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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11:30:02

바브라크 카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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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제3대 혁명평의회의장
바브라크 카르말
ببرک کارمل
Babrak Karmal
파일:바브라크 카르말 이미지 1.jpg
<colbgcolor=#cd0000><colcolor=#febe00> 출생 1929년 1월 6일
아프가니스탄 왕국 카불 카마리
사망 1996년 12월 3일 (향년 67세)
러시아 모스크바
국적 [[틀:깃발|]][[틀:깃발|]][[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
부족 파슈툰족 혹은 타지크족[1]
직업 경제학자, 독일어 통역사, 정치인
학력 카불 대학 법학, 정치학
배우자 불명
자녀 불명
종교 무종교 ( 무신론)
정당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경력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혁명평의회의장(1979 ~ 1986)
1. 개요2. 생애
2.1. 의장 재임기간(1979 ~ 1986)2.2. 최후
3. 평가

[clearfix]

1. 개요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의 제3대 혁명평의회의장.

2. 생애

카르말은 1929년 아프가니스탄 왕국 카불 카마리에서 태어났다. 카르말의 아버지는 무하마드 후세인으로 왕국 군대의 중장이자, 팍티야주와 헤라트주의 주지사를 역임한 적이 있는 카불의 부자였으며, 카르말의 원래 이름은 "술탄 후세인(Sultan Hussein)"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이후 이름을 "바브라크 카르말"로 바꿨으며, 이를 본 부친 후세인은 카르말과 의절했다고 한다.

다만 카르말의 어느 부족 출신이었는지 불분명했는데, 파슈툰족이라는 말이 있고, 타지크족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카르말 본인은 파슈툰족이자 타지크족이라고 주장했다.[2]

1948년 독일어 학교 네자트 고등학교에서 졸업한 후 카불 대학에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1953년 학생회에서 좌파 지지 집회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1956년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사면한 후 1957년 영어와 독일어 통역사로 일하다가 아프간군에 들어갔다. 1960년 카불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1961년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교육부 직원으로 일했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공화국 계획부에서 경제학자로 일했다.

아프가니스탄 인민 민주당의 지도자 중 한명인 미르 아크바르 카이바르에게 마르크스주의를 배웠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 활발하게 최소 2개의 아프가니스탄 마르크스주의 조직들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했다.

1978년 4월 17일 스승 카이바르가 다우드 칸의 비밀요원에게 죽자, 1978년 4월 30일 쿠데타 당시 카르말은 타라키와 아민과 함께 참여해서 다우드 칸을 죽이면서 카이바르의 복수를 했다.

2.1. 의장 재임기간(1979 ~ 1986)

1979년 소련군에 의해 하피줄라 아민이 죽고 나서 의장이 되었다. 다만 아민 못지 않게 "강압적인 공산화, 세속화 정책"을 계속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적법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AP와의 모스크바 인터뷰
1980년 11월 7일 카르말이 모스크바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 주둔에 대해서 미국 뉴스통신사 AP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소련 측의 의향에 맞게 서류의 글을 그대로 읽으면서 인터뷰에 대답하고 있어서 평이 좋지 않았다.

사실 카르말 정권 내내 실권자들은 카르말이 아닌 카르말 옆에 있는 소련인 고문들이었는데, 카르말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고문들의 동의를 받아야 해서, "소련의 꼭두각시가 아니냐"는 평을 아프간인들과 서방 측으로부터 들었다.
"소련 동지들은 나를 무한히 사랑하며, 신변의 안전을 위해 나의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카르말 정권 당시 카르말의 말 #
소련인 고문들에 대해 불만이 있었는지, 카르말은 정권 당시 이렇게 말했다.

1986년 3월 카르말이 소련을 방문할 때 소련이 카르말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으면서 "카르말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통치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소련 측 의사가 카르말은 "건강하다"고 밝혔다. 카르말은 의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고 카불에 돌아갔다. 이후 카르말은 카불에 방문한 소련 국가보안위원장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에게 "자신은 무슬림 신앙에 빗대어 소련에 대해 영원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정권을 지지해주길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모하마드 나지불라가 인민민주당에서 지지를 받기 시작하자, 인민민주당 출신이 아닌 하지 모하마드 참카니에게 의장 지위를 물려주고 모스크바로 망명했다.

1991년 나지불라가 정권 내 카르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카르말을 카불에 초대했고, 이후 카르말은 카불에서 지내다가, 나지불라 정권이 무너진 후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발흐 주의 국경 마을 하이라탄에서 거주하면서 정권 시절 동료들을 통해 압둘 라시드 도스툼의 아프가니스탄 국민이슬람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카르말 본인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2.2. 최후

1992년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6년 12월 3일 모스크바 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3. 평가

"카르말은 비합법적인 통치 기간 동안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질렀다... 알라는 그에게 여러 종류의 고난과 고통을 가했다. 결국 그는 그의 월급쟁이인 러시아인들의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1996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집권한 탈레반의 평가. #[3]
카르말 정권 내내 카르말은 비합법적인 절차로 집권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고, 1996년 카르말 사망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집권한 탈레반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후 월급쟁이 러시아인들의 병원에서 암으로 죽었다"고 평가했다.


[1] 파슈툰족인지 타지크족인지 확실하지 않다. [2] 다만 이 불분명한 출신이 나중에 카르말의 정치에 치명타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소련이 나중에 카르말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때 이유가 "파슈툰족 출신이 아니라서"였다. [3] 다만 탈레반도 카르말 못지 않게 온갖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