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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9:39

박노수(독립운동가)

성명 박노수(朴魯洙)
생몰 1907년 3월 14일 ~ 1986년 6월 15일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촌동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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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경찰 총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노수는 1907년 3월 14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4년에서 1925년 사이에 이종율(李鍾律), 조치기(趙致基) 등과 함께 사회과학연구단체인 공학회(共學會)를 조직했지만 일본 경찰에 의해 해산당하자 청년운동 단체인 학생구락부(學生俱樂部), 경성청년회(京城靑年會) 등에 가입해 민족운동을 펼쳤다. 1926년 학생운동기관지인 학거사(學車社)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각지를 순회하며 활동했고, 그해 여름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서 군자금 모집과 밀고자의 처단을 목적으로 요원을 파견하자 그를 도와 활동했다.

그러다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귀향한 박노수는 1927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문부에 입학한 후 전진한, 함상훈(咸尙勳), 이선근(李瑄根) 등과 함께 신간회 동경지회의 설립에 참가해 정치문화부에 소속되었으며, 1929년 서울에서 신간회의 분규를 수습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어 수개월간 조사를 받았다. 이후 만주, 일본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자 고향으로 돌아갔고, 고향에서도 경찰로부터 여러 차례 구금과 조사를 받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후 1948년에 건국한 대한민국 경찰로 발탁된 박노수는 1964년 총경으로 진급하여 1964년 12월 31일부터 1967년 10월 28일까지 서울동대문경찰서 서장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에는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86년 6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노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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