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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반 페르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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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빈 반 페르시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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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시절. 뒷줄 왼쪽에서 3번째가 반 페르시다.[1]
자국 고향 클럽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SBV 엑셀시오르에서 유스 생활을 시작했으며, 16세가 되는 해에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옮긴 후 그 곳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클럽 안팎으로 사고를 일으키고[2] 당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2004년 아스날 FC로 쫒겨나듯이 이적했다.[3][4]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악동으로 유명했고 아스날 또한 처음에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지 않나 우려를 했으나 스카우트 팀의 책임자 스티브 로울리가 주도면밀하게 장기간 관찰하면서 오히려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파악해서 싼 가격에 영입했고, 대박을 쳤다. 이적료가 2.75m 파운드였다. 참고로 박주영의 이적료가 3m 이었다. 갓성비

당시 페예노르트와 부산의 친선경기에도 출전했는데 팀은 4-1로 졌지만 반 페르시는 프리킥으로 팀의 유일한 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3. 아스날 FC

아스날로 이적하고 나서도 불같은 성격은 어디가지 않아 피치 위에서 선수들과 자주 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며[5], 여성 강간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기도 했지만 꽃뱀이었다. 다행히도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지원과 그의 우상인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같은 멘토들의 도움[6]으로 안정을 되찾으며 기량을 발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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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개그 움짤이 나돌 정도로 오른발이 의족스러웠으나 2009-2010 시즌부터 갑자기 각성했는지 오른발로도 왼발같은 캐논슛을 종종 만들어낸다. 다만 이번엔 본디 주족인 왼발에서 삑사리가 나는게 에러였다.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오프 더 볼 무브먼트가 좋지 않아 경기 내내 잠수하다가도 찬스가 오면 날카로운 피니쉬로 득점하는, 한 방을 지닌 스나이퍼같은 스타일에 가까웠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계가 좋아지는게 점점 베르기화 되고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제2의 데니스 베르캄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릴때부터 축구선수에게 최고의 덕목인 극상의 퍼스트 터치 능력을 갖춘 공격수였고 기량이 늘면서부터 공간 및 동료를 활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결국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베르캄프의 10번을 물려받았다. 진즉에 2006-2007 시즌에 앞서 구단에게 10번을 다는게 어떻냐는 제의를 받았었지만 거절한 후[7] 베르캄프가 아스날에서 10번을 단 나이가 되자 10번을 달았다. 이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레알 진성 베르캄프 덕후. 베르캄프가 현역이던 05-06시즌만 해도 훈련 사진에 베르캄프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쫄래쫄래 따라나니는 로빈 반 페르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때는 레알 양아치 소리를 계속 듣던 시절이었다.

2008-2009 시즌 이후 아데바요르 아스날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에이스 스트라이커로써 활약하게 되었으며, 2009-2010 시즌 초반 리그 12경기에서 7골-7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시즌 중반에 가진 A매치 이탈리아전에서 부상을 입고 거의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2009-2010 시즌 이후 선수로써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을 잘 당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경기에 나올 때의 모습은 확실한 에이스 스트라이커이다. 실질적으로 주득점원과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맡기 시작한 2009-2010시즌 이후로는 연계능력과 더불어 득점력까지 확실히 갖춘 모습. 아스날 팬들이 '시즌 풀 페르시'에 대한 기대를 다시 한 번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의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며 준우승에 기여했으나 눈에 보이는 활약이 큰 편은 아니었다.

2010-2011 시즌에는 역시나 시즌 초 상대 선수의 태클에 의해 두 달짜리 부상을 끊고 쉬고 있다가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야 복귀했다. 한 동안 골은 커녕 스탯을 쌓지 못해 애를 먹었다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4경기출전 14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과연 팬들이 '부상만 안 당한다면...'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펼친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기적같은 동점골을 넣기도 하였으나 2차전인 원정 경기에서 어이없게 퇴장을 받는 바람[8]에 주포가 없어진 아스날은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탈락하게 된다. 퇴장당할때 굉장히 억울해했고 그 이후로 FC 바르셀로나를 싫어하고 있는듯.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 이겨라'라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2010-2011 시즌 전반기는 부상으로 날려먹었지만 복귀 후 리그를 반만 뛰고도 18골을 넣었다. 특히 원정 경기 9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을 썼다. 다만 막판에 아스날 FC의 폼이 말이 아니라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후반기에 팀이 완전히 붕괴된 와중에 혼자서 골을 넣어가며 팀을 이끌었었다.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했었다. 이적루머도 적은 편이며, 가끔 아스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기가 아스날에서 뛰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아스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어차피 프로 축구선수니까! 처음 아스날에 입단할 때만 해도 개인 플레이 위주에 그라운드 안밖에선 상양아치가 따로 없었지만 멘토(아르센 벵거, 베르캄프 등)들의 존재,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 등에 영향을 받았는지 어느새 팀의 리더로 성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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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경기 132골 33도움

3.1.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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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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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경기 58골 15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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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페네르바흐체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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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15-16 시즌

이번 시즌 거침없이 분노의 영입 스킬을 시전하던 페네르바흐체 SK와 합의하여 7월 14일에 15,000여명의 페네르바흐체 서포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년 계약에 서명했다.

