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레지널드 드 던스턴빌 Reginald de Dunstanvil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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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110년경 ~ 1175년 7월 1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버크셔 레딩 | |
아버지 | 헨리 1세 | |
어머니 | 알세스터의 시빌라 코벳 | |
형제 | 시빌라, 윌리엄, 군드레드, 로헤세 | |
배우자 | 베아트리체 피츠윌리엄 | |
자녀 | 니콜라스, 존, 엠마, 데니스, 모드, 우르술라, 시라, 헨리( 사생아) | |
직위 | 초대 콘월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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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초대 콘월 백작. 무정부시대에 마틸다의 편에 서서 스티븐 왕과 대적했다.2. 생애
1110년경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이자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인 헨리 1세와 알세스터 영주 로버트 코벳의 딸인 알세스터의 시빌라 코벳의 사생아로 출생했다. 형제로 시빌라[1], 윌리엄 콘스타블, 군드레드[2], 로헤세[3]가 있었다. 어머니 시빌라 코벳은 나중에 잉글랜드 내각 장관 허버트 피츠허버트와 결혼했다. 레지널드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노르망디 연대기 작가 주미에주의 기욤의 연대기 <노르망디 공작의 행적>(Gesta Normannorum Ducum)을 덧붙인 익명의 작가는 그가 영지를 제공받지 못한 헨리 1세의 자식들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1138년 무정부시대가 발발했을 때, 그는 이복누이인 마틸다를 지지했다. 이후 마틸다를 지지하는 군대의 사령관 글로스터의 로버트 휘하에 들어갔고, 1141년 콘월의 광범위한 영지 상속자인 베아트리체 피츠윌리엄과 결혼해 잉글랜드 남서부에서 스티븐 왕에 대항하는 반란을 이끌었다. 리치먼드 백작 알란 드 팡티에브르가 스티븐 왕의 지시에 따라 콘월을 공격해 레지널드가 버티는 론서스턴 성을 제외한 콘월 대부분을 장악하고 콘월 백작을 칭하는 악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1141년 2월 2일 링컨 전투에서 패배한 스티븐 왕이 생포된 뒤 콘월을 회복했다. 그 후 여왕에 추대된 마틸다는 그에게 콘월 백작이라는 칭호를 곧바로 부여했다.
1141년 8월 윈체스터 전투에 참여한 그는 적에게 포위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9월 14일에 탈출할 때 정예병으로 구성된 선봉대를 이끌고 앞서 가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마틸다가 무사히 빠져나오는 데 일조했다. 1141년 9월 스티븐 왕이 권좌를 되찾은 뒤 레니널드의 영지와 주권을 박탈했다. 다만 콘월은 스티븐 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몰수령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 후 더 이상의 군사 활동을 하지 않고 자기 영지를 관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140년대 중반, 내전의 향방은 스티븐 왕에게 점점 기울었다. 이에 마틸다의 지지자 다수는 스티븐을 왕으로 인정하고 저항을 포기했다. 글로스터의 로버트의 아들인 필립도 대세에 따르기로 하고, 레지널드와 그의 아내를 기습해 체포한 뒤 스티븐 왕에게 넘겼다. 하지만 기사도에 충실하기로 유명했던 스티븐 왕은 비열한 방식으로 이득을 챙길 수 없다며 몸값도 받지 않고 그들을 풀어줬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레지널드는 스티븐 왕과 화해했고, 스티븐으로부터 콘월 백작 작위를 인정받았다. 1153년 스티븐 왕과 마틸다의 아들 헨리 플랜태저넷 사이의 협상에서 중재자로서 활동했으며, 이는 월링포드 조약 체결로 마무리되었다. 무정부시대는 이 조약으로 종식되었다.
1154년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헨리 2세는 레지널드를 콘월 백작으로 인정했으며, 1173년 데본의 보안관으로 선임했다. 레지널드는 콘월 요새를 포함해 잉글랜드 남서부 대부분을 통제했으며, 자기가 소유한 영토 내에서 상당히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렸다. 그는 무역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으며, 잉글랜드 최남단 도시인 트루로 주민들을 콘월의 무역 관세 및 수수료로부터 해방시켰다. 1173년 레지널드가 발행한 헌장에는 "카운티의 모든 사람들, 잉글랜드인과 콘월인"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는데, 이는 콘월의 두 민족이 계속해서 인종적, 법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1175년 7월 1일에 사망했고, 레딩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이자 상속인인 존은 콘월 백작 직위를 계씅했지만 같은 해 또는 그 직후에 사망했고, 레지널드의 영지는 부분적으로 그의 남은 딸들에게 분할되었고, 나머지는 잉글랜드 왕실에 돌아갔으며, 콘월 백작이라는 칭호 역시 회수되었다. 이후 잉글랜드 남서부에 있는 레지널드의 성은 헨리 2세의 아들인 존에게 주어졌다.
3. 가족
- 베아트리체 피츠윌리엄: 카르디넴 남작 윌리엄 피츠리처드의 딸.
- 니콜라스 피츠레지널드(? ~ 1175년 이전)
- 존 피츠레지널드(? ~ 1175년 7월 1일 이후): 제2대 콘월 백작.
- 엠마(? ~ 1208년 이후): 라발의 영주이자 렌 자작 기 4세의 부인.
- 데니스(? ~ 1162년 이후): 제2대 데본 백작 리처드 드 레비에르의 부인.
- 모드(? ~ ?): 묄른 및 우스터 백작 로베르 2세 드 묄른의 부인.
- 우르술라(? ~ ?): 캐스콤브의 기사 월터 드 던스던빌의 부인.
- 사라(? ~ 1216): 리모주 자작 아데마르 5세의 부인.
- 조앤(? ~ 1150): 콘월의 트레마톤 남작 랄프 드 발레토르의 부인.
- 베아트리스 드 보(? ~ 1175년 이전): 길스랜드 남작 위베르 1세 드 보의 딸. 레지널드의 정부. 훗날 더시벼의 호슬리 남작이자 순회판사 윌리엄 브루어의 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