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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13:03:22

메지로 목장

레이크 빌라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설립 이전2.2. 설립과 초창기2.3. 황금기2.4. 쇠락기2.5. 해체와 레이크 빌라 팜으로의 계승
3. 주요 생산마
3.1. 메지로 목장 다테시 생산마3.2. 메지로 목장 도야코정 생산마3.3. 레이크 빌라 팜 생산마
4. 주요 보유마5.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メジロ牧場

1. 개요

유한회사 메지로 목장(有限会社メジロ牧場)은 일본 경마의 전 생산자 마주(오너-브리더)로, 메지로 티탄 메지로 라모누를 시작으로 메지로 라이언, 메지로 맥퀸, 메지로 파머, 메지로 도베르를 비롯해 일본 경마의 80~90년대를 수놓았던 수많은 명마들을 생산, 보유했던 곳이다.

보통 경마산업에서 생산자는 목장에서 직접 말을 교배, 생산하며, 마주가 생산자로부터 말을 구매해 경주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메지로 목장은 생산한 말을 판매하지 않고 직접 보유하여 경주에 나가는 오너-브리더의 형태로 운영되었다.[1]

오너-브리더 활동 외에도 주식회사 메지로 상사의 이름으로 마주 활동을 했으며, 메지로 상사의 이름으로 보유했던 대표적인 말들이 나베카케 목장 생산마인 메지로 무사시, 그리고 요시다 목장[2] 생산마인 메지로 듀렌 메지로 맥퀸. 그 외에도 메지로 보사츠나 메지로 팬텀 등 가족들이 개인 명의로 소유한 말들도 있었다.

메지로 목장의 상징은 흰색 바탕, 초록색 가로줄, 초록색 세로 줄무늬 소매 「白、緑一本輪、緑袖縦縞」의 승부복으로, 메지로 상사의 경우 소매가 세로 줄무늬 대신 초록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요시다 목장 출신인 메지로 맥퀸의 기수 승부복은 파머나 라이언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사마- 티탄- 맥퀸 천황상 직계를 포함해 장거리 혈통 육성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G1 승리가 3200m 천황상, 3000m 킷카상, 2500m 아리마 기념 등 중장거리 레이스였고, 다른 그레이드 역시 3000m 한신대상전 등 3000m 내외의 장거리에서 승리한 강한 체력의 말들이 많았다. 다만 장거리 잔디 레이스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고, 장애물 경주의 최상급 레이스인 나카야마대장애물과 나카야마그랜드점프에서 7승을 거두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메지로 안타레스와 메지로 머스킷은 JRA상 최우수 장애물 말에 선정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수많은 G1과 장애물 중상 승리와 중상마, 두 마리의 현창마(라모누, 맥퀸)까지 배출했지만 2011년 해체될 때까지 연도대표마로 선정된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3] 또 의외로, 목장이 망할 때까지 사츠키상과 도쿄 우준( 일본 더비)에서 승리한 적도 없었다.[4]

코에이의 경마 게임 위닝 포스트 시리즈에서는 메이지 목장(メイジ牧場)[5]이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2. 역사

2.1. 설립 이전

파일:메지로 오 더비.jpg

키타노 건설의 창업자인 키타노 토요키치는 1936년 부터 마주 사업을 시작했고 전후 경제성장기를 타고 건설업에서 크게 성장했다. 키타노 토요키치가 개인 마주로 구입했었던 메지로 오(メジロオー)는 키타노의 자택이 있던 도쿄도 토시마구의 메지로(目白) 초초(町丁)에서 따온 이름을 처음 단 경주마다. 메지로 오는 최외곽인 32번을 배정 받고도 1961년, 28회 일본 더비에서 정말 아깝게 코 차이로 사진 판정 끝에 하쿠쇼(ハクショウ)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하였다.[6]

그런데 이 경기에서 하쿠쇼의 승리로 판정된 것은 마주의 차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쿠쇼는 하쿠료[7](ハクリヨウ), 하쿠치카라 같은 명마들을 소유했던 마주 니시 히로시이고 메지로 오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경주마를 가져보지 못한 무명의 마주여서 졌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키타노 토요키치는 메지로의 이름으로 일본 제일의 마주가 되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2.2. 설립과 초창기

나쁘지 않은 마주의 시작을 보낸 키타노 건설의 키타노 토요키치는 1967년 홋카이도 다테시에서 메지로 목장이 설립하게 된다. 목장 이름은 키타노 건설 본사가 위치했던 도시마구의 지명 메지로(目白)[8]에서 유래했다. 이후 1971년 아부타군 도야코정에 분장을 냈다.

