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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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로베르토 로페스 우파르테 Roberto López Ufa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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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4월 19일 ([age(1958-04-19)]세) | |||
모로코 페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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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70cm / 체중 62kg | |||
직업 | 축구선수 ( 윙어, 스트라이커, 세컨드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 레알 우니온 | ||
선수 |
레알 우니온 (1974~1975) 산세바스티안 CF (1975~1976) 레알 소시에다드 (1975~198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87~1988)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1988~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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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레알 소시에다드 B (2000~2001) | |||
국가대표 | 15경기 5골 ( 스페인 / 1977~19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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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등번호 |
스페인 대표팀 - 11번 레알 소시에다드 - 11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1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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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el pequeño diablo (소악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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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선수.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냐 출신인 우파르테의 부모님은 일자리를 찾아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스페인령 모로코로 이주했고 그렇게 우파르테는 스페인이 아닌 모로코의 페스에서 태어났다.1966년 우파르테와 그의 가족은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바스크 지방의 이룬(Irun)에 정착했다. 우파르테는 라스베가스라는 작은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이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구 클럽인 레알 우니온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1974-75시즌 16세에 레알 우니온 1군에 데뷔하면서 3부 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데뷔 시즌에 바스크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레알 소시에다드와 계약했지만 소시에다드는 우파르테의 미래를 생각해 바로 1군에 합류시키지 않았고 레알 우니온과 소시에다드의 리저브 팀인 산세바스티안 CF에서 경험을 쌓게 했다.
1975-76시즌 1군에 합류하여 라리가 11라운드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바스크 더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라 레알에서의 첫 시즌은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두 번째 시즌인 1976-77시즌부터는 주전 레프트 윙 자리를 꿰찼고 리그 4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의 데뷔골을 시작으로 리그에서 총 7골을 넣었다. 이 시즌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기 시작했고 그 다음 시즌인 1977-78시즌에는 더욱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내며 커리어 첫 리그 두 자릿수 득점(11골)을 기록했다. 1978-79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는 등 리그에서 총 12골을 넣어 소시에다드가 리그 4위를 차지하여 UEFA컵 진출권을 확보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 다음 시즌인 1979-80시즌에도 10골을 넣는 활약으로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1980-81시즌과 1981-82시즌에도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소시에다드가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를 이겨내고 구단 역사상 최초의 라리가 우승 및 라리가 2연패를 달성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1981-82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인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바스크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어 소시에다드가 바르셀로나를 승점 2점 차이로 제치고 2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
이후에도 1982-83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쐐기골을 넣어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고, 1986-87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경기 시작 9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등 변함없이 꾸준한 활약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12시즌 동안 총 474경기에 출전하여 129골을 기록했다. 이는 구단 역대 최다 출전 순위 6위[2]와 역대 최다 득점 2위[3]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986-87시즌 종료 후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헤수스 힐 회장이 새로이 취임하면서 클럽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야심차게 새로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었는데 10시즌 이상 라리가 정상급 윙어로 활약한 우파르테 또한 그 영입대상 중 하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데뷔전부터 데뷔골을 넣었고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는 등 시즌 초반부터 중반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포지션이나 플레이 스타일상 파울로 푸트레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점점 소시에다드 시절만큼의 퍼포먼스는 보여주지 못했고 팀내 입지도 줄어갔다. 결국 시즌 말미에 메노티 감독이 떠나자 우파르테도 1987-88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1988-89시즌 존 토샥 감독의 레알 소시에다드 복귀 권유를 거절하고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로 이적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시즌 절반 가량을 날렸고 시즌 종료 후 31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모나코에서 열린 청소년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파르테의 플레이를 보고 감명받은 레니에 3세가 우파르테에게 작은 악마(Le petit diable)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이후에도 줄곧 작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1976년 헝가리에서 개최된 UEFA 주니어 토너먼트에서 3골을 넣어 스페인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77년 9월 21일에 치러진 스위스와의 친선전에 선발 출전하면서 스페인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데뷔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이후 라슬로 쿠발라 감독은 우파르테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엔트리에서 제외시켰고, 1979년부터 다시 기용하기 시작했다.
1981년 10월 14일에 치러진 1982 스페인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룩셈부르크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3:0 완승을 이끌었다.
1982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여 1차 조별리그 첫 경기인 온두라스전에서 동점골을 넣어 스페인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했으나 이후 2경기에서는 실망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2차 조별리그부터는 주전 자리를 내줬다.
월드컵이 끝나고 새로 부임한 미겔 무뇨스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CF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개편했고 우파르테는 더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3. 은퇴 후
레알 소시에다드 코치, 레알 소시에다드 B 감독, 레알 우니온 단장직을 역임했고, 축구 전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4. 대회 기록
- 레알 소시에다드
- 라리가: 1980-81, 1981-82
- 코파 델 레이: 1986-8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982
[1]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바르셀로나와 승점이 동률이 되었다면 우승은 골득실이 높은 바르셀로나에게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2]
알베르토 고리스(599경기), 후안 안토니오 라라냐하(589경기),
헤수스 마리아 사모라(588경기),
루이스 아르코나다(551경기),
미겔 푸엔테스(495경기)에 이은 6위
[3]
헤수스 마리아 사트루스테기(162골)에 이은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