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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0 22:07:35

마더(한국 영화)/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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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엔딩 춤 장면3. 바보라는 말4. 도준의 지적 장애 정도5. 잊게 해주는 침6. 진태의 아빠 역할7. 엄마랑 잔다는 발언

1. 개요

영화 마더(한국 영화)의 해석을 정리한 문서.

2. 엔딩 춤 장면

마지막 관광 버스의 춤판[1] 장면이 특히 압권[2]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버스 바깥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촬영 감독 홍경표와 봉준호 감독의 상의 끝에, 천신만고 끝에 찍은 결과물이라고 한다. 봉준호 감독도 "이 장면을 찍으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는 발언을 인터뷰 중에 했다.

우선 역광 때문에 버스에 탄 아줌마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고,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기 때문에 혜자가 인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이후엔 누가 혜자인지 알아볼 수 없으며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는 혜자는 특별한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의 '마더' 중 한 명임을 상징하며, 방향만 다를 뿐 자신의 자식을 위해 처절히 투쟁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더'의 삶을 응축한 장면이다. 혜자가 일어나기 전 가까이에서 촬영된 아줌마들은 웃으며 춤을 추고 있지만, 혜자가 일어나 춤에 합류한 이후의 멀리서 촬영된 아줌마들은 석양을 받으며 표정 없는 실루엣만이 몸과 팔을 흔드는데, 시뻘건 석양을 받으며 팔을 허우적대는 이들의 춤사위는 춤이라기보단 불지옥의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지옥문을 두들기거나 용광로 벽을 긁으며 꺼내달라고 애원하는 '마더'들을 연상시킨다. 한마디로 혜자를 포함한 모든 '마더'들은 자기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함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마더'들의 가면이며 멀리서 본 모습이 이러한 '마더'들의 모습이다. 이는 사실 당연한 것이, 엄마가 자기 자식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리는 없으며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것을 멀리서 지켜 보는 제3자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비극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장면은 봉준호 감독 피셜 감독 인생 중 가장 자랑스러운 장면 중 하나라고 하며, 몇 분 남짓한 이 엔딩씬을 찍기 위해 태양빛과 알맞은 구도를 이룰 날짜, 날씨, 도로 등을 엄선하느라 피나는 노력과 고뇌를 거쳤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인터뷰
라스트 씬을 찍고자 했던 이유와 그 과정(유튜브)

3. 바보라는 말

도준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바보"라고 말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응징을 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3] 중간에 나오는 혜자의 면회 장면에서 그 답이 나온다. 멀쩡한 아들이었지만 음독 살해 후 자살을 하려다 실패한 나머지 후유증으로 아들이 바보가 되었다는 혜자의 말에서, 아들이 지적장애가 된 것에 대해 엄마로서 얼마나 크게 상심하고 자책감이 많았을지 짐작이 된다. 도준이 성인으로까지 자라는 과정에서 동네 바보 소리를 엄청 듣게 되며 고생을 했을 텐데,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꼭 되갚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살아왔을 터. 또한 아들이 동네 바보로 무시받으며 살지 않게하기 위해 아들 곁에 듬직한 가드를 붙여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에서 진태의 존재도 암시가 된다.

혜자는 자책의 회한에서 시작된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바보라는 말에 되갚음하라는 지침이 도준에게 자존감의 수단으로써 기계적으로 새겨져 여고생의 돌 투척에 그대로 반격하여 살인이 일어난 상황까지 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도준의 입장에서는 '엄마 말 때문에 사람까지 죽이지 않았냐'는 핑계가 가능하다.

4. 도준의 지적 장애 정도

도준은 어느 정도까지는 멀정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많이 바보같은 모습이다.[4] 타고나길 장애인이 아니었는데 농약 사건으로 이상이 생겼다는 설정에서 그 경계선을 해석할 수 있는데, 옆에 비교적 장기간 지켜주었던 진태라는 친구가 있기에 의존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이러한 선택적 바보스러움이 더욱 설명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지적장애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수준으로 알아보게 되면 특정 순간에 엄청나게 똑똑한 기치 및 잔머리를 굴리는 능력을 볼 수 있는데, 주로 본능적 욕구라든지 생존욕과 관련하여 그렇다. 도준도 자신의 평가라든지 감방신세가 된다든지 하는 중요한 기점을 눈치채기엔 충분하므로 그런 순간들에 잔머리와 기치를 발휘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5. 잊게 해주는 침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 소개되는, 허벅지에 놓는 잊게해주는 침(이하 망각침)이란 것은 무엇일까의 해석이 다양하다. 침이란 게 잘못 놓으면 사람도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전문가가 세심하게 놓지 않으면 위험할 수는 있다. 영화에서 이 망각침이 언급될 때에 "죽음"의 개념도 곁을 맴돈다. 면회소에서 도준이 5살 때의 농약 사건을 기억해내자 혜자는 경악하면서 (이미 교도소에 갇혀 인생 반정도는 망친 듯한) 아들에게 당장 망각침을 놓아주겠다고 난리발광을 하고, 도준은 엄마한테 왜 또 이번엔 침으로 죽이려는 거냐고 반항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의사 자문을 구해 봤는데 일단 현실적으로는 저 부위 근처에 혈이라는 것 자체가 없고 그냥 대동맥 지나가는 자리라서 잘못 맞았다가 혈관 뚫리면 도준 말마따나 죽기 딱 좋다고 한다(...)

