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벌(Seabees)이란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미 해군 공병대대는 미 해군 공병대(U.S. Naval Construction Force)를 구성하고 있다. 이 별명은 "공병 대대(Construction Battalion)"라는 단어의 첫 글자 "CB"의 이니셜을 합성한 다음, 근면한 곤충인 벌의 이미지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문맥에 따라 "씨비"는 미 해군 제13병종(OF-13)에서 복무중인 모든 장병들, 더 나아가 미해군 공병대(NCF)에 소속된 모든 장병이나 직할 부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 해병대원도 일부 NCF 안팎에서 복무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해병대는 해군 전투폭파 부대(Naval Combat Demolition Unit)와 수중 폭파 팀( UDT / Underwater Demolition Team)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해군 장병들은 이들을 가리켜 이미 "씨비"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한 씨비는 미 해병대의 구성원으로 활동한 컵스(Cubs), 라이온스(Lions), 에이컨스(Acorns)도 활동했으며 또한 일급기밀 장비였던 화염방사전차 부대에도 병력을 제공했다. 오늘날 씨비는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와 국무부 해군 지원부대를 시작으로 많은 특수 임무를 맡고 있다. 씨비는 해군 대서양/태평양 함대 사령부와 여러 기지 공공사업 및 미 해군 잠수 사령부(USN diving command)에서도 복무하고 있다.
해군 공병대대는 진주만 기습 이후 전투 지역에서 종종 필요한 민간 건설 회사를 대체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당시 민간 건설업체들은 약 7만 명의 인력을 해외에서 파견하도록 해군과 계약을 맺고 있었다. 문제는 국제법상 민간 근로자는 공격을 받더라도 무기로 저항하는 것은 불법이었다는 점이다. 응사하면 게릴라로 분류되어 즉결 처형될 수 있었는데, 상대가 일본군이기에 이 문제는 중요한 논점이었다. 웨이크 아일랜드(Wake Island) 전투의 여파 속에서 공병대대가 결성된 것은 2차 대전 당시 존 웨인의 주연으로 만들어진 선전 영화 '파이팅 시비(The Fighting Seabees : 1944)'의 배경 스토리에 영감을 주었다.
벤 모렐(Ben Moreell : 1892~1978) 제독이 고안해낸 모델인 CB는 해병대 훈련을 받은 군인으로서 민간 기업과 마찬가지로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어디서나 작업할 수 있었다. 노르망디와 오키나와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어니스트 킹(Ernest King : 1878~1956) 제독은 공병대대 창설 2주년을 맞아 씨비들에게 "여러분의 독창성과 불굴의 의지는 해군에서 전설이 되었습니다."라는 편지로 그들의 공로를 높이 치하했었다. 1927년에 창간호가 나와 미국의 전통 깊은 항공 잡지로 자리잡은 플라잉(Flying)은 1944년 10월호에서 씨비를 "2차대전이 가져온 하나의 현상"으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