초창기의 대표적인 보유마는 1970년 천황상 우승을 차지한 메지로 아사마와 1971년 천황상 봄 타카라즈카 기념을 우승한 메지로 무사시가 있으나 아사마는 심볼리 목장의 생산마였고, 무사시는 나베카케 목장의 생산마였다.

이후 1977년 목장 인근의 화산인 우스산이 폭발, 목장 전체가 화산재에 뒤덮일 정도의 피해를 입었으나 이미 깔아둔 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목장을 이사하는 대신 수습해서 재건하는 방향을 택했다. 실제로 화산재가 토양의 비옥도를 올려준 덕분에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았다고.

부활에 성공한 메지로 목장은 1982년에 처음으로 자체생산마가 8대 경주[9]에서 승리하는데, 이 말이 바로 1982년 천황상 가을[10]에서 우승한 메지로 티탄이었다.

이때 메지로 아사마는 현역 시절 독감에 걸려 항생제 치료를 했던 것으로 인해 사실상 불임에 가까웠는데, 토요키치는 "반드시 아사마의 자식으로 천황상을 제패하겠다"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수의사가 아니다!)를 대동한 끝에 21마리의 자마를 보았고, 그 중 하나가 메지로 티탄이었던 것.

이후 토요키치는 " 티탄의 자식으로 천황상을 제패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84년 세상을 떠났고, 메지로 목장은 그의 부인인 키타노 미야가 이어받았다. 업계에서 소위 메지로 여사님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외경의 존재였던 그녀는 남편의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카리스마적으로 목장을 지휘하며 믿을만한 사람들을 양옆에 두어 경영을 이어갔다. 운영의 이와사키 노부미치 전무와 생산과 육성을 도맡은 다케다 시게오 수의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특히 다케다 시게오는 천황상을 이긴다는 목표에 걸맞게 메지로 특유의 스테이어 배합을 주도한 목장의 두뇌였고, 그가 혈통배합한 세대가 점차로 무대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스테이어의 산실로서 메지로 목장의 전성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2.3. 황금기

토요키치의 의지가 이어졌는지, 80년대 초중반부터 메지로 목장에서 태어난 수많은 말들이 레전드급 활약을 보이기 시작한다.

1981년 데뷔한 뒤 1983년 장애물 경주로 전향한 메지로 안타레스는 1984년 연말의 JG1 나카야마대장애물(나카야마다이쇼가이) 가을에서 1착, 매년 꾸준히 큰 경주에서 입상권에 들다가 마침내 은퇴 시즌인 1987년 JG1 나카야마대장애물 봄에서 1착을 기록하며 봄/가을을 모두 제패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1986년에는 메지로 라모누(メジロラモーヌ)가 오카상, 오크스, 엘리자베스여왕배를 우승하며 사상 최초의 암말 삼관[11]을 달성했고, 이듬해 JRA 현창마로 선출되었다.

또 요시다 목장 생산마인 메지로 듀렌이 1986년 킷카상과 1987년 메지로 목장의 첫 번째 아리마기념을 우승하며 마주로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다.

1987년에는 무려 세 마리의 G1 우승마가 태어나는데, 이들이 바로 메지로 파머, 메지로 라이언, 그리고 메지로 티탄의 아들 메지로 맥퀸이다. 이 중 파머와 라이언은 메지로 목장의 자체생산마고, 맥퀸은 메지로 듀렌과 같은 요시다 목장에서 태어났다.