마침 맨유 동료였던 루이스 나니 역시 다가오는 시즌을 페네르바체에서 보내게 되었기에 두 선수의 활약상을 기대하고 응원하도록 하자.

2015년 10월 페네르바체에서의 근황이라면 근황으로 알려진 모습이 벤치에서 동료의 골에도 기뻐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앉아 있고 승리 후 페레이라 감독과 악수를 나눌때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대하고 있다. 이는 현 소속팀에서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고 교체로 등장하는데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본인도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맨유에 있을때부터 기량 하락이 있긴 했지만 아예 팀의 전력에서 제외당할 정도는 아니며, 그보다는 감독의 전술상 맞지 않아서 경기 출전 시간이 적은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와중에 터키의 어느 언론에서는 겨울 이적 시장때 첼시가 팔카오를 페네르바체로 보내고 반 페르시를 데려갈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1월 들어 뜬금 없이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에 이적설이 떴다. 연봉은 76억을 준다고. 최강희 감독이 이전 시즌부터 빅네임 스트라이커 영입을 구단에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고[9] 구단 프런트도 적극적으로 영입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가능성이 적지만 현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재력을 생각해 보면 마냥 불가능 한 것 도 아니라 전북과 국내 축구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전북 구단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반 페르시 영입설을 극구 부인했다. 기사

시즌 종료 후 리그에서 29경기에 출전하여(11번 교체투입) 16골을 기록하여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였다. 컵대회에서도 4골을 기록하였지만 유로파리그에서는 1도움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프리시즌 현재 웨스트햄, 크리스탈 팰리스와 연결되고 있다. 페네르바체의 회장도 반 페르시의 판매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어쩌면 판 페르시의 모습을 16-17시즌에 EPL에서 다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5.2. 2016-17 시즌

하지만 무수했던 이적설과는 다르게 결국 페네르바체에 잔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등번호를 11번에서 10번으로 변경하였다. #

한편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추첨 결과 페네르바체가 반 페르시 자신의 친정팀들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같은 조에 배정되었다. 반 페르시 입장에서는 본인의 유년기를 보냈던 팀, 전성기를 누렸던 팀과 같은 조에 배정된 셈.[10]

10월 21일 맨유와의 유로파 리그 원정에서 맨유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으며 팀이 0-4로 끌려가던 경기 막판에 만회골을 넣었다. 그럼에도 맨유팬들은 반 페르시에게 박수를 보내주었으며 반 페르시 역시 박수로 화답하였다.

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기

2018년 1월 19일,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페네르바체에서 친정팀인 페예노르트로 복귀했다. 2월 28일 자신의 커리어 300번째 골을 터트렸고, 2017-18 KNVB 베이커 결승전 AZ 알크마르와의 경기에서 추가골을 넣어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8-19 시즌에는 사우디 리그 알 이티하드 FC로 이적한 카림 엘 아마디에 이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많은 나이로 인해 노쇠화되었지만 여전한 플레이메이킹으로 공격수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한다.
파일:반페 은퇴.jpg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 후 페예노르트 소속으로서 은퇴식을 마침으로서 그의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


[1] 바로 오른쪽에 송종국의 모습도 보인다. [2] 밤놀이가 원인으로 지각상습범이었고, 인터뷰에서 팀내 사정을 너무나도 간단히 누설해버리거나 과격한 언행을 선보이는 등으로 매스컴의 환대를 받았다. [3] 그 당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이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그래도 과거는 과거일 뿐, 판 마르베이크 체제의 네덜란드 주축 선수이며 경기 외적으로도 이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4] 당시 PSV 아인트호벤과 먼저 협상이 진행 중이고 계약서 사인만 남은 단계였는데, 아스날이 끼어들어 PSV에 '난 아스날 간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5] 맨유를 상대로 데뷔했는데 그 경기에서 앨런 스미스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6] 반 페르시 본인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은 콜로 투레였다. 먼저 다가와서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많이 써 줬다고 한다. [7] 반 페르시가 거절한 10번은 결국 수비수인 윌리엄 갈라스가 받았다. 당시 갈라스는 3번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본인이 3번을 거절했기 때문에 남은 10번을 받은 것이었다. [8]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vs 이탈리아 경기의 다미아노 토마시처럼 호각이 울렸는데도 무시하고 골망을 흔들었다가 심판 판정 불복으로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심판이 제대로 룰을 적용했을 뿐이지, 오심이 아니다. [9] 금액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디디에 드록바를 영입하려 했었다. [10] 본인도 감회가 새로운지 자신의 SNS에 기대감을 표출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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