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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00:50:19

마츠다이라 노부츠나


1. 개요2. 생애3. 일화4. 기타

1. 개요

松平信綱
(1596 ~ 1662)

관위는 이즈노카미(伊豆守). 에도 막부 초기의 막신[1]이자 다이묘. 로쥬(老中)[2]로 재직하며 도쿠가와 이에미츠, 도쿠가와 이에츠나 두 쇼군을 섬겨 막번 체제 성립에 공헌한 인물. 지혜로운 이즈라 불릴 정도의 현인으로, 카스가노츠보네, 야규 무네노리와 함께 이에미츠를 떠받드는 세발 의 다리라 불렸다.

2. 생애

게이초 1년(1596년) 10월 3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오코치 히사쓰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게이초 6년(1601년) 숙부인 마쓰다이라 마사쓰나의 양자가 되었고, 게이초 8년(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였다. 히데타다의 후계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태어나자 그의 시동이 되었다.

1623년 이에미츠의 에도 상경을 수행하여 종3위하 이즈노카미 관직명을 받았다. 1627년 1만석이 되었으며, 간에이 10년(1633년) 로쥬에 취임하였으며 간에이 15년(1638년) 기독교를 믿는 농민들의 반란인 시마바라의 난을 진압하였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이에미츠의 이복동생인 호시나 마사유키[3]와 함께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를 보좌했다.

칸분 2년(1662년) 3월 16일에 병사한다.

3. 일화

사이타마현 히키군 카와지마정에 「出丸」(이데마루)라는 곳이 있는데, 노부츠나의 정치수완에 감탄한 농민들이 노부츠나를 이데마루라고 불렀다가 지명으로 정착했다는 일설이 있다.

케이안의 변(慶安の変) (1651년 4월 ~ 7월) 당시 "마루바시 츄야"[4]라는 창의 명수를 포박할 때, 사망자가 많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책략을 냈다. "이야!!"라고 츄야가 있던 숙소에 거짓말을 내고, 츄야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2층에 올라가자 사람들을 보내 포박시켰다고 한다.

1652년 남명의 잔당인 계왕 정권에서 일본 에도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 주순수라는 사절을 보내어, "부디 일본에서 우리한테 군대를 보내주어 만주족 오랑캐 청나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십시오."라고 구원병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 제안을 받고 쇼군 이에미츠는 막부의 중신들과 회합하는데 이 자리에서 과격파들은 "천하의 불평 낭인 수십만을 모아 중원에 진공, 달단[5]을 정복하고 중원을 한족(漢族)들에게 다시 회복시켜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자."라고 주장했지만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는 " 이에야스 님이래 30년! 간신히 얻은 천하태평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라고 강력히 반대하여 결국 에도 막부 남명 구원병 파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6]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하여 에도 막부 상인 첩자들을 중국 대륙으로 보내 각종 정보를 입수하여《화이변태(華夷變態)》와 같은 책들을 발간하기도 하는 등 청나라를 상대로 한 첩보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

4. 기타

파일:松平信綱.png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처음 등장한 시기는 천상기 시절에 등장했다가 없어졌다가 창조 전국입지전에 등장하며 통솔 82, 무력 40, 지력 90, 정치 88으로 나왔다.

[1] 막부의 수장인 쇼군을 주군으로 모시는 무사들을 지칭하는 용어. [2] 에도 막부의 직책명으로, 막부의 정무를 담당하던 최고직이다. [3] 도쿠가와 히데타다 서자이자 아이즈 번 번주다. [4] 케이안의 정변의 주모자인 유이 소세츠의 최측근으로, 쵸소카베 모리치카 사생아라는 설이 있다. [5] 만주족을 가리키는 말. [6] 사실 관계를 따지고 보면 노부츠나의 의견은 맞았다. 애초에 남명도 여러 정권이 난립하였기에 청나라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고,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먹고 명나라 먹자고 임진왜란 일으켰다가 조선에서 입은 손실만으로도 힘을 크게 깎아먹었으며 명나라가 도와준 대가로 뭘 주겠다고 확실히 약속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상대도 자기네들이 정복 못 한 조선을 굴복시켰으며 명나라도 다 멸망시켜가는 청나라였다. 또 조선보다도 더 먼 중국엔 어떻게 갈 것이며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과격파들 말대로 일본이 중국에게 조공받는건 불가능하다. 감합무역의 재개라면 모를까... [7] 카미(守)는 율령제에서 지방행정 장관직이다. [8] 이에야스의 10번째 아들이자 전 슨푸성주였던 이로서 당시 이에미츠보다 윗세대에 해당되는 몇 안되는 다이묘였다. [9] 다이묘가 쇼군의 허락도 없이 번을 떠나서 정해진 수효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에도로 오는 것은 무가제법도에서 엄격하게 금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