파머와 라이언은 1989년 데뷔한 뒤 초기에는 특출난 성적을 내보이지는 못했으나, 1991년 라이언이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우승했고, 파머 역시 1992년 화려하게 부활해 1992년 춘추 그랑프리( 타카라즈카 기념, 아리마 기념)를 연패, 최우수 5세 이상 숫말에 선정되며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한편 맥퀸은 1990년 데뷔해 킷카상을 우승하고, 1991년 천황상 봄을 제패하며 아사마-티탄-맥퀸으로 이어지는 부자 3대 천황상 제패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일본 경마 역사의 최대 위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천황상에 집념을 보였던 설립자 키타노 토요키치의 강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그의 아내이자 당시 메지로 목장 대표 키타노 미야는 맥퀸의 우승 순간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맥퀸은 이후에도 천황상 봄 2연패와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을 기록하며 메지로의 두 번째 JRA 현창마가 되었다.

이 시기 메지로 목장의 지명도는 그야말로 생산자들의 얼리어댑터라는 평을 받으며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창업 시기부터 가꿔온 혈맥에 매진하며 인브리드와 닉스 등을 꼼꼼히 연구해온 농장 스태프들의 연구는 이쯤에서 빛을 보게 된다. 스테이어x스테이어 배합으로 일컬어지는 메지로 배합 스타일은 철저하게 만성형 고마를 양산하기 위한 것으로, 100% 승리 상금에 기초해 운영되는 목장의 여건상 클래식에 늦더라도 길고 오래 활약하며 승수를 추가해줄 수 있는 경주마를 생산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하고 있었고 그 가장 큰 성과가 메지로 맥퀸이었다. 파솔론계의 메지로 아사마와 리맨드-bms 힌도스탄의 메지로 오로라의 배합은 당시 8년 연속 리딩 사이어를 독차지하던 유행 종마 노던 테이스트의 흐름과는 일절 관계없는 순수한 스테이어의 배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피드형 단거리 혈통을 보충하면 클래식에 도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다케다 시게오는 이런 말과 함께 메지로 라이언으로 대변되는 다른 조류를 거세게 반대했다.
유전의 패턴상 단점이 전해지기 쉬운 법입니다. 그러니까 장거리계에 단거리를 붙이면 거리적성은 짧은데 스피드도 모자란 말이 태어날 가능성이 더 높지요. 장거리 혈통에 장거리 혈통을 끼워맞추고 더욱 스태미나를 강조하게 됩니다.
경마 최강의 법칙·경마에 꿈을 꾸는 사람들 中

이처럼 메지로이즘을 강하게 주장하며 스테이어 배합을 밀어붙이던 다케다 이사오는 1995년 별안간 메지로를 떠나 자신의 목장 다케다 스테이블을 설립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와 함께 찬란했던 메지로의 영광도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2.4. 쇠락기

90년대 중후반 엘 콘도르 파사 그래스 원더와 같은 외산말들이 일본 경마를 휩쓸기 시작하고, 95년 이래 시작된 선데이 사일런스계 자마(이른바 "샤다이계")들의 대활약으로 일본산마와 자체 혈통을 위주로 경주마를 생산해온 메지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12]

이후 메지로 라이언의 피를 이어받은 메지로 도베르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암말 G1을 쓸어담으며 여왕으로 군림했고, 메지로 목장의 마지막 영광을 빛냈다.

