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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4:28:52

바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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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a
1. 개요2. 건조 당시3. 제원4. 침몰5. 침몰 이유6. 발견과 보존7. 미디어에서의 모습

1. 개요

스웨덴 제국 해군의 3층갑판 갤리온 군함이자 침몰선. 침몰선들 중 목재 군함이 가장 잘 온전하게 보존된 특이한 케이스다. 침몰한 상황을 보면 크게 파손될 이유가 적었다.

2. 건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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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당시의 바사 호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스웨덴 바사 호 박물관 소장.
17세기 초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이자 전 스웨덴 국왕 지그문트 3세[1]와의 스웨덴 왕위 계승 분쟁에서 스웨덴의 해군력을 과시하고 발트해 제해권을 차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1627년 올리바 해전에서 신생 폴란드-리투아니아 해군에게 스웨덴 제국 해군이 패배하자 이에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스웨덴 제국의 강성함과 왕실의 위엄 그리고 발트해의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갤리온형 전함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리하여 흐로테라는 상인을 통해 독일 출신 하인리히와 네덜란드 출신 헨드리크를 데려와 함께 바사 호를 건조하기로 하고, 하인리히와는 바사 호의 건조 이후, 4년간 스웨덴 해군에서 유지보수를 하고 신예함 4척 건조에 참여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구스타브 국왕도 해군력 강화 정책을 펼치면서 군함 건조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기에 바사 호의 설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1626년에 첫 번째 함을 건조, 1627년 진수하여 1628년 스웨덴 해군이 인수했는데 이때 헨드리크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함명을 자신의 왕조 이름을 따서 바사(Vasa)라고 지었다.

3. 제원

다른 특징으로 당대 유래없는 2층 갑판 포열을 가진 최상의 1급 전함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함포를 2열로 배치한 최대의 중무장 전함이었다. 배의 전면에는 구스타브 아돌프를 상징하는 황금 사자상을 새겨놓았으며, 선체에는 황금으로 도금한 영웅과 병사 조각상이 천여 개나 새겨진 아주 호화로운 배였다.

4. 침몰

1628년 8월 10일, 스톡홀름 항구에서 수많은 인파들과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로 첫 항해에 나섰다. 바사 호는 엄청난 환호와 함께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가 연안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바사 호는 첫 항해를 구경하러 온 이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는 듯 한쪽 현의 함포를 일제사격을 하는 장관을 보여줬다.

그런데 갑작스런 돌풍과 대포의 반동이 합쳐져 배가 좌현으로 기울더니 전복되어 침몰했다. 그것도 출항한 지 30분 만에. 수천여명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30여명이 익사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통탄해하며 '대포는 건져 올려서 녹여 쓰고, 돛대는 쳐서 없애 나로 하여금 이 배를 잊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포들은 모두 건져내었다. 북방의 사자에게 남긴 몇 안 되는 상처이자 자업자득인 셈.

5. 침몰 이유

바사 호는 당시의 선박 제조술이 총동원된 걸작품이었다. 하지만 선체 자체는 잘 만들어진 반면 하갑판과 상갑판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데다, 대포를 너무 많이 탑재했다. 장식물도 너무 많았고, 구스타브 아돌프 2세가 갑작스럽게 용골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설계가 수정되었다. 이 때문에 처음과 달리 제대로 설계가 되지 않아 윗쪽은 무겁고 아랫쪽은 가벼워, 무게중심이 높아져 버렸다.[2] 다시 말해 무게가 한 쪽으로 쏠릴 때 선체가 쉽게 기울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공들은 이런 결함을 보완하고자 함선을 건조하며 균형을 맞추는 용도로 하갑판에 돌 수 톤을 깔았는데, 이마저도 상갑판과 하갑판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심지어 좌현과 우현을 각각 스웨덴 작업자와 네덜란드 작업자가 나눠서 건조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제적으로 통일된 도량형이 없어 나라마다 도량형이 천차만별이었던지라 양국 작업자가 서로 다른 도량형에 맞춰 작업한 결과로 인해 선박의 모양이 비대칭이 되었고 더욱 침몰하기 쉬운 조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대포 32문을 장착할 때 처음에는 12파운드짜리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구스타브 아돌프 2세는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갑판마저도 24파운드 대포로 무장하라고 명령했다. 상대적으로 협소한 상갑판에 무거운 대포가 가득차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왔는데, 이것이 바사 호 침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군사법원이 그 누구에게도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고 바사 호 침몰사건을 종결한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한마디로 이 배의 설계에 간섭을 한 구스타브 2세의 잘못....결국 수많은 재화만을 탕진한 채 아무리 위대한 군주이자 군사천재라 할지라도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는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만을 남기고 말았다.