이 영화의 세상 설정에서 망각침은 정말 망각효과가 유효한 것일 수도 있고, 까딱 잘못 놓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침이거나, 혹은 잊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돕는 촉매제일수도 있다.[5]

6. 진태의 아빠 역할

진태의 전반적인 모습은 다소 불법 경계선에서 사람들 삥을 뜯으며 살아가는 놈팽이로 나오면서도, 나름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고 인간적인 친밀함과 따뜻함을 선사하는 복합적 캐릭터로 묘사된다. 초반엔 지적장애 상태인 도준을 꼬봉처럼 거느리는 듯 나오지만, 뒤로 갈수록 도준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이 드러난다. 관객을 벙찌게 만드는 부분은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뒤 혜자의 집에서 싸우는 장면인데, 갑자기 혜자에게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냐"며 반말을 한다. 그리고 이상할 수 있는 단어로 합의금이 아닌 "위자료"를 요구하는데 단순 무고죄 삥으로 볼수도 있으나 마치 같이 살다 헤어지게 된 약자가 경제권 주도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결국 혜자에게 있어 진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복선이며, 지적장애인 아들 옆에 붙어 계속 살펴준 사람이라는 풀이가 맞아 떨어지고,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혜자가 어떤 수단까지 동원했었을지까지 해석이 미칠 수 있는 장면이다. 진태 본인 또한 고등학생 양아치가 도준과 혜자를 향해 패드립을 날리자 제대로 분노한 것을 보면 진태 본인도 이 둘에게 비단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또다른 어떤 감정을 가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7. 엄마랑 잔다는 발언

도준이 여자랑 자봤냐는 도발에 엄마랑 잤다고 답을 하는 게 알쏭달쏭하다. 실제 도준은 술에 취해 여자를 밝히다가 좌절을 겪고 집에 돌아와 이미 잠든 혜자 옆에 눕는데, 엄마의 가슴을 만지려고 한다. 혜자의 반응은 다소 밍기적하면서도, 젖 만지려는 정신 어린 아들을 말리는 행태로는 보이지 않는다. 도준이 멀쩡하고 잘생긴 성인으로 자랐음에도 혜자의 농약 사고로 이런 모양이 된 것에 대한 자책이라든지, 넌지시 암시되는 혜자와 진태의 관계 묘사 등에 복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만약 혜자와 진태가 관계했다면 그걸 도준이 목격한 뒤 어느날 욕심을 품었을 가능성 혹은 혜자가 아들의 성욕에 어떻게 대처했을지 등은 관객이 상상하여 해석할 부분이다.[6]


[1] 요즘은 많이 줄어들어 목격하기 쉽지 않지만 과거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고속메들리 뽕짝을 틀고 사이키 조명을 돌리며 마이크까지 잡고 가라오케 라이브 노래를 부르며 춤판이 벌어지는 일들이 잦았다. 당시에도 도로교통법 위반이었지만 횡행했고 요즘에는 준법정신과 신고정신이 높아져서 사라진 구습 문화. [2] 석양을 통한 역광으로 찍어 표정들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실루엣만 나오는데, 이것 때문에 흔한 춤판임에도 매우 기괴한 장면이 뽑혀나왔다. 사실 오프닝은 처음 보면 의도를 알아채기 힘든데, 이 엔딩이 수미상관으로 나오면서 오프닝의 내용까지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며, 엔딩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3] 이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와 비슷하다. 마티 역시 '겁쟁이'(chicken)이라는 말을 들으면 분노하며 '아무도 날 겁쟁이라고 부르지 못해!"라고 소리치기 때문. [4] 혹자는 배우의 연기력 부족이라고도 하나, 감독의 평은 달랐다. [5] 영화 동사서독의 취생몽사처럼. [6] 예민한 부분이나, 정신지체자들은 다른 사회활동 수준이 낮기 때문에 성욕 등 본능욕수의 표출이나 의존성이 강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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