메지로 숫말의 마지막 영광을 누린 건 메지로 브라이트로, 아버지 메지로 라이언과 외조부 마루젠스키의 혈통을 이어받아 데뷔 시즌부터 G2 데일리배 2착, G3 라디오탄파배 1착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고, 1997년에는 클래식에서 4착-3착-3착으로 아쉬운 성적을 냈으나 G3 1승과 G2 1승을 추가했다. 이후 1998년 G2 한신대상전을 승리하고, G1 천황상 봄에서 스테이 골드를 누르고 우승하면서 메지로 맥퀸 이래 첫 천황상 봄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어진 98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게이트 난동으로 11착을 기록한 뒤 항상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999년까지 꾸준히 G2와 G1 레이스에 출주하며 춘추 천황상 연패와 천황상 봄 연패도 노려봤으나, 하필 동시대의 라이벌들이 사일런스 스즈카[13], 세이운 스카이[14][15], 그래스 원더[16], 스페셜 위크[17] 같은 거물들이라 1999년 G2 닛케이신춘배 우승을 추가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1999년에는 메지로 파라오가 장애물 레이스인 JG1 나카야마빅점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잔디의 숫말들은 여전히 샤다이계 경주마들에게 밀려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메지로가 아예 샤다이계 경주마를 도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니치도 아라시(ニチドウアラシ)를 시작으로 샤다이계 종마 신디케이트에 가입했고 아그네스 타키온 킹 카메하메하 등 당대의 인기 종마들과 접촉을 시작했다. 정작 메지로의 샤다이계 경주마들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 시기 다케다가 떠난 이후 홀로 남은 이와사키 전무는 G1마의 생산보다 미승리마를 줄이는 것이 목장의 경영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표했다. 시대적인 한계가 분명했던 것이, 버블검 펠로우의 3세 천황상 승리에서도 엿보이듯 시대는 점차로 장거리를 외면하고 클래식 디스턴스의 흥행에 몰입하고 있었다. 외산마의 클래식 제한도 해제되고 있었고 JRA의 흥행 약화로 각종 수당과 상금이 줄어들던 추세도 한몫했다. 그는 메지로 목장의 홈페이지에 직접 '일반적인 마주들은 상금이 떨어져 채산이 나오지 않으면 본업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메지로 목장은 상금을 벌지 못하면 경영을 이어갈 수 없다. 가혹한 현실이 닥쳐오면 꿈을 쫓아가는 것보다도 난국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고 적으며 이러한 경영방침을 이어갔다.
2000년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
메지로의 샤다이계 경주마 중 처음으로 중상전 승리를 기록한 말은 2000년 G1 아사히배3세스테이크스(현 아사히퓨쳐리티)를 우승한 선데이 사일런스계의 메지로 베일리(メジロベイリー)였다. 정글 포켓, 쿠로후네, 아그네스 타키온 등 2000년의 (구)3세 강자들은 G3 라디오탄파배3세스테이크스(당시 한신 2000m, 현 나카야마 2000m G1 호프풀S)로 불참하며 라인업 면에서 유리했던 점도 있었으나, 이때의 승리로 메지로 베일리는 2000년 JRA상 최우수 3세 숫말로 선정되며 기대를 모았다. 선데이 사일런스-BMS 마루젠스키의 배합은 스피드X스피드 배합으로 메지로의 적통과는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그런 베일리가 일군 가능성은 목장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후 클래식을 준비했으나 1년 이상 휴양하면서 3세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었고, 2002년 2월에 복귀하지만 굴건염으로 은퇴한다. 희망은 그렇게 저물었다.

결국 베일리의 아사히배 우승은 메지로의 마지막 G1 우승이 되었고, 마지막 중상전 우승은 2006년 메지로 마이어의 G3 고쿠라대상전이 되었다.

2.5. 해체와 레이크 빌라 팜으로의 계승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에 우스산이 또 다시 폭발하며 타격을 입었고, 1977년과 마찬가지로 화산 폭발 자체는 극복해냈으나 상술한 대로 90년대 말부터 이어진 생산마들의 성적 하락으로 점차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생산자들과 달리 생산마를 판매하지도 않으니 경주 성적 하락이 그대로 경영에 타격이 된 것.

