일에 개최될 이리 장날을 통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한 뒤 밤낮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운동의 준비에 열성을 다하였다.

4월 4일, 박도현을 비롯한 다수의 기독교 인사들, 그리고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된 만세시위는 점차 모여드는 군중들과 함께 지속되었다. 그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독립만세 행진을 이끌었다.

일본 경찰과 헌병이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시위대는 천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로 급증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수백의 소방대원과 농장원들을 동원하여 무차별 총격과 무기 사용으로 그들을 진압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박도현 및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서공유(徐公有/서정만徐廷萬), 이충규(李忠圭) 등이 순국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박도현에게는 199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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