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레이바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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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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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8 · 2018-19 | |||
베스트팀 |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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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루카스 레이바 Lucas Lei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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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루카스 페치니 레이바[1] Lucas Pezzini Lei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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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7년
1월 9일 ([age(1987-01-09)]세) 브라질 마투그로수두수우주 도라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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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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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9cm / 73kg | |
직업 | 축구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2] / 은퇴) | |
주발 | 오른발 | |
유스 클럽 | 그레미우 (2004~2005) | |
프로 클럽 |
그레미우 (2005~2007) 리버풀 FC (2007~2017) SS 라치오 (2017~2022) 그레미우 (2022~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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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24경기 ( 브라질 / 2007~2013) |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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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10년 동안 리버풀에 헌신했던 리버풀의 레전드 미드필더이자, 루이스 가르시아를 잇는 리버풀 만의 자칭 수비의 루간지로 불렸었고 라치오 이적 후에도 파이팅 넘치는 홀딩으로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와 함께 팀의 중원 핵심자원 중 하나였다.
리버풀 이적 이전에는 제 2의 호나우지뉴라는 평가까지 받던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라파엘 베니테스가 스티븐 제라드, 샤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백업으로 기용하면서 여러 포지션에 놓다가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했다. 가끔 센터백으로 나오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2.1. 그레미우 1기
2004년 그레미우 유스에 소속된 이후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그 해 팀이 2부 리그에서 승격에 성공해 1부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2006년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리그 4위 및 주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팀'에 뽑힌 것과 동시에 '볼라 데 오우루('골든볼'이라는 의미)'에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이러한 활약으로 인터 밀란 등 유럽 빅클럽들의 구애대상에 올랐으며, 루카스는 그 중 자신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리버풀 FC를 택했다. 하지만 당시 진행 중이었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까지는 그레미우 소속으로 뛰었으며, 결승전 이후 5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리버풀로의 이적을 마무리지었다.
2.2. 리버풀 FC
리버풀 입단 이후 가진 첫 경기는 홍콩에서 벌어진 '바클레이 아시아 트로피'에 참가했던 포츠머스 FC와의 결승전 경기였으며, 후반전에 모하메드 시소코와 교체 투입되며 데뷔전을 가졌으나 팀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했다. 하지만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은 2007년 10월 20일 10라운드 에버튼 FC와의 머지사이드 더비로 다소 늦었는데, 이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에버튼의 골문 앞에서 필 네빌의 핸드볼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팀의 2:1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사비 알론소의 존재로 인해 다소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2007/0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탈리아 세리에 A의 US 팔레르모 등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10여 개의 팀에서 관심을 보였으나 팀의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가 이러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이후 알론소와의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첼시 FC와 아스날 FC와의 경기 및 인터 밀란과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 등에 출전했으며, 하반트 & 워터루빌과의 FA컵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어 리버풀에서 골을 넣은 첫 브라질 선수가 되었다.이후 2008/09 시즌 시작 전 FC 루체른과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시즌 초반부에 결장하게 되었다. 올림픽 이후 팀에 복귀했지만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에게 밀려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으며,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인 이후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3] 하지만 베니테스는 "루카스는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선수"라면서 루카스를 변호했고, 루카스는 12월 28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5:1 승리에 일조해 이러한 기대에 보답했다. 하지만 2009년 1월 28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후반 38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어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얼마 뒤 2월 4일 에버튼과의 FA컵 32강전 경기에서 후반 31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팀의 0:1 패배의 원흉이 되어 서포터들로부터 다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후 3월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부상당한 알론소를 대신해 선발 출장해 팀의 4:1 승리에 공헌했으며, 4월 14일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 경기에서 제라드 대신 선발 출장해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4:4 무승부에 기여했다. 하지만 팀은 1차전에서 1:3으로 패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팀은 1, 2차전 합계 5:7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 뒤 5월 3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으며, 팀은 시즌 내내 좋은 흐름을 보이며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이후 더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 리버풀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루카스 본인은 리버풀을 떠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2:1로 패했다.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자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8월 16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개막전에 출장했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그 뒤 10월 2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다비드 은고그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0 승리에 공헌했으며, 2010년 4월 10일 벤피카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4:1 대승을 견인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 35경기(선발 32경기)에 출장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와 UEFA 유로파 리그에서 13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후 2010/11 시즌 시작 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와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서 활약했으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 더욱 중용되었다. 미드필더에서 제라드와 호흡을 맞추어 활약했으며, 제라드의 부재시에는 크리스티안 폴센이나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 등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9월 16일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라이언 바벨과 교체 투입된 뒤 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에 일조했으나, 11월 13일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후반 추가시간에 퇴장당했고 팀은 0:2 패배했다. 12월 6일 아스톤 빌라 FC와의 경기에서 바벨의 골을 어시스트해 팀의 3:0 승리에 공헌했으며, 경기가 끝난 이후 공식 홈페이지에서 팬들의 투표로 진행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2011년 2월 12일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본인의 통산 100번째 프리미어 리그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자신의 목표였던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었다. 그 해 3월 30일 구단과 장기 계약에 합의했으며, 4월 17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팀의 1:1 무승부에 크게 기여했다. 5월 24일 약 40%의 지지를 얻어 스탠다드차타드 주관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시즌 종료 이후 2010/11 시즌 유럽 리그에서 가장 높은 태클 성공률을 보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2011/12 시즌에서도 스토크 시티와의 풋볼 리그 컵 16강전에서 어시스트을 기록해 팀의 2:1 승리를 견인하고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한참 리즈 시절을 달리던 야야 투레를 상대로 훌륭히 태클을 가하며 그를 잘 막아내는 등 좋은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11월 30일 첼시와의 풋볼 리그 컵 8강전에서 라이언 버트란드의 태클에 무릎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다.
