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8:16:44

목우유마

목우에서 넘어옴
1.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만든 기구2. 관련 매체3. 창천태무전에 등장하는 이동수단

1.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만든 기구

木牛流馬
제갈량이 제작한 운송용 기구. 정확히는 '목우'와 '유마' 2종류로 구분하며 각각 소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1]. 혀를 잡아빼는 것으로 이동과 고정이 자유로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핸드 브레이크?, 산악에서도 쉽게 곡량을 운반할 수 있는 도구였으리라 추측하고 있으나 실제로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제갈량이 설계하고 포원이 실제 제작을 맡았다고 한다.

제갈량집에 나온 목우유마의 제작법은 다음과 같다.
목우(木牛)는 배(腹, 차체)가 방형이고 머리는 둥글다. 다리(脚, 바퀴) 하나에 발(足, 받침기둥)이 4개이고, 머리는 목(領, 멍에) 안으로 들어가고, 혀(舌, 제동장치)는 배(腹, 차체)에 붙어있다. 많이 실으나 천천히 가므로 큰 짐을 싣기에 적합하고, 적은 짐을 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혼자서 가면 하루에 수십 리 가고, 떼를 지어 가면 하루에 20리 간다. 굽은 것은 소의 머리이고, 쌍으로 된 것은 소의 다리(脚)이다. 가로지른 것은 소의 목(領)이고, 굴러가는 것은 소의 발(足)이다. 덮은 것은 소의 등(背)이고, 방형으로 된 것은 소의 배(腹)이다. 드리워진 것은 소의 혀(舌)이고, 굽은 것은 소의 갈빗대(肋)이다. 깎아서 새긴 것은 소의 이빨(齒, 손잡이 역할)이고, 바로 선 것은 소의 뿔(角)이다. 가느다란 것은 소의 가슴걸이(鞅)이고, 끌어당기는 것은 소의 추축(鞦軸,후걸이)이다. 소는 두 개의 끌채(轅)에 의존하는데, 사람이 6척(尺) 가면 소는 4보(步)를 간다. 한 사람의 1년 식량을 싣고 하루에 20리[2]를 가도 사람이 지치지 않는다.

유마(流馬)의 치수는 다음과 같다. 갈빗대(肋)는 길이 3척 5촌, 넓이 3촌, 두께 2촌 2푼으로 좌우가 같다. 전축공(前軸孔, 앞축 구멍)의 먹줄은 머리(頭)에서 4촌 떨어져 있고, 직경은 2촌이다. 전각공(前脚孔, 앞다리 구멍)의 먹줄은 2촌이고, 전축공(前軸孔)에서 4척 5푼 떨어져 있고, 넓이 1촌이다. 전강공(前杠孔-앞 막대기 구멍)은 전각공(前脚孔) 먹줄에서 2척 7푼 떨어져 있고, 구멍의 길이는 2촌, 넓이는 1촌이다. 후축공(後軸孔, 뒷축 구멍)은 전강(前杠)의 먹줄에서 1척 5푼 떨어져 있고 크기는 전과 같다. 후각공(後脚孔, 뒷다리 구멍)의 먹줄은 후축공(後軸孔)과 3척 5푼 떨어져 있고, 크기는 전과 같다. 후강공(後杠孔-뒷 막대기 구멍)은 후각공(後脚孔)의 먹줄과 2촌 7푼 떨어져 있다. 뒷부분의 재극(載剋, 제동장치)는 후강공(後杠孔)의 먹줄에서 4촌 5푼 떨어져 있다. 전강(前杠, 앞 막대기)는 길이 1척 8촌, 넓이 2촌, 두께 1척 5푼이다. 후강(後杠, 뒷 막대기)은 전강과 같다. 장방형의 나무상자는 둘이고 널판자의 두께는 8푼, 길이는 2척 7촌, 높이는 1척 6촌 5푼, 넓이는 1척 6촌이고, 각각의 나무상자에는 쌀 2곡(斛, 1곡은 10두) 3두(斗)를 담을 수 있다. 위의 강공(杠孔, 막대기 구멍)에서 갈빗대까지는 7촌이고, 전후가 같다. 위의 강공(杠孔)은 아래의 강공(杠孔) 먹줄에서 1척 3촌 떨어져 있고, 구멍(孔)의 길이는 1촌 5푼, 넓이는 7푼이고, 8개의 구멍(孔)이 모두 같다. 전후의 네 다리(脚)는 넓이 2촌, 두께 1촌 5푼이고, 형상은 코끼리 다리 같고, 길이는 4촌, 경면(徑面)은 4촌 3푼이다. 다리 구멍 안에 있는 세 각강(脚杠)은 길이 2척 1촌, 넓이 1촌 5푼, 두께 1촌 4푼으로, 강(杠)은 모두 같다.

