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1단계 건설 사업 당시 충청북도 청원군 연제리 333-1에 위치한 한국고속철도공단 중부시설사무소(오송) 고속철도 홍보관에 전시되어 있던 차량이다. 목업이다보니 동력차 1량에 운전실과 객실 및 팬터그래프까지 설치된 것이 특징. 2004년 4월 1일 KTX 개통 이후에 고속철도 홍보관 운영을 종료 후에도 한동안 오송기지 구내에 있었으나,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이 추진되면서 이관되었다. 현재는 도색을 변경하고 수유실로 개조되어 원형을 잃어버린 상태다.
→ 2차분은 1차분과 동일한 현대정공 제작에 1차분의 반개폐 객실 유리창 형상이 통유리로 변경[2] 된 소소한 개선이 있었고 도입시기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1차분 1994~1995년 / 2차분 1996년). 동호인들 사이에서 흔히 뱀눈이라고 부르는
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의 7차분 ~ 11차분처럼 기본 틀은 유지한 채 개선을 할 때마다 목업을 만들어서 평가/시연을 하지는 않고 경제적으로도 맞지 않으므로 굳이 객실 유리창 형상 변경 등의 이유로 2차분의 목업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객실 의자 양끝 팔걸이의 형상은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에 사용된 부품과 모양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2차분)의 목업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 목업 차량 제작시에는 일반적으로 대차 부분을 생략하고 있고, 현 위치로 이전할 때 적당히 다른 차량/사용하지 않는 대차를 끼웠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 2002년 경부터 목업이 있었다고 한다면 철도차량 3사 빅딜로 당시 KOROS, 현재의
현대로템이 출범한 후이므로 어차피 한 회사이기 때문에 현대정공 제작 6호선 목업 차량에 대우산 대차가 끼어있어도 딱히 문제는 되지 않는다. 객실 유리창 형상 또한 5호선 1차분과 7호선/8호선 1차분 전동차[3]의 반개폐창의 모습이 아니라 5호선 2차분이나 6호선 전동차의 통유리와 가깝다. 차량 외부의 전면 LED 행선지 표시기 위치의 사이즈 또한 7, 8호선 1차분의 작은 사이즈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울교통공사 7000호대/8000호대(1차분)의 목업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처음 존재가 발견되었을 때, 차량 외관은 6호선 노선 색상 띠를 두르고 있었고, 객실 유리창은 반개폐창이 아닌 5호선 2차분/6호선 차량과 같은 통유리 2개이며, 차량 전면 LED 행선지 표시기 위치의 크기가 7, 8호선 1차분과 같이 작지 않고, 의자 양쪽의 팔걸이의 하단이 곡선으로 떨어지는 형상을 보면 6호선에 사용된 것에 가깝다.
이와 같은 이유와 함께 차량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 6호선 목업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6호선 목업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이 목업차량은 서울교통공사 6000호대 전동차 목업(추정)으로 분류하여 서술해 두었다.
2003년에 개봉한 지하철 재난영화
튜브의 촬영을 위해 제작사인
현대로템의 협조를 받아 1차분 전동차의 설계 도면을 토대로 8억원(당시 화폐가)을 들여 선두차 1량과 중간차 1량 총 2량을 촬영용으로 제작한 차량이다.
인터뷰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남양주종합촬영소에 기증되어 지하철 세트장으로 활용, 드라마나 광고 촬영에 사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객실 유리창을 2차분처럼 통유리로 개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2019년
남양주종합촬영소가 폐쇄되면서 2023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촬영소가 폐쇄되었으나 시설 자체를 철거한 것은 아니므로 지하철 세트장도 여전히 존재는 하고 있다.
참고
엄밀하게 시제품 평가를 위한
목업 차량은 아니지만 실제 차량 도면을 이용하여 실제 차량 제작사에서 그대로 제작했으므로 이 문서에 기재해 둔다.
[1]
전에는 철도박물관에있는 이음 목업이 영주철도고로 옮겨질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2]
현재와 같이 모든 차량의 객실 유리가 2개의 통유리로 통일된 것은 2005년 불연재 개조 이후이다.
[3]
1995, 1996년 도입 당시에는 반개폐 창문이었고 2005년 불연재 개조 과정에서 반개폐창을 없애고 현재의 통유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1990년대 목업 제작 당시에는 객실 유리창이 반개폐창이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