2012/13 시즌 이후에도 리버풀에 남아있지만, 자신을 잘 써먹은 케니 달글리시는 시즌이 끝나고 경질되었고, 브렌던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는 부상 여파와 그 뒤에도 이은 잦은 부상으로 이전보다는 못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조던 헨더슨이 로저스 체제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엠레 찬까지 리버풀에 오면서 로저스 체제에서는 조 앨런과 함께 로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위치에 놓였다. 그나마 엠레 찬이 스리백의 스토퍼 자리에 놓이면서 출전이 줄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백업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2015/16 시즌 베식타스와 강하게 링크가 뜨며 리버풀을 떠나나 싶었으나, 헨더슨의 부상으로 급하게 출전한 아스널 전에서 메수트 외질을 틀어막고 나다니엘 클라인과의 여러 차례 협력 수비로 알렉시스 산체스도 막으면서 어떻게 잔류는 했다.
그리고 자신을 다소 어중간하게 기용하던 로저스가 경질되고, 후임인 위르겐 클롭 감독 부임 이후 잠시 주전으로 뛰었다. 클롭감독의 게겐 프레싱 전술의 특징 중 하나가, 양쪽 풀백의 오버래핑으로 생긴 수비 공백을 전문적인 볼위닝 미드필더가 채우는 것인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리버풀에는 엠레 찬 외에는 딱히 없었다[4]. 부상을 당한 사이 기동력 부족을 이유로 주전을 빼앗겼고, 이후에는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해서 나오는 경기가 많아졌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컵 결승에서도 센터백으로 풀타임을 뛰어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줬다. 다만 완전한 포지션 변경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4-0 대승을 거둔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중앙미드필더로 출전해 여러 차례 키패스를 찔러주고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보여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2.1. 2016-17시즌
16-17 시즌 개막 직전에도 이적 링크가 떴지만 잔류하였고,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 FC와의 경기에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제이미 바디의 골을 어시스트 하긴 했지만[5] 바디와 무사를 틀어막았고, 여러 차례 빌드업에 관여하면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11R 왓포드전 감기로 결장한 로브렌을 대신하여 선발출전했다. 경기 전에는 과연 루카스가 이갈로, 디니와의 제공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지에 관해 의구심이 있었으나 90분 내내 완벽한 수비력을 뽐내며 베테랑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줬다. 특히 과거 리그 탑 먹던 태클 실력은 여전하다.
이후 출전이 없다 본머스전에서 감기로 결장한 마팁 대신 로브렌과 파트너를 이뤄 센터백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마팁이 아닌 루카스와 짝을 이뤘던 로브렌이 한참 욕먹던 14-15 시즌으로 돌아간 듯한 처참한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는 대역전패.
레스터 시티와의 일전에서 센터백으로 또 다시 출전했으나, 제이미 바디에게는 스피드로 엄청나게 털리고, 나머지 선수에게는 피지컬로 밀리며 이것도 저것도 안되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에버턴전에서 오랜만에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본인의 포지션에서 뛰었을 때 얼마나 잘하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커팅, 태클, 빌드업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6] 3-1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랄라나, 헨더슨의 부재가 뼈아픈 리버풀로서는 큰 호재다.