결국 동일본대지진으로 경마산업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2011년 4월 26일, 경마산업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출주는 2011년 5월 15일 니가타 제4레이스 3세 미승리전으로,메지로 목장의 유력마들 중 하나인 메지로 도베르의 손녀에 해당되는 메지로 코우묘(メジロコウミョウ)가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11년 5월 20일부로 메지로 목장 법인이 해체되었고, 샤다이 그룹의 도움을 받아[18] 메지로 목장 소유의 토지와 목장 시설, 그리고 경주마까지 전부 이와사키 노부미치 메지로 목장 전무이사가 인수하여 레이크 빌라 팜으로 재설립했다.[19] 이와사키 노부미치는 레이크 빌라 팜 대표가 되었고, 홈페이지에서도 "메지로의 토지와 말, 그리고 말 생산자로서의 정신은 레이크 빌라 팜이 이어받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너-브리더였던 메지로와는 달리 레이크 빌라 팜은 생산마를 마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20]

이후 더이상 말들에게 '메지로'라는 이름을 지을수 없지만 레이크 빌라 팜은 메지로 목장으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으로 꾸준히 경주마들을 생산하고 있으며, 2014년 G2 아오바상을 우승한 쇼난 라군(ショウナンラグーン)을 시작으로 2019년 G1 홍콩 바즈를 우승한 글로리 베이즈, 2021년 G2 산케이스포츠상플로라스테이크스를 우승한 쿨 캣(クールキャット)에 이르기까지 7마리의 중상마를 배출하며 메지로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7월 메지로 관명의 마지막 G1 마인 메지로 베일리와 메지로 관명의 마지막 중상마인 메지로 마이어가 연달아 사망하면서 사실상 메지로 관명을 쓰는 말들 중에서 중상 우승마는 메지로 도베르만 남게 되었다.

여담으로 목장의 위치가 관광지로 유명한 토야호의 사이로 전망대에서 지척인 곳이고, 메지로 맥퀸을 비롯한 말들의 묘소도 목장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나온다. 편도 거리가 2km 미만이다.

3. 주요 생산마

(중상마들만 기재, 굵은 글씨는 G1급.)

3.1. 메지로 목장 다테시 생산마

3.2. 메지로 목장 도야코정 생산마

3.3. 레이크 빌라 팜 생산마

4. 주요 보유마

(중상마들 중 메지로 목장 자체생산마가 아닌 말들만 기재, 굵은 글씨는 G1급.)

상술했듯이 주식회사 메지로 상사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말들이 대부분이지만, 키타노 토시오나 키타노 유지 등 가족들이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던 말들도 있다. 특히 메지로 목장 설립 이전부터 플레임, 아사마, 무사시, 보사츠, 신겐 같은 중상마를 비롯해 수많은 말들을 키타노 가문의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키타노 토요키치와 키타노 미야 개인 명의의 말들은 메지로 목장 설립 이전의 50~60년대 말들이 대부분이라 데이터가 부정확할 수 있다.


키타노 토요키치 명의
키타노 미야 명의
메지로 상사 명의
키타노 토시오 명의
키타노 유지 명의

5.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파일:메지로 가문.jpg
왼쪽부터 도베르, 라이언, 맥퀸, 아르당, 브라이트, 파머

캡션
메지로 찬가[37]

규모가 규모인 만큼, '메지로 가문'이라는 명문가 설정으로 나오며, 우마무스메로 실장된 메지로만 7명[38]으로 최대 집단으로 자리잡았다.[39] 메지로가 우마무스메들의 공통점으로, 캐릭터명의 수식에 혈통, 계보를 의미하는 ' 라인'이 있으며 맥퀸의 일심동체를 시작으로 자신의 트레이너와의 관계가 매우 진하게 표현된다.

비슷하게 같은 관명을 쓰는 심볼리[40], 아그네스, 나리타, 사쿠라[41] 등도 있으나, 공식에서 대놓고 가문이라고 언급하며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묶은 건 메지로 가문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심볼리가 먼 친척 관계라는 식으로 슬쩍 언급이 된 정도.

기존에는 메지로 가문의 내부 상황이 어떤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라모누의 서사를 통해 일부나마 드러났다. 메지로 가문은 카시모토 리코를 떠올리게 하는 철저한 관리 교육을 중시하는데, 이 관리의 일환으로 재능이 보이면 본가에 데려와[42] 유망주들을 모아서 훈련시키는 구조였다. 그런데 모든 메지로 가문원들이 하나같이 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묘사[43]가 관측되었으며, 그들 중 라모누는 절정에 달했기에, 정신병 양산 가문이란 불명예 해석이 붙곤 했다. 저 와중에 맥퀸만 파르페에 미친 광인이다.

