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봄 공세 당시 독일 제국군은 다량의 르노 FT를 연합군으로부터 노획해 테스트용으로만 사용했다고 한다. 전선에서 운용하지 않은 이유는 르노 FT는 처참한 험지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 제국군이 노획한 차량들은 37mm 포 대신 기관총을 장착한 여성형 전차가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2]
폴란드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6월 120대 분량의 FT 전차를 프랑스로부터 공여받았으며, 이 전차들은
소비에트-폴란드 전쟁(1919-1921)에서 실전 투입되었다.
1924년 폴란드는 비무장 지휘전차 모델인 르노 TSF 6대를 프랑스에게서 수입하였으며, 1929년과 1930년에는 23대의 FT를 프랑스에서 추가로 들여오면서 동시에 기존 FT의 개량형인 르노 M26/27[5] 5대와 르노 NC-27[6] 1대를 테스트 목적으로 구매하였다. 폴란드에서 르노 TSF와 M26/27, NC-27은 기존의 FT 전차와 명칭의 구분없이 함께 분류되어 운용되었다. 그 밖에 FT에 기반한
이탈리아제
피아트 3000 경전차 1대가 1931년 비무장 상태로 수입되어 시운전을 거치기도 하였다.
사진 등 관련 자료(폴란드어 포럼)
1925년에는
스타니스와프 카르다셰비츠(Stanisław Kardaszewicz) 대위[7]가 고안한 개량형 무한궤도가 제작되어 1926년부터 65대의 FT에 부착되었다. 이 무한궤도는 전차의 속도와 연비를 개선하면서 소음과 진동을 줄이고 승차감을 개선해주었다. 1926년에는 바르샤바의 CWS 공장에서 예비 전차부품과
연철 장갑으로 27대의 전차를 새로 제작했는데, 이 전차들은 종종 "FT CWS" 또는 "젤라즈니(Zelazny; 연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CWS 전차들은 연철로 제작되었기에 장갑 방어력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훈련용으로 활용되었다. 같은해에는 FT 전차를 기반으로 한 화학전용 전차 1대가 시험적으로 제작되었으나 프로젝트가 더 진행되지 않고 끝났다.
사진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는 기관총 장착형 FT 전차들의 무장이 기존의 8mm 기관총에서 7.92mm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1932년과 1933년에는 FT 전차를 활용한 철로용 궤도차가 개발되었다. 해당 궤도차는 "장갑궤도차 R"이라는 형식으로 채택되어 1939년까지 총 38대 분량이 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구식화된 6대의 르노 TSF 지휘전차를 무장 장착형 전차로 전환하는 작업이 1930년대에 진행되기도 했다. 그 밖에 FT의 성능 개선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시험 또는 계획되었으나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한편 1932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왕국 간의 군사협정 체결의 일환으로 14대의 FT 전차가 다른 군사 장비 일부와 함께 유고슬라비아에 판매되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폴란드는 보유하고 있던 FT 전차 가운데 32대 분량을 스페인 공화정부 측에 판매하였으며,[8] 여기서 얻은 자금은
7TP 전차의 추가물량 생산비용으로 사용되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군은 도합 102대의 FT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중 일부는 연철로 만든 CWS 전차였다. 70대의 전차들은 주라비차(Żurawica) 주둔 제2기갑대대에 배속되어 있다가 3개(111, 112, 113)의 경전차중대로 나뉘어 편성되었고,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 브제시치(Brześć) 요새 공방전에서 독일군에 맞서 실전 투입되었다. 나머지 전차들은 장갑열차에 딸린 궤도차로 활용되어 방어전에 투입되거나, 급조된 소규모 기갑부대에 배치되어 전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르노 FT 1917년형 남성형, 여성형을 합해 34대 구매해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운용했다. 핀란드군은 르노 FT 남성형을 "Koiras(코이라스)[10]", 여성형을 "Naaras(나라스)[11]"라 불렀다. 1937년에는 Naaras 전차들의 무장이 기존의 8mm 기관총에서 7.62mm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겨울전쟁 발발 당시에도 핀란드군 기갑부대의 보유 장비로 남아있었으나 실전에서 전투용으로 쓰기엔 구식화가 너무 심각해 땅에 파묻어 토치카로 활용하거나 노획 장비 견인 등의 용도로만 쓰였다. 겨울전쟁이 종료된 시점에서 핀란드군에게 남은 FT 전차는 4대로, 1대는 박물관 전시용으로 보존되고 나머지 3대는 훈련용 차량으로 쓰이다가 1943년 해체되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미군이 실제로 가동이 가능한 르노 FT 2대와 고철 수준의 2대를 발견했다. 2대는 미국으로 옮겨져서 전시 중이고 나머지 2대 중 1대는 프랑스
소뮤아 기갑 박물관으로 보내졌으며, 마지막 1대는 입수경로를 역추적해서 알아낸 원 소속 국가 폴란드로 돌아갔다.
위키피디아 링크
프랑스에서 구입한 13대의 차량이 1919년부터 일본군에 도입되어 "갑식 전차"라는 제식명으로 사용되었다. 1929년에는 FT의 개량형인 NC27 10대가 수입되어 '을식 전차'라는 형식을 부여받고 일선 부대에 배치되었다. 갑식 전차와 을식 전차의 무장은 1916년형 37mm 저격포(11식 보병포의 전신) 또는 기관총이 사용되었으며, 이들 전차는
시베리아와
만주 및
상하이 사변에서 전투용으로 사용하다 나중에 훈련용으로 전용되었다.
[1]
1917년에 생산된 프로토타입들 중 하나이다. 양산형과의 차이점은 전차장 전망탑의 모양에 일부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이 있다.
[2]
출처: "German Panzers 1914–18” Steven J Zaloga. Osprey Publishing Ltd. 2006
[3]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폴란드 정부에게 기증한 차량으로, 본래 폴란드군 소속 차량이었으나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 소비에트군에게 노획된 후, 아프가니스탄에게 공여되었다가 출처가 확인되어 폴란드로 다시 반환되었다.
[4]
폴란드어로
연철을 뜻한다. 사진의 전차는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군에게 노획된 차량으로, 폴란드에서 자체 개발한 개량형 무한궤도를 장착하고 있다.
[5]
케그레스 고무 트랙을 부착한 모델.
[6]
또는 NC-1.
[7]
훗날
폴란드 침공 발발 후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혀 코젤스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카틴 학살에서 살해당했다.
[8]
동시에 국민전선 측에는 구식 전투기 PWS-10 20기를 판매했다.
[9]
핀란드군으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다.
[10]
핀란드어로 "수컷"을 뜻한다.
[11]
핀란드어로 "암컷"을 뜻한다.
[12]
스웨덴어로 "작은"을 뜻한다.
[13]
1920년 프랑스 정부가 루이지애나에게 기증한 차량이다.
[14]
사진의 차량은 1919년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군이 영국군으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