33R WBA전에는 스토크전 변칙 전술 이후 포백으로 귀환한 위르겐 클롭 감독의 전술 하에 다시 한 번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되었는데, 잔실수가 조금씩 있었지만 빌드업도 안정적으로 수행했고 압박은 물론 중요한 태클을 많이 챙기며 리버풀의 수비가 크게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또한 세트피스 상황에서 제임스 밀너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 부근에 가깝게 붙인 공을 헤딩으로 넘겨주며 피르미누의 선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감초같은 활약을 펼쳤다.
35R 왓포드전 크로스로 엠레 찬의 오버헤드킥 골을 어시스트했다.
38R 미들즈브러전 이후 루카스가 10년 동안 헌신한 것에 대한 구단 차원의 감사인사가 이뤄졌다.
2.3. SS 라치오
17-18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리에A의 SS 라치오로 이적하게 되었다.[7] 루카스는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통해 리버풀 구단과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작별을 고했다. 팀동료들 역시 루카스에게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가자마자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유벤투스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라치오에서의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라치오에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리버풀 때에 비해 수비 커버 범위가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플레이하는 중이다.
이와중에 리버풀이 챔스에서 4강에 올라서 AS 로마와 격돌하자 올림피코에서 콥들이랑 같이 직관한다!!!는 폭탄선언을 내놨다. ### 그와중에 10년 전에 4강에서 자책골 넣으신 모 콥전드는 로마를 응원해야겠다는 망언을 했다. 거기에 리버풀이 로마전을 앞두고 라치오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라치오와의 중개역을 맡았다고 한다.[8] ###
시즌이 끝난후 리버풀 팬들의 몰표를 받고 라치오 팬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레이바의 활약 또한 좋았지만 같은 팀에 세리에 A 득점왕 임모빌레가 있었기에 리버풀 팬들의 몰표가 아니면 불가능한 수상.
2019-20 시즌에도 여전히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기동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지만 지난 시즌 팀에 합류한 호아킨 코레아가 앞선에서 상대의 플레이메이킹을 잘 차단하고 있는 덕을 봐 장기인 볼 탈취 부분에서는 여전히 견고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2.4. 그레미우 2기
2021-22 시즌을 마치고 2022년 6월 27일, 자유계약으로 친정팀 그레미우로 귀환했다. 계약기간은 2023년 12월까지.2022년 12월 13일, 프리시즌 정기 검사에서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겨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 #
이후 현지 시각 2023년 3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검사 후 은퇴를 해야함을 밝히며 은퇴를 결정했다. #
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U-20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팀의 주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2007년 남아메리카 유소년 챔피언쉽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대회에서 네 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같은 해에 열린 FIFA 청소년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갈 것이 기대되었으나, 다리 부상으로 대회 직전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이후 2005년 10월 쿠웨이트 리그 클럽인 알 쿠웨이트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국가대표팀간의 경기가 아니었던 관계로 FIFA로부터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고, 2007년 8월 22일 알제리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활약한 것이 공식 데뷔전으로 기록되었다. 그 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나,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반전에 퇴장을 당했고 팀은 0:3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2009년 8월 주제 클레베르손이 부상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낙마하자, 그 대체자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2010 FIFA 월드컵 당시에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월드컵 이후인 2010년 8월 10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다시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그 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했지만,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 퇴장을 당했고 팀은 0:0으로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에서 0:2로 패배해 탈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수비형 미드필더치곤 키도 크지 않고 신체도 오히려 왜소한 편에 가깝다. 그래서 상대가 피지컬로 짓누를 경우 종종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점점 경험과 연륜이 쌓여 가면서 이런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폭넓은 움직임과 지능적인 태클 능력으로 중앙을 든든히 잡아준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다소 과격한 태클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형적인 잉글랜드산 수비형 미드필더와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볼컨트롤도 그렇게 나쁘진 않고 전문 수미인 걸 감안하면 키핑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 번뜩인다고 볼 순 없지만 안정적인 패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이따금씩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 능력도 가지고 있어, 어시스트 스탯도 비교적 많은 편. 거기에다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답게 슛팅 능력도 뛰어나 멋진 중거리골을 넣은 적도 있다.그러나 리버풀에서 10시즌 동안 리그 1득점으로, 득점 능력 자체는 좋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리버풀에서의 10년 가까운 선수생활 동안 풀시즌을 치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잦다. 경기 잘 뛰다가 갑자기 부상 → 재활 → 경기 복귀 후 슬슬 폼이 올라온다 → 부상 → 재활 → 폼을 다시 슬슬....→ 시즌 끝. (...) 의 루틴이 계속되어, 풀 컨디션으로 뛴 경기는 그의 커리어 대비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루카스가 부상을 안당하더라도 풀시즌을 치를 만한 체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제기된다. 또한, 잦은 부상때문인지, 중앙/수비형 미드필더임을 감안하더라도 주력은 느린 편이다. 상대편을 한번 놓치게 되면 다시 따라잡는 경우가 잘 없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SS 라치오 (2017~2022)
- 코파 이탈리아: 2018-19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7, 2019
5.2. 개인 수상
- 볼라 데 오르: 2006
- 볼라 데 프라타: 2006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06-07
- 프리미어 리그 북서부 올해의 선수: 2010-11 #
- 리버풀 FC 올해의 선수: 2010-11
- SS 라치오 올해의 선수: 2017-18, 2018-19
6. 여담
-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이어가 가능하다.
