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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 រដ្ឋាភិបាលជាតិនៃកម្ពុជា រដ្ឋាភិបាលចម្រុះនៃកម្ពុជាប្រជាធិបតេយ្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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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1982년 6월 22일 ~ 1991년 10월 23일 | |||
국가 | 영광스러운 4월 17일 | ||
수도 |
프놈펜(명목) 언롱웽(사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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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크메르어 | ||
정치체제 | 사회주의(명목) | ||
역사 |
• 건국: 1982년 6월 22일 • 멸망: 1993년 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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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캄보디아-베트남 전쟁으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하며 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붕괴되자 푼신펙, 민주 캄푸치아당,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KPNLF) 등 3개 정파가 세운 망명정부다. 존속 기간 대부분은 캄보디아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다.2. 역사
1978년 12월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전면 침공하여 이듬해 1월 캄보디아 전역을 점령하고 민주 캄푸치아 정권을 전복하여 괴뢰국인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와 베트남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소련 등 일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면 아무도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다.한편 민주 캄푸치아와 밀월 관계이던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하면서까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캄보디아 내부의 반베트남 게릴라를 지원하여 베트남을 괴롭히기로 마음먹었다. 중국의 실권자 덩샤오핑은 대표적인 반베트남 캄보디아인 세력의 지도자이자 옛 국왕인 노로돔 시아누크에게 접근해 크메르 루주와 연합할 것을 권유했으나 시아누크는 킬링필드 학살자들과 손잡을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1981년 시아누크는 푼신펙과 시아누크 국민군(ANS)을 창설해 무장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옛 총리 손 산도 반공 성향 무장 정파인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KPNLF)를 세워 베트남을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1981년 6월, 외부 지원이 절실했던 이 둘은 결국 덩샤오핑의 중재 하에 크메르 루주와 반베트남 연대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가졌고, 1982년 시아누크를 국가주석으로, 손 산을 총리로 하는 망명정부인 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를 수립했다.
명목상 베트남 점령 전의 민주 캄푸치아 정부를 계승했기에 대부분의 국가가 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를 캄보디아의 유일 합법 정권으로 인정하였고, 유엔에서도 캄보디아 대표로 활동했다. 정부 수립을 주도한 중국의 덩샤오핑 정권은 물론 베트남의 뒷배인 소련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도 이들을 지원하였다.[1]
중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연합하긴 했지만 푼신펙과 KPNLF는 당연히 크메르 루주에 대한 생각이 좋을 리가 없었다. '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의 일원이었음에도 푼신펙과 KPNLF는 민주 캄푸치아가 아닌 캄보디아 제1왕국의 상징을 사용했으며, 외교 무대에서도 크메르 루주를 철저히 배제하고 시아누크와 손 산만 활동했다. 하지만 1984년 베트남군의 전면 공세로 시아누크와 손 산의 군대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자 이들은 유일한 무장 세력이 된 크메르 루주를 함부로 내칠 수 없었다.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캄보디아국이 수립되자 3개 세력은 캄보디아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크메르 루주의 참여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1991년 캄보디아에 관한 파리 평화 협정이 체결되자 '캄보디아 정부'로 명칭을 바꿨고, 1993년 총선과 왕정복고 후 제2왕국 정부에 모든 권한을 이양하며 해산했다. 한편, 크메르 루주는 파리협정과 제2왕국을 인정할 수 없다며 또다시 정글에서 캄푸치아 구국인민동맹임시정부를 만들어 게릴라전을 벌였고, 이는 1998년 폴 포트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