그나마 지금은 오랜 재토론을 거쳐 단지 '가문 단위 영재교육'[44]을 위해 엄격한 분위기를 조성했을 뿐이라고 정론이 모아졌으나, 여전히 2차 창작에서는 '메지로 사단'이라며 군대 같은 집단으로 여기는 식으로 음해 이미지가 잔존하게 되었다.[45]
[1] 심볼리 루돌프로 유명한 심볼리 목장 역시 메지로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오너 브리더였고, 심볼리는 2021년 현재도 직접 생산한 말들로 중앙경마에 출전하고 있다. [2] 현재의 유한회사 요시다 팜. 샤다이 그룹 계열의 요시다 목장과는 관계 없는 곳으로, 메지로 목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메지로의 일부 소유마들을 생산해 공급했다. [3] 메지로의 혈통으로 범위를 넓히면 2015 연도대표마 모리스가 메지로 보사츠로부터 내려오는 모계 혈통을 이어받았다. [4] 목장 설립 이전 회장인 토요키치가 개인으로 소유였었던 메지로 오(メジロオー)및 메지로 라이언을 포함하여 미스터 시비에게 좌절당한 메지로 몽 스니 메지로 아르당까지 무려 4번이나 2착이다. [5] 실제로 동명의 목장이 존재한다. [6] 그런데 메지로 목장 파산까지 더비를 이기지 못하면서 이게 메지로 목장의 더비에서의 최고 성적이 되었다. 메지로 목장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후에 더비와의 악연이 시작되었으나 처음에 더비 2착은 굉장한 성과는 틀림없었다. 거기에 킷카상까지 2위를 하게 되며 원조 콩라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7] 25전 16승, 킷카상(1953), 천황상 봄(1954) 우승마, 1954년 계중사상 연도대표마. [8] 가쿠슈인이 위치한 그곳이다. [9] 1984년 현재의 G1~G3의 그레이드가 도입되기 전, 오카상, 사츠키상, 오크스, 도쿄유슌( 일본 더비), 킷카상 천황상 봄/ 가을, 아리마 기념의 8개 레이스를 8대 경주로 불렀다. [10] 현재와 달리 당시의 천황상 봄/가을은 모두 3200m 레이스였고, 둘 중 하나를 우승하면 다른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11] 당시에는 슈카상이 제정되기 전이라 엘리자베스여왕배가 암말 삼관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회는 외산마도 출전 가능했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 어려웠다. [12] 사실 전세계적으로 잘나가다가 망하는 목장들은 보통 자신이 성공했던 경주마의 혈통에 집착하다가 대세에 뒤떨어져 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옛날 옛적에 명맥이 끊기기 직전이었던 헤로드계 혈통의 씨수말 파르홀론에 집착하던 심볼리 목장도 같은 케이스 [13] 1998 타카라즈카 기념. 엄밀히 말하면 브라이트는 11착이라 스즈카와 맞붙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 레이스에 나왔던 말들이 2착 스테이 골드, 3착 에어 그루브, 5착 메지로 도베르 등 하나같이 쟁쟁한 상대들이었다. [14] 1998 교토대상전에서 2착으로 패배. [15] 하지만 정작 세이운 스카이는 구닥다리 혈통 소리를 듣던 메지로의 경주마들을 뛰어넘는 화석 수준의 혈통이었다는건 아이러니. [16] 1998 아리마기념에서 2착으로 패배. [17] 1999 한신대상전과 천황상 봄에서 맞붙어 2착으로 패배. [18] 메지로 목장의 전무이사가 샤다이 그룹 노던팜의 대표 요시다 카츠미의 대학 동창이여서 도움을 줬다. 