- 리버풀 이적 초창기에는 같은 브라질 출신인 파비우 아우렐리우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어리버리한 플레이를 일삼던 입단 초창기의 선배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더니 2015년 여름 스티븐 제라드마저 떠나자 리버풀 최고참[11]이 되었다. 주장인 헨더슨과 밀너가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을 때 주장완장을 찬 것도 루카스 레이바.
-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상당한 리버풀 팬들이 루카스 레이바를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이적 후에도 자신의 SNS 계정은 리버풀 관련 사진들이 즐비해있고 인터뷰 등에서도 심심찮게 리버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입단 초기만 하더라도 부진한 플레이로 인해 홈 팬들에게 심하게 욕을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이다.[12] 후에 조던 헨더슨도 입단 초기에 엄청나게 욕 먹다가 지금은 평가가 높아진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현재의 헨더슨은 말년의 루카스처럼 잔부상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13]
- 루카스 레이바의 중재로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의 경기를 앞두고 리버풀 선수들이 라치오 훈련장인 포르멜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경기 전, 수요일과 목요일에 리버풀 선수진이 훈련장을 사용했다. 라치오가 로마와 라이벌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라치오 구단의 결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리버풀 팬들은 루카스 레이바의 중재에 상당히 고마움을 느끼는 중이다.
[1]
선수의 성인 Pezzini에는 이탈리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한다.
[2]
커리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작했다가 안정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고, 로브렌, 사코, 슈크르텔, 투레 모두 부상으로 쓰러진 2016년 초부터 센터백으로 출전하는 경기가 많기도 했다. 그러나 신장의 한계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3]
국내 한정으로, 이름을 불릴 가치가 없다며 루카스의 등번호인 21번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4]
클롭의 첫 풀타임 시즌인 16-17 시즌에는 헨더슨이 홀딩 자리에서 뛰긴 했지만 여전히 포백보호라는 역할을 맡는 데에는 의문부호가 남으며, 앨런은 공격적인 재능이 더 특출나지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찬이 비슷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만 찬은 이 당시 루카스의 파트너였고, 박스와 박스를 오가는 전천후 미드필더로 성장하고 있었다.
[5]
다만 미뇰레의 골킥이 박스를 나가기 전에 오카자키가 이미 박스 안으로 들어와 있었으므로, 반칙이 선언됐어야 했다.
[6]
패스 성공과 태클 성공, 클리어링 스탯은 팀내 최다였고, 패스 차단도 4회로 팀 내에서 상위권 스탯이었다.
[7]
이적료는 세부사항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500만 파운드로 추정된다.
[8]
참고로 라치오의 연고지는 AS로마와 같은 로마로, 라치오와 로마의 더비는 가장 격렬한 더비중 하나로 손꼽힌다. 리버풀은 이를 통해 원정 경기의 부담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9]
스페인 가수 레이바(본명 호세 미겔 코네호 토레스)가 이 사람을 보고 레이바란 이름을 예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10]
애초에 어머니의 성씨인 페치니가 이탈리아계 성씨다.
[11]
정확히는 리버풀 생활 짬밥 기준. 연배로 따지면
마르틴 슈크르텔이나
콜로 투레,
제임스 밀너 등도 있었다.
[12]
사실 이 시기에도 루카스가 부진했던 이유는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 크다. 당시의 루카스는 꽤 나이가 어린 선수여서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크다.
[13]
사실 헨더슨도 루카스 못지 않게 큰 부상을 많이 겪었다. 또한 하드워커적인 플레이 스타일 덕에 잔부상이 생긴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