6. 발견과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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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해군 소속 해양학자로 일했던 고고학자 안드레스 프란첸(Anders Franzén 1918~1993)이 발견하여 1956년 8월에 선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1961년에 완전히 발굴이 된다. 보존을 위해 배는 수십 년간 염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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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배는 복원이 되었고, 과거의 비극적이면서도 황당했던 기억과 무관하게 스웨덴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또한 당시의 선박 역사를 아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7. 미디어에서의 모습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DVD 촬영이 2001년에 이 선박이 전시된 박물관 홀에서 진행되었다.
최후반 에피소드에서 진수식 날 바로 침몰한다. 주인공 안토니오 꼬레아는 조선소를 사들이기로 결정하고 리슐리외 추기경을 찾아가 연안용 갤리선을 구입하도록 설득했는데, 리슐리외는 겉으로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하고 뒤로는 스웨덴의 바사호급 갤리온을 사들이기로 한다. 즉, 안토니오 꼬레아를 미끼로 삼아 엿을 먹인 것. 그러나 안토니오 꼬레아는 과거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과 친분이 있었고, 그를 통해 바사 호의 설계도를 손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선박 제작자에게 이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분석을 요청해서 바사 호의 약점을 찾아낸[3] 안토니오 꼬레아는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바사 호에게는 약점이 있다며 알고 싶다면 진수식 때 제자리 선회를 하도록 충동질한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안토니오 꼬레아의 말대로 스웨덴 측에 이 일을 요청하고 스웨덴 측은 별로 어렵지 않다며 승락한다. 그러나 진수식 당일, 제자리 선회를 하다 바사 호는 역사대로 침몰하게 되고, 결국 리슐리외 추기경은 안토니오 꼬레아의 조선소에서 당장 쓰기 위한 갤리선을 다수 주문하게 된다.
플라잉 더치맨(캐리비안의 해적)의 모델로 지목받는다.
바아사[4]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일섭에서는 과거에 유료 패키지 보상으로 풀렸으며, 국내에선 2015년 1월에 최초의 명예 시장 이벤트 보상템으로만 풀린 희귀한 배다. 희귀한 선박재질인 스웨덴군 공용 재질이 기본이라 소장 가치가 있으나, 성능은 대형선이면서도 선측포 슬롯이 4칸이라 포실 추가 옵션이 없으면 화력이 떨어져서 구하기 어려운 예능용 선박이다.

따라서 스웨덴의 군선이 탐난다면 바아사의 자매함이고 상시 건조가 가능한 애플릿을 구하는 게 낫다. 애플릿은 선측포 슬롯이 5칸이라 바아사보다 기본 화력 기대치가 높으며, 건조에 필요한 선체인 명품 2층갑판형 대형선체는 북극에서 npc가 랜덤 드랍/가나돌 보상 랜덤 획득/북서항로 해역조사 완료 보상으로 1회로 획득 루트가 다양하다. 또한 커스텀 조선 패치 전에는 스웨덴군 공용 재질로 건조가 가능했으나, 패치 후 선체의 재질인 너도밤나무나 기본 재질 삼나무 등을 골라야 한다. 제독 중 하나인 로잘리아 폴헴 연대기에 바사 호 침몰사건이 중요 에피소드로 나온다. 건조 과정에서 구스타프 2세가 지나치게 간섭을 했고 이 때문에 진수식에서 침몰하는 안습한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 바사호의 후계함으로 주인공 로잘리아 폴헴의 조선소에서 건조한 배가 최초의 전열함이라는 것이 연대기의 주 내용이다.
2022년 3월 15일 패치로 추가된 게임 내 최강의 함선인 전함의 모델링이 바사 호이다. 유닛의 역사적 배경 설명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전열함이지만, 모델링은 정작 전대의 갤리온선이었던 바사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와는 별개로 유닛 성능은 함선 중 압도적인 최강으로 전열함의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준다.


[1] 구스타브 2세의 사촌 형으로 1592년 구스타브 2세의 둘째 큰아버지가 되는 요한 3세의 뒤를 이어 스웨덴 왕위를 계승했으나 루터파 국가인 스웨덴에서 가톨릭 신자라는 불리함과 국왕 부재시 권한을 두고 구스타브 2세의 아버지인 칼 공작(나중에 스웨덴 국왕 칼 9세)과 충돌했다가 패배하여 1599년 스웨덴 왕위에서 폐위당했다. 폴란드 왕위는 모계 혈통에 힘입어 1587년 선출되었고 스웨덴 왕위보다 더 빨리 승계한 상황이었다. [2] 간과하지 못할 문제가 아닌 것이,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도 이런 이유로 군함이 전복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설계가 잘못된 항공모함 류조 함이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3] 겉보기 회전점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4] 가장 기초적인 소형 캐러벨선의 이름이 바사(Barca)여서 중복을 피하기 위햇서인 듯하다. 바사는 원래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발사로 나온 배이다. 사실 바아사는 바사로, 바사는 바르카(오리진 번역)로 번역하는 편이 좋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