참고로 레이크 빌라 팜이라는 이름도 요시다 카츠미가 지었다고. [19] 참고로 레이크 빌라 팜으로 재설립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카츠미가 샤다이 노던팜 소유의 번식 암말과 샤다이의 기술까지 공유해주었는데 샤다이의 기술 노하우를 본 메지로 목장 직원들은 왜 메지로 목장이 망한건지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 참고로 샤다이는 자신들 소유의 번식 암말과 기술까지 공유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크 빌라 팜의 생산마까지 사주었다. 대표적으로 글로리 베이즈가 있다. [21] 현 한신암말S. [22] 메지로 파머의 부마 [23] 현 타카마츠노미야기념 [24] 현 호프풀S. [25] 1983 클래식 기대주로 꼽혔으나 삼관마 미스터 시비에게 밀려 사츠키상에서 0.1초차, 일본 더비에서 0.3초차로 2착을 기록했다. 이후 OP 레이스 1착과 G2 타카마츠노미야배 (2000m) 1착 외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1986년을 끝으로 은퇴. [26] 현 교토킨배. [27] 현 나카야마대장애물. 1988년 대회는 나카야마 경마장의 리노베이션 공사로 도쿄대장애물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28] 현 타카마츠노미야기념. [29] 현 한신JF [30] 현 아사히퓨쳐리티. [31] 2007년 나고야 그랑프리, 2008년 카와사키 기념 우승마. 현역 30전 9승. [32] 부마는 네버 비트. 메지로 스이세이는 1973년 교토 기념(가을)을 우승하고 현역 45전 9승을 기록했다. [33] 2001년 다이올라이트 기념, 2002년 카와사키 기념, 2003년 나고야 그랑프리 우승마. 현역 57전 9승. [34] 18전 9승. 1965년 최우수 3세 암말. 모마 메지로 퀸은 첫번째 출산이었는데 난산으로 결국 죽었고 메지로 보사츠도 이 영향으로 현역 시절 380kg의 작은 말이었다. 경주말로 데뷔 직전 부마 몽타발이 죽었고 이런 출생의 에피소드와 경주마명 보사츠(菩薩-보살) 덕분에 달리는 무덤(走るお墓)이라는 기분 나쁜 별명을 얻었다. 모계 후손으로 메지로 도베르, 21전 7승(중상 4승)을 기록한 암말 메지로 몬테레이와 몬테레이의 외손자 모리스가 있다. [35] 현 아사히퓨쳐리티. [36] 현 플로라S. [37] 2022년 4월 만우절 기념 제작된 테마곡. [38] 위 짤의 6인방에 메지로 라모누도 가세했다. [39] 특히 7번째 메지로, 메지로 라모누가 너무나 개성적이고 압박감이 강해서, 일본 팬덤은 야쿠자 집단을 가리킬 때나 쓰는 '메지로구미(組)'라 지칭하곤 했다. 라모누도 그렇지만 나머지 6명의 메지로 일원들도 대단한 실적을 가지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기에 그들이 모이기만 해도 부담된다고 여긴 게 유래다. [40] 심볼리도 명문가라는 설정이 간접적으로 드러나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41] 사쿠라 커머스를 그대로 가문화하는 대신, '빅토리 클럽'이라는 유아~초등학생 육성 모임으로 각색했다. [42] 파머의 스토리를 보면 일단 부모님도 같이 오기는 하는 듯. [43] 처음부터 파머의 정신 불안이 자주 이야깃거리로 오르곤 했다. 하지만 다들 파머 개인의 문제라 여겼지, 문제의 근원이 가문에 있다고 여기진 않았다. [44] 사실 트윙클 웹 Vol.24에서 유소년기부터 각 우마무스메의 장점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영재교육이 실시된다. 라면서 영재교육을 한다는 내용만이 있었다. [45] 또한 '빅토리 클럽'이란 동호회 설정으로 전환해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가진 '사쿠라' 관명 멤버들에 비해 메지로 측은 너무 빡빡하고 엄숙한 분위기인지라 이 음해를 완전히 씻겨내지 못하고 있다.