모두 나무로 만든 운송 공구로서 목우는 바퀴 하나를 단 짐수레이고, 유마는 바퀴 네 개를 단 짐수레였다고 한다.《삼국지(三國志)》 권35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제갈량은 천성이 기교를 요하는 사고에 장점이 있어 연발의 쇠뇌를 손익한 것과 목우, 유마가 모두 그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亮性長於巧思 損益連弩 木牛流馬 皆出其意)"라고 하였다. 또 북송의 문신 진사도(陳師道)의 《담총(談叢)》에 "촉에는 작은 수레가 있어 혼자 밀고 다니는데, 곡식 8석을 실을 수 있고 앞쪽이 소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또 큰 수레가 있어 네 사람이 밀고 다니는데 10석을 실을 수 있으니, 이것이 대체로 목우유마이다.(蜀中有小車 獨推 載八石 前如牛頭 又有大車 用四人推 載十石 蓋木牛流馬也)"라고 하였다. 송나라의 《 사물기원》이라는 책에선 '목우는 지금으로 치면 앞부분에 끌채가 달려있는 작은 수레이며, 유마는 한사람이 미는 것으로 그것을 강주의 수레라 불렀다.' 라고 한다. 또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 따르면 최치원이 중국에서 관리로 있을 때 목우유마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나무로 만든 소나 말이라는 점에서 연의 특유의 과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삼국지연의 뿐 아니라 정사 및 이후에 쓰인 다수의 서적에도 기록되어 교차검증되어 있는 만큼 연의 같은 기능은 없더라도 목우유마라는 이름의 수레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송나라 이후엔 목우유마의 운용에 대한 기록이 없었는데, 이후 조선에서도 몇차례 이를 본뜬 수레를 만들려고 시도한 기록이 있지만 이후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용화 된 것은 없는듯 하다. 박제가의 《정유각집》 기이고에 일종의 자동기계 격으로 스스로 물을 끓여 나는 비차, 언사(偃師)의 꼭두각시, 제갈의 목우유마라는 이름으로 같이 언급된다. 비슷한 시기 조선의 문신 홍대용은 중국에서 목우유마에 대한 기이한 설을 듣는데 납조교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친구 대문개라는 이가 제갈량의 유법(遺法, 옛 사람이 남긴 법)에 의지해 목우유마를 만들어 두 짐의 쌀을 싣고 하루 40리[3]를 능히 갔었다는 말을 듣고 황제가 듣고 칙령(勅令)을 내리어 황제에게 바치게 하여 어고(御庫)에 간직하고 말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홍대용이 이를 믿지 않자 그 사람은 목우유마는 자신이 직접 보았던 것이며 헛소문이 아니라고 하였고 이는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사신으로 간 또 다른 조신 문신 이압도 대문개가 제갈량의 유법을 따라 목우유마를 만들었고 이를 황제가 소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저서 《문견잡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범우사판 삼국지의 제8권 부록에 보면 도해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목우를 4륜 수레, 유마를 외바퀴 수레로 그려놓았다. 정작 모종강본을 직역한 본문은 읽어봐도 당최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중국 과학사를 연구한 조지프 니덤은 목우유마가 중국식 외바퀴수레라고 결론을 내렸다.
파일:1353566925.jpg
중국식 일륜거는 바퀴 좌우 양쪽과 바퀴 위 등 모두 3군데에 짐을 싣고 좁은 길을 인력으로 비교적 균형 있게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것이 험하기로 유명한 촉 지방의 잔도에서 기존의 두바퀴수레보다 훨씬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4] 신삼국에서는 이쪽 학설에 따라 소머리 모양 장식을 단 일륜거로 나왔다.

2. 관련 매체

3. 창천태무전에 등장하는 이동수단

1.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물건인 듯.

정의: 목우와 유마는 스스로 움직이는 운송기계(運送器械), 즉 자동차(自動車)라고 통틀어 말한다. 오행기관을 통해 얻은 동력으로 밑에 달린 바퀴를 움직여 땅 위를 달린다.
기원: 삼국시대 책략가이자 방술사로 유명한 제갈량이 만든 것으로 처음엔 군량 수송을 원활히 하기 위해 발명한 것이다.
구조: 몸체와 앞쪽의 운전실과 몸체 밑에 달린 바퀴로 이루어져 있다. 운전실에는 한가운데 둥근 원형의 운전대와 그 운전대 밑의 가속패와 감속패가 달려 있다. 운전대를 돌려 좌우로의 방향을 전환하며 가속패를 밟아 속력을 높이고 감속패를 밟으면 속력이 줄어든다. 그냥 자동차잖아


[1] 재미있게도 파블로 피카소는 낡은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로 황소머리라는 오브제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거기다 일부 산악용 자전거의 핸들을 보면 소뿔이 연상되기도 한다. [2] 한나라의 1리는 약 415.8m이므로, 20리는 약 8km가 된다. [3] 15.7km [4] 단순한 일륜거였다면 어차피 정차할 때 뒷발 때문에 절대 안 굴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혀를 잡아 빼는 등의 제동장치가 필요했을지 의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잔도 문서에 나와 있듯이 폭이 굉장히 좁은데다 오르락내리락이 반복된다. 상황에 따라 뒷발 중 하나가 잔도 바깥의 허공에 붕 뜰 수도 있고, 가파른 내리막에 정지해야 한다면 수레가 외바퀴+짐의 무게에 앞쪽으로 주르륵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덤으로 바퀴가 달린 이상 속력이 붙으면 중력에 의한 가속도에 통제가 어렵다. 평탄한 길이 아닌,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십상인 잔도에 뒷발이 마찰을 제대로 해 줄 수 있을지도 의문. 이 상황을 막으려면 수레를 반대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데 사람도 겨우 지나가는 좁아터진(...) 잔도에서 그게 되겠는가? 유턴금지 1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