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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06:46:13

신주무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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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주무원록.jpg

1. 개요2. 역사3. 내용
3.1. 권상(卷上), 논변(論辯)3.2. 격례(格例)3.3. 권하(卷下)
4. 규정5. 여담

1. 개요

新註無寃錄[1]. 조선 세종 20년, 1438년에 최치운(崔致雲) 등이 원나라 왕여(王與)가 편찬한 무원록(無寃錄)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하여 편찬한 법의학서.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 역사

세종 11년, 1429년에 이미 시체 검시하고 이를 보고할 때 무원록, 세원록 등의 책을 인용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죽은 원인을 추측하고 범인을 잡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다 1435년 6월에는 인명의 살상험증(殺傷驗證)에는 반드시 무원록의 검시 규례를 따르도록 하였다.

이후 1438년에 이 책을 편찬하게 하고 전국 각도에 반포하였다. 1439년에는 시체를 검시한 후 보고서를 쓰는 검시장식(檢屍狀式)을 따로 공포, 간행하고 각 도의 관찰사에게 전해 반포토록 하였다.

정조 16년, 1792년에는 신주무원록을 더욱 발전시켜 내용을 증보한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을 편찬한다.

3. 내용

소송 방법이나 세세한 기술적 부분, 법의학적 구체적 절차나 검시에 관한 보고서 양식, 상부 기관에 대한 보고 방식, 형정(刑政)과 법률상의 지침 등을 엄밀하고도 정확한 격례에 따라 규정하였고, 조선의 학자들의 붙인 서문과 발문이 첨가되어 있으며 본문에도 조선 학자들의 주석이 일일이 들어가 있다. 기존 무원록보다 내용이 더 세밀해졌고 중국이 아닌, 조선의 상황에 맞게 활용도면에 개정이 가해져 있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3.1. 권상(卷上), 논변(論辯)

3.2. 격례(格例)

3.3. 권하(卷下)

4. 규정

검험관은 혼자서 검시를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검험에 참여하는 사람들, 즉 서리나 노속들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증인이나 시친 등을 대동하여야 한다. 따라서 일단 검험관으로 정해지면 죽은 자와 가까운 관원이나 선비 또는 술사 등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이는 공정성을 높이고 술사들이 속임수를 쓸 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이다. 검시에 관련이 있는 향인과 이인 등은 잠시라도 검시관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이는 뇌물에 연루되어 부화뇌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고 심문할 때는 반드시 그 이웃과 목격자 등을 불러모으고 반복 심문하여 한가지로 내용이 모아져야 그 진술을 통일된 것이라 여겼다. 보고 들은 것에 차이가 있을 경우 관련자들에게 각자 초사를 실시하고 범행을 저지른 자의 공초 또한 받아 모두 보고한다.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을 경우 재차 공초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다. 명확한 구성 요건 해당성에 해당되기 전까지는 범죄를 범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이더라도 무죄로 추정한다.

반드시 정확하고 엄밀한 용어만을 사용한다. 금고험법부동(今古驗法不同門)을 따로 만들어 법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하므로 고대의 법이 오늘날에 모두 적절한 것은 아니며, 명확한 용어의 뜻을 밝히지 않은 세원록 등을 비판하며 죄형법정주의에서 천명하고 있는 명확성의 원칙과 정신을 정확한 용어 사용을 정립했다. 형사 사건에서 모든 것에 대해 엄격한 정의를 선행하게 하였는데, 예를 들어 검시 과정에 관련된 피의자를 법률적으로 호칭하는 법도 규정해놓았다. 정범(正犯)으로 확정된 경우 사람을 죽이거나 살해한 자는 행흉인(行凶人)이라 기록하고 서명했고, 그외 잡범은 범인(犯人)이라 표현했다. 정범으로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상황에 따라 피집인(被執人) 혹은 상인자(傷人子)로 표현했다.

검시에 사용되는 척도를 통일했다. 무원록에서 검시 측량에 영조척을 사용했던 것에 반해, 신주무원록에서는 항목에서 영조척을 조목 조목 비판하고 검시의 표준 척도로 영조척보다 계량이 일정하고 정확한 관척을 만들어 보급하여 사용케 했다.

인권 보장을 준수했다. 사건을 접수하면 초복검험관문식이라는 공문서에 출발 당시부터의 상황을 정확히 빠짐없이 기록해야 했다. 직함을 적고 모년, 모원, 모시, 모처에 공문의 내용에 의거해 검시하고, 수령관 아무개가 서리 아무개, 오작 아무개 등을 인솔하여 모 길을 이동하여 모일, 모시에 모도, 모리라 불리는 범죄 현장에 도착하는 내용을 모두 기록한다. 검시는 친족이 반드시 현장에 있을 경우에만 실시했고, 기다리다가 시체가 부패하여 검험에 지장을 줄 경우에 한하여 현장에 참석한 모든 증인들을 상대로 친족의 부재를 증명하는 확인을 받았다. 참고인이 불출석할 경우 소환 불응 사유를 보고서에 명시했고, 검시 과정에서 마을의 주수와 이정, 친족 등을 모두 불러모아 제3자의 참여를 통해 현장의 객관성을 보장했다. 검시를 마친 후에는 관문의 복검관에게 보고서를 올리고 작성한 시장 중 하나를 친족 아무개에게 주어 친족들이 상황을 모두 알게 하고, 검시관이 직접 시신을 거적으로 마무리하고 주위에 회를 뿌려 봉하고 벌레나 쥐의 상해가 없도록 철저히 책임지게 하여, 만약을 대비해 후일에 필요한 증거의 산화를 방지하고 보존했다. 후일 분쟁이 생겨 친족 등이 억울함을 호소하면 보고서를 받았던 복검관이 새로 내려와 다시 재조사를 의뢰받아 복검을 실시하고 기존 검시관이 책임을 진다.

5. 여담

장화홍련전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에서 장화와 홍련의 사망을 조사하던 철산부사 전동흘이 참조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전동흘이 철저히 무원옥의 지침에 따라 과학적인 수사를 함으로써 자살로 마무리될 뻔 했던 장화 홍련 사건의 범인인 계모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문서 참조.

만화가 고행석이 이 책에서 소재를 착안해 무원록을 배운 주인공 구영탄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만화 '무원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1] 여기서 무원이란 ‘억울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제목부터 인권 중심 수사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