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민치영(閔致泳) |
자 | 사필(士弼) |
본관 | 여흥 민씨[1] |
출생 | 1892년[2] 6월 23일 |
황해도
평산도호부 화천면 상리 (현 황해북도 평산군 청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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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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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민치영은 1892년 6월 21일 황해도 평산도호부 화천면 상리(현 황해북도 평산군 청수리)에서 아버지 민승현(閔昇顯, 1858년생)과 어머니 한양 조씨(1861년생)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20년 음력 7월 경 황해도 평산군에서 독립주비단(獨立籌備團)에 가입해 단원으로 활동했고, 1920년 음력 10월 4일 밤 서의배(徐義培), 조창선(趙昌善)과 함께 평산군 세곡면 군동리에 거주하는 양재성(梁在星)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후 1921년 12월 2일 오전 7시경 평산군 세곡면 수동리에 거주하는 이만석(李萬石)으로부터 군자금을 거두려다가 그곳에 미리 매복해 있던 순사 4명과 격투를 벌이다 체포되었다.
1923년 1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및 살인, 사체유기 손괴, 주거침입, 강도, 강도 미수, 강도상인, 공무집행방해, 살인미수, 총포화약취체령 시행 규칙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지만 같은 해 5월 10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되어 #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민치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