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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26 14:48:38

박규명

성명 박규명(朴奎明)
본관 순천 박씨
생몰 1898년 10월 4일 ~ 1937년 1월 16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태산면 원봉동[1]
사망지 중국 상하이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규명은 1898년 10월 4일 평안북도 선천군 태산면 원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2월 선천군에서 박인항, 엄승도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을 조직했으며, 그해 2월 14일에는 일제의 부역배 노릇을 하고 있던 태산면장 김병준(金炳駿)과 서기 김은기(金殷基)를 살해하고 박인혁(朴仁赫)으로부터 모금한 군자금 2천여 원을 받아 엄승도를 통하여 대한독립단에 전달했다.

이후 일제 경찰의 수사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1923년 4월 12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925년 6월에는 상하이에서 정위단(正衛團)을 조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1926년 1월에는 정위단이 확대 개편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담했다. 그해 9월에는 일본영사관에 폭탄 2개를 투척해 건물 일부를 파괴했으며, 1931년 1월에 흥사단 원동지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했고, 그해 3월 29일에는 민족의 자활, 자위를 목표로 하는 공평사(公平社)를 창립하여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1931년 4월에 상하이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된 그는 신의주로 압송되었다가 1932년 1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는 다시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일제가 중국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날로 강성해지자 조국의 운명을 비관하고 1937년 1월 16일에 목을 매 자살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규명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만옥· 박인각· 박인항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